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크톤 사체? 땅속 금속탄화물?… 출생의 비밀 품은 ‘검은 황금’[Science]
유기물이 퇴적돼 만들어졌다?
플랑크톤 등 해양생물 사체들
지압·지열로 변형됐다는 주장
공룡 근원설은 규명된 바 없어
지구 속 금속탄화물이 변한 것?
땅속 철이온 등 화학반응 결과
지하수와 열·압력에 변했단 설
사실이라면 무한 공급도 가능
조만간 석유가 고갈된다는 우려는 익숙하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가 영위하는 현대 문명의 물질적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담긴 경고다. 석유 생산량이 급속도로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정점에 달한 후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피크 오일(Peak Oil) 이론은 놀랍게도 약 70년 전인 1956년 지질학자 킹 허버트에 의해 제시됐다. 초기에 정점 시기는 1970년대로 예측됐으나, 이후 1980년에서 2000년대 초, 2040년 등 계속 미뤄지고 있다.
지난해 6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석유 수요가 2029년 정점을 찍고 2030년부터 감소할 것이라 전망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가 더 많이 사용될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런 전망과 무관하게 우리는 매일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입고 있는 옷의 합성섬유나 사용하는 플라스틱 물건의 대부분은 석유화학으로부터 온 것들이다. 우리 일상 전반에서 사용되는, 고갈될 듯 고갈되지 않는 석유는 대체 어디서 유래할까? 먼 옛날 죽은 공룡들의 사체가 석유로 변했다면 어째서 고갈되지 않는가?
◇공룡보단 플랑크톤이 유력…유기기원설
석유는 자연 발생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탄화수소들의 액체 혼합물이다. 탄화수소는 탄소와 수소가 화학적으로 결합한 물질로, 석유의 기원을 따진다는 것은 즉 탄화수소의 기원을 따진다는 말과 같다. 세간에선 흔히 먼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들, 예컨대 공룡이나 고대 식물의 사체가 탄화수소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이처럼 죽은 유기물이 탄화수소의 근원이라는 ‘유기기원설’이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한 가설로 여겨진다.
공룡 화석이 석유로 변했다는 가설은 석유가 주로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에 힘입어 꽤 오랜 기간 지지받았다. 다만 현재 학계에서 주로 다루는 유기기원설은 탄화수소의 근원이 유기물, 특히 플랑크톤과 같은 죽은 해양생물들의 사체라고 설명한다. 유기기원설에 따르면 죽은 유기물은 바다나 하천의 바닥, 또는 습지에 쌓여 진흙·먼지 등과 함께 퇴적층을 구성한다. 또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위에 또 다른 침전물들이 쌓이며 지층을 형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굉장한 열과 압력이 발생하며 유기물 퇴적층의 성분이 변한다는 것이다. 유기물과 특수 박테리아의 작용, 금속화합물의 촉매작용 등이 고온·고압 조건을 만나 탄화수소로 변했다는 주장이 바로 유기기원설이다.
공룡 화석이 아닌 해양생물의 사체가 더 유력한 후보로 추정되는 이유는 공룡을 비롯한 육상동물의 경우 사체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쉽게 부패하고 산화되기 때문이다. 탄화수소는 산소와 접촉하면 이산화탄소나 일산화탄소로 변하기 때문에 탄화수소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산소로부터 차단된 환경이 필요하다. 해양생물 사체의 경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산소와 차단된다는 점에서 더 유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동물의 경우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등으로 구성되는데, 일반적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분해에 매우 취약해 장기간에 걸친 퇴적과 화학변화가 일어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석유가 풍부한 중동 지역이 중생대 당시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은 이런 해양생물 가설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구 안에서 샘솟는 석유? 무기기원설
“공룡이냐 플랑크톤이냐”와 완전히 별개로 석유가 유기물에 기원하지 않는다는 가설도 있다. 지구 내부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금속탄화물이 지각 내 고온·고압 조건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탄화수소로 변했다는 ‘무기기원설’이다. 무기기원설에 따르면 석유의 근원은 유기물의 사체가 아닌 지구 내부의 철(Ⅱ)이온·리튬이온·염화이온 등이다. 이런 금속탄화물이 바다나 호수 등 지표로부터 스며든 물속 마그네슘 이온이나 이산화황과 만나 지각 깊은 곳에서 높은 압력과 온도에 노출되면 탄화수소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만약 무기기원설이 사실이라면 석유의 근원은 지구 중심부의 마그마로부터 거의 무한한 수준으로 공급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석유 고갈을 우려하던 사람이라면 이만큼 반가운 소식도 없다. 무기기원설을 주장하는 근거로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포함, 일부 행성에서 탄화수소의 일종인 메탄이 존재한다는 점도 고려된다. 타이탄의 평균온도는 영하 179도로 유기 생명체가 존재하기엔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이다.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나,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1997년 10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에서 발사돼 우주로 떠난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이겐스는 타이탄을 관찰·탐사한 결과 타이탄에 다량의 메탄이 액체·기체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만약 탄화수소가 유기체로부터만 비롯된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다.
그러나 무기기원설은 지구 중심부에서 금속탄화물이 어떻게 유래되는지,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 각종 탄화수소가 뒤섞인 석유의 성분을 분석했을 때 질소·황 등 단백질 분해 시 발생하는 불순물이 함유돼 있다는 점은 유기기원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석유가 유전되려면 ‘유망구조’ 필요
이런 가설들에 따라 탄화수소 화합물이 생성되더라도 석유가 고여 추출 가능한 유전으로 성립되기 위해선 필요한 구조가 있다. 지난해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동해 심해 가스전 ‘대왕고래’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많이 언급된 유망구조다. ‘트랩’이라고도 부르는 이 지형은 근원암과 저류암, 덮개암 등으로 구성되는데, 가장 밑에 있는 근원암에서 생성된 탄화수소가 그보다 위에 있는 다공질의 사암·석회암 등에 스며들어 저류암이 된다. 공극은 이 저류암 사이의 틈새로, 원유와 물 그리고 천연가스는 공극에 채워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저류암에 모여든 석유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매우 치밀한 구조의 암석층의 덮개암이 저류암을 둘러싸야 한다.
구혁 기자 gugija@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석유 가공한 ‘고부가 소재’ … 반도체·2차전지 등 미래산업 주도[Science]
- [속보]국민의힘 46.5%·민주 39%…정권 연장 48.6%·정권 교체 46.2%[리얼미터]
- 김재원 “감옥 갇힌 윤석열이 괴수 이재명 끌어내릴 것…尹 聖戰 거병한 아스팔트 십자군에 경
- ‘부정선거론자’ 황교안, “체포된 86명 무료 변론할 것” 모금도
- ‘영장 반려’ 김성훈 경호차장 석방되자…곧장 尹있는 서울구치소로
- [속보] 검찰, ‘尹 체포저지’ 김성훈 경호차장 구속영장 반려…즉시 석방
- [속보] 尹, 옥중 입장문 “국민 분노 이해…평화적 방법으로 의사 표현해주길”
- 조갑제 “尹에 줄서면 한국 보수 100년 안으로 집권불가능할 것”
- 부수고 던지고 때리고…서부지법 난동, 과격해진 이유는?
- 끝모를 개혁신당 내홍…최고위원 4인 “김철근 해임·이주영 교체 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