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인권보다 윤석열 인권 챙기는 인권위…창피하다”[영상]
“계엄 선포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며,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결심한 이상 국방부 장관이나 군 지휘관, 경찰청장 등이 그러한 대통령의 결심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세부적인 계엄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또는 구속영장 청구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누가 한 말일까.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 변호인단이 한 말처럼 보인다. 물론 피의자 윤석열 변호인단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이 말이 국가기관에서 생산하는 공문서에 버젓이 적혀 있다. 2025년 1월13일 국가인권위원회 회의 긴급 의결안건으로 제출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에 기재된 글이다.
표지를 포함해 17쪽짜리이 안건을 작성한 인물은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이다. 차관급 고위공직자인 그는 1월17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첫 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제가 썼다”고 말했다. 안건 제출 당시 한석훈·이한별·강정혜·김종민(조계종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 비상임위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김용원·이한별·김종민 위원은 대통령 윤석열이 지명한 인사이고, 한석훈 위원은 국민의힘이 추천한 인사, 강정혜 위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다.
피의자 윤석열의 반인권적인 비상계엄 선포 행위를 편들고 감싸는 안건이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도록 여러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인권위 직원들은 1월13일 필사적으로 회의 개최를 막았다. 당시 그 현장에 있던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한겨레21 유튜브 프로그램 ‘뉴스크림’이 1월17일 만났다.
한겨레21 tv 영상 바로가기 주소: https://youtu.be/7_uYUWngrwI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인권위는 위원장(안창호)을 포함해 총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김용원·한석훈·강정혜·김종민·이한별 위원 등 5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안건이다. 인권위가 경찰과 검찰, 공수처 등을 상대로 대통령 윤석열에게 체포·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지 말 것, 국회의장을 상대로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소추를 철회하고 향후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를 남용하지 말 것, 헌법재판소장에게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심리 때 피청구인(윤석열)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우린 이 안건을 ‘내란 세력 비호 안건’으로 부르고 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1월10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국가적 위기 상황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 그 자체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야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내란죄 프레임 걸기’를 하고 국무총리 탄핵까지 감행했기 때문”이라며 좀 더 적극적으로 내란 세력을 비호했다.
―피의자 윤석열 변호인단이 할 법한 말들이다.
“솔직히 창피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20여개 국가인권기구의 국제 네트워크인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이 있다. 나라별 국가인권기구가 교류하며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인권위원 말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는다. 국제사회도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말이 안 되는 행위라고 보고 있고, 비상계엄 선포 행위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그런 상황에서 인권위 상임위원(김용원)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것 자체가,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창피하다.
―1월13일 이후 ‘내란 세력 비호 안건’ 공동 발의자였던 김종민 위원은 1월16일 사직서를 제출했고, 강정혜 위원은 1월17일 안건 철회서를 제출했다. 이 안건은 1월20일 열릴 인권위 회의에서 어떻게 처리될까.
“회의(인권위 위원장과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위원회 회의)가 열려봐야 알겠지만, 어떻게 될지(상정되어 가결될지, 부결될지, 또는 다음 회의에 재상정될지) 저희도 예단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시민이 ‘이 안건은 절대 통과돼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아무리 인권위가 망가졌어도 거기(가결)까지 갈 순 없다’고 강하게 외치고 있는 한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뷰 이후, 1월20일 예정된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당일 취소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김용원·이충상·한석훈 등 인권 감수성이 전혀 없는 인권위원들이 임명되면서 인권위가 인권 보호와 향상이라는 업무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 (2024년 5월14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이하 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인권위가 위원회에 제출한 독립보고서(한국 정부가 유엔 인권조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관한 인권위 의견을 정리한 문서) 초안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안건이 삭제된 일이 있었다. 이 독립보고서를 전원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과정에서 김용원 상임위원은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일본에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 내용을 문제 삼으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 알고 있는데 자꾸 (얘기를) 꺼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고도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혐오단체로부터 수요집회를 보호해달라는 취지로 인권위에 진정한 사건도 다 기각됐다. (2024년 2월) 인권위 조사관이 고공농성 현장(한국알콜산업 울산공장 55m 높이 연소탑)에 가서 (농성자에게) 물과 도시락이 제공되도록 했는데 김용원·이충상·한석훈 위원이 ‘월권행위’라며 그 조사관을 비난한 일도 있었다.”
―일부 인권위원들뿐만 아니라 안창호 위원장도 국가인권기구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창호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드러난 것처럼,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인물이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 정도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것부터 대단히 문제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법인가?
“우리나라 헌법 제11조(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평등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현재 헌법 각 조항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한 법률이 많이 제정됐는데, 이 헌법 제11조(제1항)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한 법률(무엇이 차별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어떤 차별이 없어야 하는지를 정한 법률)이 없다. 그것을 정하는 법률이 차별금지법이다. (2020년 6월 인권위가 공개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 기준) 차별금지법은 △노동(고용) △재화·용역(서비스) △교육 △행정·사법절차 및 서비스 제공·이용 등 크게 4가지 영역에서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와 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차별 금지 사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있다.(노무현 정부가 2007년 12월 차별금지법안을 제안한 이래로 17년이 지나도록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인권위원들이 ‘피의자 윤석열 감싸기’에 나선 상황을 어떻게 보나.
“(2024년 12월3일 선포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에서 볼 수 있듯, 윤석열씨는 너무나 많은 사람의 인권을 박살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도 인권위가 국민들 인권이 아닌 윤석열씨 인권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 인권위가 모든 사람 인권을 위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기구인 것은 맞지만 윤석열씨 (내란) 범행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었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후자의 인권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반인권적인 인물이 인권위 위원장이 되거나 위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인권위는 (국가기관이긴 하지만 입법·사법·행정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위원장과 위원을 탄핵하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2024년 5월 다른 인권단체들이랑 함께) 스위스 제네바에 가서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관계자를 만나 한국 인권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공유했다. 그랬더니 그 관계자가, 11명(위원장 포함)의 위원 중 (자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위원 1명의 직무를 탄핵을 통해 정지시키고자 할 때 나머지 위원 10명이 동의하면 탄핵소추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또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인도네시아는 인권기구 위원이 되려는 사람에게 티브이(TV) 토론회를 거쳐 후보로서의 검증을 받도록 했다. 지금이 인권위가 (2001년 11월 출범한 이래로) 맞는 가장 큰 위기다. (어떻게 하면 인권 감수성을 가진 인권위원이 선출될 수 있을지) 시민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정리=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 [단독]윤석열 대통령실, ‘역술인’을 행정관으로 채용
- “미 행정부, 만나주지 않아” 탄핵 불확실성에 한국 기업 ‘찬밥’ 신세 토로
- ‘사고조사위에 유가족 참여’ … 투명·공정·독립 조사, 트라우마 치유 첫 걸음
- ‘파란 키세스’ 조선소 노동자 유최안 껴안다
- K-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 무감각한 가자 사태 인식 드러내
- 다닥다닥 감나무밭, 엄동설한에 해체 “나무여, 서운해 마시라”
- 체포 반발·내전 선동·법치 유린… ‘엘리트’의 실패
- 무심코 버린 모직코트 한 벌, 종이컵 912개 버린 것과 같다
- ‘쓰저씨’ 배우 김석훈 바지는 말레이, 신발은 볼리비아서 신호가 왔다
- 10인10색 ‘남태령 대첩’ 출전 동기 “우리가 서로에게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 계속 눈물이 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