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표현이 시민의 자유 해친다고? [콘텐츠의 순간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그룹’이라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미국 힙합 그룹 엔더블유에이(N.W.A)는 1989년 미국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공보실 부국장의 서명이 적힌 편지에는 N.W.A의 음악을 문제 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그룹은 갱스터 랩으로 그득한 정규 데뷔 앨범 〈스트레이트 아우터 콤프턴(Straight Outta Compton)〉으로 미국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특히 ‘퍽 더 폴리스(Fuck Tha Police)’는 제일 악명 높은 곡이다. 멤버들은 왜곡된 인종적 프로파일링을 바탕으로 잔혹 행위를 일삼는 경찰을 매섭게 비난했다. 나아가 더 이상 당하고 있지만 말고 물리적인 폭력을 써서라도 ‘경찰을 박살 내자’라고 외쳤다.
힙합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경찰 비판 곡이 인기를 얻고 그룹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다양한 법 집행기관이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 일선에 FBI가 있었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N.W.A와 ‘퍽 더 폴리스’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는 경찰들에게 대단히 모욕적이며, 폭력과 폭행을 옹호하여 문제”라면서 N.W.A와 그룹이 속한 레이블을 압박했다. 이 노래가 경찰에 대한 폭력을 유발한 실제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룹은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다. 특히 공격 대상(?)인 경찰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경찰은 N.W.A의 공연에 보안 제공을 거부했으며, 일부 콘서트에선 공연장 주변 지역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룹과 관람객을 주의 깊게 감시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대부분 공연장에선 그룹이 ‘퍽 더 폴리스’를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심지어 해당 곡을 부를 경우 벌금 2만5000달러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경찰의 거센 압박이 있었다. 이는 대중음악계에서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아티스트와 작품을 검열한 가장 유명한 사례로 기록된다.
시계를 2024년의 한국으로 돌려보자. 지난해 12월25일 경북 구미시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승환 콘서트 대관 취소 사건은 큰 틀에서 1980년대 N.W.A의 일화와 오버랩된다. 대중예술에 공권력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부당한 서약까지 강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단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현실로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던 이 사태 이후,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리고 이승환은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아티스트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한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꾸준히 비판했으며, 지난해 12월13일엔 탄핵 촉구 집회에서 무료 공연을 펼쳤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국민의힘 계열 후보가 압승을 거두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 또한 강세였던 구미시의 일부 시민들에게 이런 이력을 지닌 이승환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구미의 우익 성향 보수 단체들이 “탄핵 찬성 무대에 올라 정치적 발언으로 국민 분열에 앞장선 이승환 구미 콘서트 대관을 즉각 취소하라”는 성명을 냈을 것이다. 결국 구미시는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에 안전상의 이유’로 콘서트를 취소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소 과정에서 드러난 서약서 문제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승환의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김장호 구미시장은 구미시 문화예술회관장 명의 공문을 통해 ‘정치적 선동 및 정치적 오해 등 언행을 하지 않겠음’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대관 규정에 따라 취소할 수 있음’이라고 명시했다. 그리고 이승환이 해당 부분을 문제 삼아 거부하자 시장은 대관을 취소했다. 이승환 측이 구미시가 그토록 우려하던 안전을 위해 여러 장치와 법적 지원을 약속한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니까 이승환의 데뷔 35주년 기념 첫 구미 공연은 처음 알려진 것과 달리 합의하에 취소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한 셈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사례와의 잘못된 비교
김장호 시장은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구미시장으로서 불가피하게 대관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24년 12월25일 〈매일신문〉에 ‘표현의 자유보다 시민의 안전 우선해야’라는 제목의 칼럼까지 기고하며 본인의 판단이 옳았음을 호소했다. 그는 글에서 2024년 8월 테일러 스위프트의 오스트리아 빈 공연 취소 건을 예로 들었다. 콘서트를 앞두고 테러 계획이 발각되어 공연 세 건이 취소된 사건이다. 김 시장은 오스트리아 당국의 취소 조치에도 스위프트가 “신중한 태도로 입을 다물었다”라며 “올해로 60세를 맞은 이승환씨의 연륜이라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보였던 태도보다 한층 원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두 사례는 배경과 사실관계 모든 부분에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일단 스위프트의 공연 때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테러 계획이 있었다. 정부 관계자가 이를 확인한 다음 경찰, CIA와 협조하여 용의자 셋 중 두 명을 검거하고 범행 계획을 자백받은 상태였다. 이미 국외에서 공연장 폭탄 테러가 몇 번이나 발생한 데다가 아직 체포하지 못한 용의자가 있었기에 오스트리아 당국의 공연 취소는 설득력 있는 요청이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의 정치 성향이나 관련된 발언을 막고자 하는 서약서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승환과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례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부터 잘못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티스트의 태도 운운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오만하다. 이런 식으로 비교를 끌고 온다면 다른 사례로 얼마든지 반박 가능하다. 서두에서 얘기한 N.W.A는 경찰이 폭력 사태 예방을 이유로 공연 금지를 강요했음에도 매번 ‘퍽 더 폴리스’를 불렀다. 하지만 경찰을 향한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공연이 열리는 지역은 물론 그룹을 끊임없이 압박했던 경찰조차 공연을 취소시키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기고문에서 김장호 시장은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시민과 관객의 안전 담보를 전제로 향유되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개인의 생각은 존중할 수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표현의 자유란 그런 식으로 향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안전도 중요하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이 두 가지 논점을 병치한 다음 어느 하나를 우위에 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그의 말처럼 표현의 자유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의 병폐를 거리낌 없이 폭로하고 연대와 지원을 호소한 많은 대중음악이 세상과 개인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떠올려보라.
김장호 시장이 내민 서약서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행위였다. 근거가 부족한 안전 문제를 비판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기고문 말미에 “공연을 통해 사회 분열이 아닌 화합을, 조롱과 냉소가 아닌 미소와 따뜻함을 전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데뷔 35년 차 베테랑 가수에게 팬들이 기대하는 자질이 아닐까”라고 썼다. 이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다. 아티스트의 정치적 언행을 사전에 차단하지 않음으로써 서로 다른 정치 성향과 생각을 포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제22대 구미시장에게 시민들이 기대하는 자질 아닐까.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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