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국 美보다 2% 낮은 한국 금리... 이유가 뭘까
미국 국채 금리 4.8% 상승…한국은 하락
한국, 물가 안정되고 미국보다 성장률 낮은 탓
한국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53%, 미국 121%
"지나친 증세 정책, 경제활력 저하 우려"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미국발 국채금리 상승이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0년 만기 재무부 증권(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 증권) 금리가 4.8%를 위협할 정도로 치솟는 가운데, 미국 달러 가치가 2022년 9월 말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한국 정부가 발행한 국고채 금리는 2022년 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한국 금리가 기축통화 국가, 미국보다 낮아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물가 차이
한국 금리가 크게 떨어진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에 그친 반면, 미국 소비자물가는 2.9% 상승했는데, 미국 물가 상승률이 더 높은 만큼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더 낮아질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 대목에서 '환율이 이렇게 높은 데, 앞으로 물가가 급등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환율이 상승할 때 물가 불안 위험이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두 가지 요인이 한국 물가 상승을 억제할 것으로 기대된다.
첫 번째 요인은 계절성으로, 지난해 설 물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억제됐다. 지난해 1월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4%, 그리고 전월에 비해 5.6% 급등해 차례상을 차리는 시민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반면,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과일은 여전히 시세가 불안정하지만 작년과 비슷한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농산물 물가의 절대 레벨은 높지만, 상승률은 평년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두 번째 요인은 내수 불황이다. 건설업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 불안 속 음식료 및 도소매 등 서비스업 경기마저 가파르게 악화하다 보니, 개인 서비스 물가 압력이 억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참고로 개인 서비스 부문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의 대부분(0.96% 포인트)을 차지할 정도로 물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내수경기가 강한 반등을 보인다면 필자의 예측이 빗나가겠지만, 현재까지는 기약 없는 희망에 불과한 것 같다.
이상의 전망을 보면, 한국의 물가는 크게 상승하기 쉽지 않다. 급격한 기후 변동이 없는 한 농산물 물가 안정이 기대되는 데다, 내수경기도 좋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물가 상승률은 1% 남짓 차이 나지만, 금리는 왜 2% 이상 차이 나는 걸까?
2. 한미 성장률 역전, 장기화 가능성 크다
물가 상승률 차이보다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진 이유는 성장률 전망 때문이다. 한국은 2020년부터 인구 감소의 나라가 되었고, 유엔(UN)은 2037년에는 5,000만 명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한다. 반면 미국은 2028년 인구 3억5,0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73년에는 4억 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난해 인구 증가율이 무려 0.55%에 이르는 데, 이는 바이든 행정부 후반 강력한 이민 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곧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이민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속지주의 정책을 폐지하지 않는 한 미국의 인구 증가를 억누르기는 힘들다. 참고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1절에 따르면,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덕에 미국 경제는 이민이 증가할 때마다 강력한 경제성장을 누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멕시코 국경을 넘어 온 이민자의 대부분이 20대이기에, 새로운 사회에 도착하자마자 노동시장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고 또 자녀를 빠른 시기에 가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불법 이민자들이 1,100만 명에 이른다는 추산을 감안하면, 당분간 미국 인구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 흐름이다. 외국인 인구의 비중이 2022년 기준 단 3.2%에 불과한 탓이다. 이 결과, 한국 경제는 노령화 속도를 늦출 방법이 없다. 2022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17.4%에 불과하지만, 2030년이 되면 25.3%에 이르고, 2042년에는 35.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인구감소 및 노령화가 경제에 무조건 나쁜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1인당 자원이 더 많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으며, 경제의 안정성도 높아질 여지가 높다. 다만 경제성장률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요소가 크다. 2023년 기준, 한국 노인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3,782만 원에 그쳐 전체 가구 평균(5,864만 원)에 크게 미달한다. 특히 중앙값으로 비교하면 노인가구가 2,593만 원을 기록해, 전체 가구 소득(4,773만 원)의 절반을 약간 웃돌 뿐이다.
100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호프집을 가정해 보자. 3040 직장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가 들어오면 평균 소득은 수십억 원으로 뛴다. 그러나 호프집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중앙값 소득은 아마 4,000만 원 전후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득 통계를 볼 때 평균보다 중앙값을 주목해야 하는데, 한국 노인가구는 소득 수준이 전체 가구에 비해 낮은 것은 물론 소득불평등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인구감소와 노령화 흐름을 감안할 때,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미국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나라의 국채 금리가 무한정 떨어질 수 있을까? 성장률이 낮아지면 국가재정이 망가지고 외채 규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국가 재정구조도 한국이 월등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한국이 미국보다 더 건전한 재정을 자랑하는 나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정부는 강력한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펼쳐 지난해 명목 GDP 대비 국가부채가 무려 121%선까지 치솟은 반면, 한국의 명목GDP 대비 국가부채는 53%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한국이 강력한 세금 인상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주요 국가의 지난 13년 동안의 조세부담률 변화를 보여준다. 조세부담률이란, 명목 GDP에서 차지하는 세금 부담을 측정한 것으로 한국은 2010년 22.4%에서 2022년 32.0%로 치솟았다.
한국만큼 세금 부담이 높아진 나라는 그리스와 일본을 들 수 있는 데, 두 나라 모두 GDP의 100%가 넘는 국가부채로 허덕이는 나라들이다. 특히 그리스는 2010년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연금을 삭감하는 등 강력한 재정긴축을 강요받은 나라다. 반면, 한국은 재정이 매우 건전한데도 강력한 세금 인상을 단행한 유일한 나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담뱃세 인상을 시작으로, 소득세 및 법인세율을 연이어 올린 효과가 건전한 재정이라는 열매로 돌아온 셈이다. 낮은 성장률과 물가, 그리고 건전 재정이 유지되니 한국이 미국보다 더 낮은 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국채금리가 떨어지면 이점도 많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나 가계는 낮은 금리의 혜택을 볼 수 있으니, 자산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신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수경기, 그리고 높아지는 가계 연체율이라는 쓰디쓴 대가를 지불하는 중이다. 은행을 제외한 2금융권 연체율이 9년 새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우리 경제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물론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가파른 고령화 속에서 미래 복지지출 부담이 높아질 것에 미리 대비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다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증세 일변도로 달려가다 보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부디 장기적인 비전뿐만 아니라, 국민의 살림마저 챙기는 경제정책이 시행되기를 바란다.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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