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는 정권 아닌 환자 생각하며 일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5. 1. 20. 18:5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4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구급차를 타고 온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문윤수 |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12월31일에 시작한 수술이 1월1일에 마무리하였다. 어김없이 권역외상센터에도 새해가 밝았다. 2025년 새해는 수술실에서 이곳 의료진들과 함께 맞이하였다. 다행히 한 생명을 살렸다는 희열과 보람도 있지만, 기대가 전혀 없는 2025년을 맞이하였다는 암울함이 더 커졌다. 본인이 지난해 4월3일치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정부 마구잡이 정책 남발에 권역외상센터는 고갈될 지경’에서 언급한 ㄱ선생이 그리워진다. 원래ㄱ선생은 전문의 시험을 본 후 지금 1월부터 권역외상센터에서 근무할 예정이었다. 든든한 후배 외과의사 ㄱ선생이 이곳 권역외상센터에 합류하면 더 큰 힘이 되어줌과 동시에 이곳 인근 지역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골든타임 내 신속·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비율을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이라고 말한다. 이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더 많은 외상환자를 살린다는 의미다. 이곳 권역외상센터는 2015년부터 부단히 인근 지역 외상환자를 한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밤늦게 외과전문의 홀로 중증외상환자를 진료·수술하는 것보다 또 다른 외과 전문의와 함께하면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하다. 현장 목소리, 현실을 단 1도 모른 채 마구잡이 정책만 남발하여 외과 전공의 선생님 한명의 꿈을 짓밟아버리는 것은 동시에 그것은 환자들, 선량한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 필자가 근무하는 곳에서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정도의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권역외상센터가 유지된다. 그렇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중증외상환자들을 모두 수용·진료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빈번하다.

수년 전 머릿속에 유토피아 같은 권역외상센터를 그려보았다. ㄱ선생이 외과전문의가 된 후 이곳 권역외상센터에 합류하고, 추가로 의대생 시절부터 외상외과에 관심 있던 학생도 있다.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ㄱ선생과 학생이 전공의, 외과전문의가 되어 모두가 권역외상센터에 함께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로 결론이 나고 있다. ㄱ선생은 생계를 위해 외부 개인 의원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후배 의사는 이미 미국 의사시험을 치르고 미국으로 갈 준비하고 있다. 분명 이곳 권역외상센터에서 보람, 기쁨과 장점들을 더 적극적으로 말해주고 함께하자고 추천하고 싶었지만, 나라가 그것을 아예 말할 기회조차 막아버렸다. 그 사이 새로운 길, 각자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후배 의사들 선택이 어찌 보면 더 현명할 수 있다. 그 현명한 선택의 피해자들이 누가 될지 뻔하다. 지난해 초 야당 정치인의 안타까운 사건이 있어 잠시나마 권역외상센터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직업, 나이, 성별만 다르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같은 사건,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대부분 중증외상환자는 목소리 하나만으로 일하지 않고 둔탁한 안전화를 신고,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안전장치라고는 헬멧 하나밖에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주고, 헬기 이송을 쉽게 해주지도 않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모두의 중증외상환자이다. 그들을 지켜주고 살려줘야 하는 외상외과의사가 하나씩 사라지는 현실을 여의도에서는 분명 모르고 있다. 그들에게는 손가락 피 한 방울이라도 나더라도 청탁 전화할 전화번호가 수두룩하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 용산, 여의도, 광화문에 모든 기자, 언론이 집중하고 있다. 물론 국운이 달린 초유의 사태이기에 중요하다. 하지만 일개 외상외과의사, 권역외상센터에도 그러한 관심의 단 일부라도 가져줘야 정상적인 나라가 아닐까 싶다. 평생 살아가면서 본인 자신이나 가족, 지인이 중증외상환자가 될 확률이 높을지, 평생 계엄이란 사태를 맞이할 확률이 높을지는 누가 봐도 명확하다. 권역외상센터 핫라인, 중앙응급의료센터를 통해 시·도를 두개나 건너뛰어 150~200㎞ 떨어진 병원에서 중증외상환자 이송 문의가 하루에도 여러번 반복되는 현실은 자율주행이 가능한 지금 시대와 전혀 안어울린다. 할 수 있는데 해보지 않으려 하는 모두의 문제다. 외양간은 이미 무너져가고 있지만, 아직 그 안에 얼마 남지 않은 듬직한 소 같은 외상외과 의사들이 버텨주고 있다. 복지부는 정권을 위해 일하려 하지 말고, 국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중증외상환자를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