부정선거 의혹, 尹 아닌 미래 위해 짚고가야[핫이슈]
변호사인 한 지인이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직후부터 “왜 기성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을 다루지 않느냐”며 질책을 겸해 취재를 권유(?)해왔다. 그는 선거 사건을 수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서 공명정대하고 투명해야 할 선거에 무슨 흠집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참기 힘들다고 했다. 이게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선거 결과를 누가 믿겠느냐고도 했다.
다 맞는 말인데 이 건을 다루기 힘든 이유는 몇가지가 있었다. 전자개표기 작동 원리 같은 기술적 요인이 가미된 사안에 대한 정확한 취재가 어렵고, 윤 대통령이 계엄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부정선거 얘기를 자주 꺼내는데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부정선거 의혹만 밝혀내면 탄핵과 내란 혐의를 벗을 것이라는 초조함이 한편으론 자기 합리화로도 비친다. 부정선거를 확신한다고 해서 꼭 계엄까지 발동할 것은 아니지 않나.
더욱이 디지털 시대에 계엄이 어울리지 않듯 부정선거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과거 몇 차례 부정선거 트라우마를 겪은데다 그때보다 높은 민도(民度) 하에서 선거 부정은 용납 못할 일이다. 그러니 ‘설마 그런 나쁜 짓을 했겠어’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또 문과 출신이라면 우리나라 같은 기술 강국이 만들어 수출까지 하는 개표기에 오류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다. 이런 여러 이유들이 부정선거 얘기만 나오면 말도 안된다고 치부해버리는 배경이다. 계엄이 설마 하는 순간 일어났지만 부정선거에 대해선 “설마 그런 일이~”라며 여전히 귀를 닫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2023년 10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보안점검에서 선관위 측의 소극적 행태를 대통령실에 보고한 문건이 최근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나왔다. 문건을 보면 선관위가 정말 뭔가를 감추려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보고서 요점은 ‘선관위가 보안점검을 방해한다’는 것으로 △점검 시간제한 △장비 제공 지연 △점검 도구 삭제 △자료 제출 기피 △말 바꾸기 △북한에 해킹된 메일 계정 폐쇄 △방관적 태도 등을 적시했다. 국정원 고위 인사들이 선관위를 찾아가 항의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야무야 끝난 부실 점검 파장은 선관위를 못마땅히 여긴 윤 대통령의 접수 기도로 돌아왔다.
현재 인터넷과 유튜브에서는 투표 용지 조작부터 사전선거 투표율 증가, 선거인 수와 투표수 불일치 등 부정선거 의혹과 목격담들이 넘쳐난다. 더불어민주당 기반이 약한 선거구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전투표 지지율이 높았다는 의혹이 면밀한 수치와 함께 제시돼 있다.
그 틈을 타고 며칠 전에는 선거 개입 혐의로 중국인 99명이 체포돼 오키나와 미군 기지로 옮겨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소식 출처도 없고 관련자가 부인한 마당에 신빙성은 없지만 추후라도 외국인들의 선거 개입 가능성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러니 ‘부정선거 의혹 철저 수사’ 관련 국회 청원 동의 건수가 5만명을 넘어섰다. 5만명 이상 동의가 있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서 본회의 심의·의결 여부를 결정하는데,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반면 국회와 정부는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에 호응하는 여당 의원들도 거의 없다. 야당은 윤 대통령을 어떻게 몰아낼까로 바쁘고, 정부는 전모를 밝혀낼 여력과 의지, 배짱이 없다.
물론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음모론을 신봉하며 기존 입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수록 권위있는 조사 주체를 구성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부정선거의 진위를 묻는 유권자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 과정에서 계속 늘어날 것이다. 개헌 논의와 함께 선거 개표 시스템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진퇴와는 상관없이 우리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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