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과학자의 친구인가 적인가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5. 1. 2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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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엑스선 결정학으로 단백질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맥스 퍼루츠의 에세이집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에는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런데 모든 과학자가 트럼프를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이 글의 제목을 퍼루츠의 책 제목에서 '과학자는'을 '트럼프는'으로만 바꾸는 게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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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9일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 엑스(X)의 스타십 6차 발사 장면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는 2021년 대선 불복 이후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퇴출됐다가 엑스(구 트위터)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엑스에서 둘이 나눈 대담은 최대 130만명이 지켜봤고, 트럼프는 기후위기를 노골적으로 부정했다. AFP 연합뉴스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1950년대 엑스선 결정학으로 단백질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맥스 퍼루츠의 에세이집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에는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버는 1909년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그 덕분에 질소 비료가 나오면서 인류는 굶주림에서 벗어났고 인구가 급증했다.

1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우리 몸을 이루는 질소의 절반 이상이 질소 비료에서 왔고 만일 질소 비료가 사라지면 지구촌 80억명의 절반은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는 놀랍게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를 개발해 실전에 사용해 1만5천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그의 아내 클라라는 이 사실을 알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각국의 정치가와 경영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고 과학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미 입장을 정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실행되면 오랜 기간 연구한 결과물이 무용지물이 될뿐더러 미국의 많은 과학자는 자리도 위태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와 환경, 에너지, 보건 분야의 과학자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지난주 영국 과학 주간지 ‘네이처’는 트럼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사설에서 과학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마치 거친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어조로 제시했다. 과학은 행정부가 나라의 건강과 번영, 안보를 유지하는 능력의 핵심으로, 특히 미국의 과학은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책임 있는 행동을 당부했다.

사설은 트럼프에게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기 전 증거를 검토해달라”며 “인간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변화의 원인이 아니라며, 취임날 1기 때와 마찬가지로 파리기후협약에서 또 탈퇴한 트럼프가 이런 조언을 귀담아들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세계 1위 산유국이 된 미국은 석유 생산량을 줄이기는커녕 하루 300만배럴 더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은 2100년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으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지구촌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고 불과 9년이 지난 2024년 1.5도 상승선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미국이 협약에서 다시 탈퇴해 전망은 더 어두워질 것이다. 네이처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언제든지 신종 전염병이 지구촌을 휩쓸 수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트럼프의 인식 역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터졌을 때 세계보건기구(WHO)와 주요 국가들이 협력해 대응해야 하는데, 가장 큰 힘을 보태야 할 미국이 협정을 맺지 않거나 기존 협정을 탈퇴하며 나 몰라라 하면 지구촌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과학자가 트럼프를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네이처’ 같은 호에 실린 심층기사를 보면 분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환경이나 전염병처럼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을 위한 과학이 외면받는 반면 우주 개발, 인공지능(AI), 양자정보과학 등 산업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중국과 패권을 다투는 분야는 지원이 크게 늘 전망이다. 물론 이 분야의 성과도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과학정책 역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미국 우선주의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의 제목을 퍼루츠의 책 제목에서 ‘과학자는’을 ‘트럼프는’으로만 바꾸는 게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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