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핑 열풍은 어떻게 생겨났나

이상원 기자 2025. 1. 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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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티니핑〉 시리즈가 독보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영화는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장난감은 품절 대란이다. 제작사 관계자는 작품 구상과 완구 기획의 병행을 비결로 꼽는다.
2024년 12월2일 서울의 한 장난감 매장에 <캐치! 티니핑>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사IN 포토

지난해 12월23일 서울 시내의 한 쇼핑몰 장난감 매장에는 암호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슈팅스타 티니핑 오로라핑 캐슬하우스 품절되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캐치! 티니핑〉 장난감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기 품절되었다는 안내였다. 〈캐치! 티니핑〉은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이다. 유튜브 티니핑TV 채널에는 조회수 3000만 회가 넘는 영상도 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영화는 관객 100만을 돌파했다. 온라인 쇼핑몰의 세일 행사에서는 하루 만에 티니핑 캐릭터 상품 수억 원어치가 팔린다. 낯선 현상이다. 오랜 기간 디즈니와 재패니메이션이 차지하던 자리를 돌연 국산 캐릭터가 점령했다.

〈캐치! 티니핑〉 시리즈는 2020년 TV 방영을 시작했다. 가상의 왕국을 무대로 ‘티니핑’이라는 요정이 등장한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서 다수 ‘포켓몬’이 등장하는 것처럼 〈캐치! 티니핑〉에도 수많은 티니핑 개체가 나온다. 외형과 성격에 차이가 있는 각 티니핑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상징한다. ‘하츄핑’은 ‘사랑의 티니핑’, ‘아자핑’은 ‘용기의 티니핑’이라는 식이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쏟아지는 티니핑을 종류별로 수집하는 아동이 많다. 온라인상에는 ‘집에 티니핑이 있는데 아이가 자꾸 사달라고 한다’ ‘똑같은 걸 버리려 했더니, 하츄핑과 베리하츄핑은 다르다는 항변을 받았다’ 등 부모들의 웃지 못할 푸념이 이어진다. 매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인기 상품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을 얹어 거래된다. 장난감 지출 비용이 너무 높다며 ‘등골핑’ ‘파산핑’이라는 유행어도 돌고 있다.

지난해 8월7일 개봉한 티니핑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관객 123만명을 모았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220만명)에 이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사상 2위 기록이다.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이후 12년 만에 등장한 100만 관객 돌파 작품이기도 하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관객 100만을 돌파한 사례는 세 작품 외에 없다. 코스튬 무대인사가 예정된 〈사랑의 하츄핑〉 상영관은 일찌감치 표가 매진됐다. 배급사에서 “암표 거래를 피해달라”고 공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영화관에서 막을 내린 후 지난해 12월3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 영화는 1월3일까지 대한민국 톱 10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고, 현재(1월8일) 4위에 올라 있다. ‘키즈 영화’ 부문이 아니라 넷플릭스에 있는 모든 영화 중 최상위권의 인기다.

여전히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이 시리즈의 흥행이 놀랍고 낯설게 느껴질 법하다. 유아·아동층에서 티니핑의 인기는 절대적이지만 다른 연령대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11월2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4 캐릭터 이용자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만 10~69세와, 만 3~9세(부모가 대신 응답)의 응답에 차이가 두드러졌다. 10세 이상 응답군에서 가장 선호하는 캐릭터는 〈짱구는 못말려〉(8.2%)였다. 〈캐치! 티니핑〉은 10위권 내에 들지 못했다. 반면 3~9세는 〈캐치! 티니핑〉이 1위(11.2%)를 차지했다. ‘하츄핑’이라는 응답(4.8%)을 더하면 티니핑의 선호도는 2위의 두 배 가까이에 달한다. 2022년 10세 미만 응답군에서 선호도 1, 2위를 차지한 〈포켓몬스터〉(16.2%), 〈뽀롱뽀롱 뽀로로〉(16.0%)는 이번 조사에서 각각 4.0%, 6.4%로 하락했다.

디즈니 공주물이 주춤하는 사이

〈캐치! 티니핑〉 시리즈 제작사 SAMG엔터테인먼트는 2000년 설립한 기업이다. 2000년대에는 해외 제작사와의 협업을 위주로 일했고, 2010년대 들어 자체 제작을 시작했다. SAMG 관계자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현재는 국내 3D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이 선도 국가들의 턱밑까지 쫓아왔다고 말했다. “추격하기 쉽지 않은 격차였지만 해외 합작을 많이 하면서 그들의 기술을 따라잡은 면이 있다. 제작비 규모 격차 탓에 차이는 나지만 이제 기술력 자체는 미국이나 일본과 견주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국내 업체들이 내실을 다지던 상황에서 때마침 아동 애니메이션의 패권 구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핵심 시청자는 4~7세 여아다. 전통적으로 이 세대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캐릭터는 디즈니 공주물이었다. 그런데 2013년 〈겨울왕국〉, 2019년 〈겨울왕국 2〉 이후 디즈니는 그만한 아동 애니메이션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디즈니 프린세스’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감도 한 원인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주 고객층의 변화를 고려한 ‘전략 수정’으로도 풀이한다. 어린 시절 즐기던 디즈니 콘텐츠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성인층(‘디즈니 어덜트’)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복합적 이유에서 최근 디즈니의 주력 애니메이션은 아동용 콘텐츠에서 전 연령층, 혹은 성인용 작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티니핑’과 같은 후발 주자가 치고 들어갈 공간이 생긴 셈이다.

그러면 왜 다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캐치! 티니핑〉이 수혜자가 됐을까. 자녀와 함께 극장에 갔다가 〈사랑의 하츄핑〉을 보게 된 성인 관객들은 ‘어른이 보기에도 작품성이 높아 의외였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티니핑이 불러오는 관심과 수집욕, 유튜브와 팝업 스토어를 활용한 마케팅을 꼽는다. SAMG 관계자는 ‘넓은 세계관과 무해하고 유익한 콘텐츠’를 강조했다. 모두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관계자에게서 힌트가 될 만한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타사와 다른 점이 있다. 완구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팀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부터 함께 참여한다.”

아동 애니메이션은 시청률이 낮고 일반 영상물보다 영상 판매수익이 적다. 제작사는 상품 판매수익으로 제작비를 메워야 한다. 대부분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영상물만 만들고 IP는 완구 전문기업에 판매하는 형식으로 상품 수익을 낸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이질감’을 느낀다고 SAMG 관계자는 말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소품을 장난감으로 만들 때 ‘싱크로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캐치! 티니핑〉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림 그리는 이들과 장난감을 기획하는 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같이 논의를 한다.” 완구 제작 기업이 영상 제작사와 협업하거나 스스로 작품 제작을 주도하는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잔뼈가 굵은 콘텐츠 전문기업이 완구 기획을 병행하면서, 영상의 작품성 추구와 상품 수익 창출 사이의 줄다리기는 더욱 능란해졌다.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장성 감독은 2011년 제63회 에미상 ‘애니메이션에서의 뛰어난 개인 업적’ 부문 수상자 출신이다.

다만 티니핑 열풍은 안주하기 어려운 바람이다. 국내 미취학 아동의 수는 매해 줄어들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아동 애니메이션은 키즈 유튜브 콘텐츠에 밀려 하락하는 추세다. 4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진 SAMG의 다음 기획은 2026년 공개될 〈K-트론〉(가제)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성인 시청자들을 겨냥한 실사 로봇 드라마로,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도모하는 작품이다. ‘한국형 로봇물’의 세계적 흥행은 오랜 기간 이루어진 적 없는 업계의 꿈이었다. 그러나 디즈니 공주의 자리를 ‘국산 요정’으로 대체한 작품도, 이전에는 없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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