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도, 전시도, 내 집 같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구정순 관장
‘예술 느낄 수 있는 집’ 개념으로 꾸며
방처럼 느끼게 코리도 뒤에 프런트룸
라이브러리, 구 조형물 염두하고 설계
건물 벽돌 북동·남서 방향으로만 놓여
픽셀레이션 개념 벽체로 통일감 부여
집이었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고쳐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곳에 가면 낮은 층고와 잘게 나뉜 공간이 과거 집이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시설의 사용자나 공간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집과 미술관은 상당히 다르다.
건축가의 이런 고민은 ‘라운지’와 ‘클로크 룸’(모자나 코트 등 휴대품을 맡겨두는 곳)을 지나 구하우스로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나는 공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프런트 룸’(거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이 전시실은 입구에서 바로 보이지 않고 ‘코리도(corridor)’ 뒤에 배치돼 있다. 사실 프런트 룸과 코리도를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도 어색하지는 않다. 오히려 폭이 좁은 공간을 둘로 나누어서 쓰임에 제약이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이 두 방이 하나의 전시실이었다면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였을 테고 그랬다면 집에 있는 방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코리도를 따라 전시된 검은색 의자들과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며 안쪽으로 들어오면 책장과 벽난로가 있는 ‘라이브러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의 방은 그 공간을 먼저 설계하고 그다음에 작품을 배치한다. 그런데 라이브러리만큼은 상부에 떠 있는 구 형태의 조형물을 포함해 9m 높이의 ‘Mobile(Le Corbusier)’이라는 작품을 염두에 두고 복층으로 설계됐다.
라이브러리 한쪽으로 연결되는 문으로 들어서면 ‘장 프루베(Jean Prouve) 방’이 나온다. 장 프루베는 전통과 최신의 기술을 가구디자인부터 미국 식민지 시대 모듈식 주택 설계까지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적용한 프랑스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게스트 하우스 개념으로 조성된 이곳은 프루베가 1932년 프랑스 낭시의 한 대학교 기숙사 방을 위해 고안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구하우스의 다른 방보다 더 오래된 분위기를 풍긴다. 심지어 방 안쪽에 별도의 화장실도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는 욕실용품을 만드는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세면대와 변기가 놓여 있다. 기성품이니 물만 나온다면 쓸 수 있겠지만 이 방이 실제 게스트 하우스는 아니니 쓰기에는 좀 뭐하다. 순간 ‘장 프루베 방’ 욕실에 있는 세면대와 변기가 마르셀 뒤샹이 ‘R.MUTT 1917’이라고 적은 뒤 ‘샘’(Fountain)이라 부른 소변기보다 화장실이라는 맥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 세면대와 변기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구하우스는 북서쪽으로 흐르는 문호천에 면한 안마당을 ‘ㄷ’자로 감싸고 있다. 하지만 형태는 곡선과 직선이 섞여 있어서 전체적으로 불규칙하다. 반면, 건물을 이루는 푸른 빛의 벽돌은 마치 나침반처럼 북동∼남서, 한 방향으로만 놓여 있다. 그래서 벽체의 형태에 따라 벽돌 모서리의 노출된 정도가 달라진다. 이 장면을 먼 거리에서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면 빛의 방향에 따라 벽의 표면이 거칠거나 잔잔해진다. 반면, 가까이서 보면 벽돌 하나하나가 드러나면서 벽체의 전체 형태를 잊게 된다. 조민석은 이러한 처리를 ‘화상을 화소로 나누다’라는 의미의 ‘픽셀레이션’(pixelation)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화소가 모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듯 벽돌이라는 최소 단위를 통해 의뢰인이 요구한 집과 미술관이라는 상반된 둘을 하나의 건축물로 통합하고자 했다. 벽돌을 한 방향으로만 둔 건 건물 전체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개관 후 9년 동안 구하우스는 ‘집을 닮은 미술관’이라는 개념을 잃지 않고 있다. 심지어 빛바랜 전시물, 수북한 화분, 뜯어진 소파, 해진 가구에서는 오래 산 집에서 느껴지는 생활감이 묻어난다. 지방에 있는 미술관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와 그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에서는 안쓰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럼에도 구하우스는 현대 미술에 큰 획을 그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내 집 같은 미술관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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