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비상계엄, 김대중의 ‘망명 일기’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5. 1. 20.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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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겉장의 손바닥만 한 포켓 다이어리 흰 종이들을 빽빽한 글씨가 뒤덮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비상계엄' 직후 망명 일기 육필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날, '2024년 비상계엄'으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이 남긴 하나의 종이 뭉치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일기가 시작된 지(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꼭 한 달 뒤인 1972년 11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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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2년 박정희 정권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작성한 망명 일기.

검은색 겉장의 손바닥만 한 포켓 다이어리 흰 종이들을 빽빽한 글씨가 뒤덮고 있다. 한자·한글·영어를 섞어 흘려쓴 글씨체가 급박하면서도 단호하다. 기록의 첫 줄은 ‘1972년 10월17일 화요일 맑음.’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이다. 글쓴이는 김대중. 신민당 의원이던 그는 출장으로 일본 도쿄에 머물던 중 고국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망명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매일 빠짐없이, 하루에 일어난 중요한 일에 1, 2, 3 숫자를 붙여가며 비상계엄 후 대한민국의 불행과 고난, 그 와중에 발견한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의 증거들을 빼곡히 기록해나간다.

〈시사IN〉이 최초 공개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10월17일부터 한 달간의 망명 일기는 2025년의 우리에게 단순한 사료(史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53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살아 숨 쉬듯 말을 거는 구절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사라져버렸다. (···) 참으로 청천벽력의 폭거요,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처사다(1972년 10월17일 박정희 비상계엄 선포 당일).”

“(서울의 계엄령 보도를 보고) 기자 질문에 노한 표정으로 “계엄령이니까 아무것도 말 못한다”고 하는 청년 두 명의 표정에 우리 동포들의 기막힌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1972년 10월24일).”

“우리 민족은 그 역사를 보더라도 가장 평화적이고, 선의의 민족인데 왜 이토록 불행하고 슬픈 역사만 되풀이해야 하는지 비통하기 그지없다. 오늘의 발표를 보고 그들은 얼마나 놀라고 분해할까···(박정희의 유신헌법안이 발표된 1972년 10월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비상계엄’ 직후 망명 일기 육필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날, ‘2024년 비상계엄’으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이 남긴 하나의 종이 뭉치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윤석열이 체포되던 1월15일 윤석열 페이스북 계정에 사진과 전문이 게재됐다. “이 글은 새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만년필을 들고 밤새 작성한 ‘국민께 드리는 글’입니다. 육필 원고 그대로 올려드립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같은 육필 원고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윤석열의 그 ‘종이 뭉치’에는 읽는 자에게 목불인견의 고통을 안기는 궤변만 잔뜩 적혀 있었다. 굳이 여기에 그 세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겠다.

1월15일 윤석열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윤석열의 ‘국민께 드리는 글’ 육필 원고. ⓒ윤석열 페이스북 갈무리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시 1972년 망명 일기를 읽으며 가라앉혔다. ‘내란성 우울’로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일기가 시작된 지(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꼭 한 달 뒤인 1972년 11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쓴다.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길게 내다보는 외에 도리가 없다. (···) 독재정권은 꼭 자체 모순 속에서 생각지 않은 시기에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사고가 터지고 마는 법이다. 답답할 때는 역사를 읽자! 거기는 무한의 교훈이 숨어 있다.” 소설가 한강의 질문이 떠오른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시사IN〉 홈페이지 뉴인 기사(https://www.sisain.co.kr/54885)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비상계엄 망명 일기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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