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우주경쟁의 길목이 되다
미·러·유럽 등 북극 위성기지 확대
중국도 ‘극지 실크로드’ 구축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국제지정학 무대에서 북극 지역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에 앞서 북극의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를 미국 소유로 만들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6일 자신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린란드는 놀라운 곳이며, 그것이 우리 나라의 일부가 된다면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은 북극해와 이를 둘러싼 육지를 포함한 북위 66도 이상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러시아, 캐나다, 미국 북부와 그린란드를 포괄한다.
동토의 땅이지만 북극은 유럽, 아시아, 북미를 횡단하는 탄도 미사일과 항공기, 선박의 최단거리 경로이자 니켈, 구리, 아연, 은, 금, 석탄, 우라늄 및 희토류 원소와 같은 천연 자원의 보고다. 지구 온난화로 빙붕이 녹으면서 대륙간 해상교통로로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북극 해안선의 절반 이상은 러시아 영토이지만, 단일 규모로 가장 큰 육지는 트럼프가 지목한 그린란드다. 그린란드는 넓이가 216만6㎢로 한국의 21배가 넘는다. 덴마크 자치령이지만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가깝다. 전체의 80% 이상이 빙하로 뒤덮인 섬인데도 그린란드(녹색의 땅)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이곳을 처음 발견한 바이킹 탐험가 에릭 토르발드손이 더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지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트럼프는 왜 그린란드를 콕 집었을까
최근 각국이 북극에 큰 관심을 갖는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우주 경쟁이다.
통신이나 관측, 촬영을 위해 지구 표면 전체를 관찰하도록 설계돼 있는 극궤도 위성이나 태양동기 궤도 위성은 90∼100분마다 극지 상공을 통과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구관측위성 랜드샛과 막서, 플래닛 등 위성 사진 서비스 업체들의 위성이 극지 상공을 통과하는 궤도를 돌고 있다.
이런 지구 관측 위성들이 이미 1천개를 넘는다. 특히 지구 전체를 넓고 꼼꼼하게 감시해야 하는 군사용 정찰위성은 대개 극지 상공을 통과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처럼 저궤도 군집위성을 통해 전 세계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데도 극궤도위성은 필수적인 구성 요소다.
한국의 다목적실용위성인 아리랑과 차세대중형위성, 군사정찰위성도 태양동기궤도를 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올해 아리랑 2기와 차세대중형위성 3기를 태양동기궤도에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정옥철 항우연 위성연구1부장은 “세계적으로 지구 전체를 관찰할 수 있는 태양동기궤도 위성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성들이 데이터를 원활하게 송수신하려면 북극에 지상국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린란드는 위성을 운용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충지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콕 집어 욕심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그린란드에는 미 우주군의 유일한 해외기지 비두픽우주군기지(옛 툴레공군기지)에 위성 지상국이 있다. 위성이 늘어나면서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미 국방부가 매년 발표하는 북극 전략에서 우주 역량을 언급한 횟수는 2019년 13번에서 지난해 19번으로 늘었다.
미국과 그린란드의 관계는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미국은 덴마크 망명정부를 대신해 그린란드를 점령했다. 현재 캥거루수아크공항을 비롯한 기반 시설 대부분은 미국이 2차 대전을 수행하면서 건설했다.
우주비행사들의 화성 탐사 훈련 장소
미 우주군에는 그린란드 말고도 알래스카에 미사일 및 우주 감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북극 기지가 있다. 알래스카 중부 내륙에 있는 클리어우주군기지다. 미 항공우주국(나사)과 국립해양대기청(NOAA)도 알래스카에 위성과의 통신을 위한 기지국을 운영하고 있고, 민간 기업들의 통신용 지상국도 여럿 있다.
북위 78도의 노르웨이 스발바르에는 콩스베르크위성서비스(KSAT)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위성 지상국이 있다. 한국의 태양동기궤도 위성들이 이곳의 지상국을 이용하고 있다.
스웨덴우주공사(SSC)는 스웨덴 북부와 알래스카, 캐나다 노스웨스트준주에 지상국을 운영하고 있다. 신생기업 아크틱 스페이스 테크놀로지스(Arctic Space Technologies)는 스웨덴의 북극권 바로 아래에 지상국을 설치했다. 러시아가 고위도 지역에 특화해 개발한 타원형 궤도(몰니야 궤도, 툰드라 궤도)를 도는 위성도 북극에 지상국이 필요하다.
북극은 다른 천체에서의 탐사를 준비하는 우주비행사들을 훈련시키는 데도 유용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인도인 캐나다 북부의 데번섬에는 이런 시설이 두개 있다. 하나는 나사가 운영하는 호튼화성프로젝트(HMP), 다른 하나는 민간단체 화성협회(Mars Society)의 플래시라인화성북극연구소(FMARS)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위가 많은 척박한 환경이 훈련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형 위성 발사기지 잇따라 구축
북극은 우주 발사 기지로서도 중요하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기 극궤도에 소형 위성을 배치할 수 있는 발사 기지를 북극 인접지에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 코디액섬에 태평양 우주항 콤플렉스(Pacific Spaceport Complex)를, 러시아는 아르한겔스크 인근에 플레세츠크 우주발사기지를 두고 있다. 두 기지는 비상시에 우주 역량을 신속하게 재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은 이곳에서의 발사 횟수를 연간 최대 25번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올해 안에 완공되는 북위 69도의 노르웨이 안도야우주센터는 유럽 대륙 최초의 궤도 발사 시설이다. 그 바로 아래 북위 68도에는 극궤도 위성과 통신할 수 있는 스웨덴의 에스랑게우주센터가 있다.
북극권에 영토가 없는 중국도 북극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처음으로 북극을 포함시키고 ‘극지실크로드’ 구축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여름엔 북극해에 쇄빙선 3척을 파견하고 노르웨이 스발바르,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에 ‘민군 겸용’(dual-use)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극지 연구 시설을 운영하는 등 북극에서의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극에는 17개의 지상국이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이 단독 또는 합작으로 설치한 것이 4개로, 미국과 같다.
“북극 기지국은 파이프라인의 종착점”
미국 윌슨센터 극지연구소의 기술고문 데이브 마시는 우주뉴스매체 ‘스페이스뉴스’ 기고문에서 “위성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파이프라인이고, 북극의 지상국은 파이프라인의 종착점”이라며 “국제협력을 통해 우주 분야에서 북극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5년 미 육군 항공대 창설자 빌리 미첼 장군은 의회 연설에서 “미래엔 알래스카를 차지하는 자가 세계를 차지할 것”이라며 “알래스카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장소“라고 말했다. 알래스카의 지리상 위치가 동아시아, 유럽, 북미의 주요 도시와 거의 같은 거리에 있다는 데 주목한 그의 발언은 군사 항공 기지로서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세계 경제 및 산업 중심지의 90%가 알래스카 앵커리지공항에서 9.5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세계 육지의 67%가 북반구에 있고, 세계 인구의 90%가 북반구에서 산다.
90년이 지난 오늘 미첼의 통찰을 세계가 아닌 우주로 넓히고, 알래스카 대신 북극으로 치환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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