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비상계엄, 김대중의 ‘망명 일기’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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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겉장의 손바닥만 한 포켓 다이어리 흰 종이들을 빽빽한 글씨가 뒤덮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비상계엄' 직후 망명 일기 육필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날, '2024년 비상계엄'으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이 남긴 하나의 종이 뭉치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일기가 시작된 지(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꼭 한 달 뒤인 1972년 11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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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겉장의 손바닥만 한 포켓 다이어리 흰 종이들을 빽빽한 글씨가 뒤덮고 있다. 한자·한글·영어를 섞어 흘려쓴 글씨체가 급박하면서도 단호하다. 기록의 첫 줄은 ‘1972년 10월17일 화요일 맑음.’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이다. 글쓴이는 김대중. 신민당 의원이던 그는 출장으로 일본 도쿄에 머물던 중 고국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망명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매일 빠짐없이, 하루에 일어난 중요한 일에 1, 2, 3 숫자를 붙여가며 비상계엄 후 대한민국의 불행과 고난, 그 와중에 발견한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의 증거들을 빼곡히 기록해나간다.
〈시사IN〉이 최초 공개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10월17일부터 한 달간의 망명 일기는 2025년의 우리에게 단순한 사료(史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53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살아 숨 쉬듯 말을 거는 구절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사라져버렸다. (···) 참으로 청천벽력의 폭거요,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처사다(1972년 10월17일 박정희 비상계엄 선포 당일).”
“(서울의 계엄령 보도를 보고) 기자 질문에 노한 표정으로 “계엄령이니까 아무것도 말 못한다”고 하는 청년 두 명의 표정에 우리 동포들의 기막힌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1972년 10월24일).”
“우리 민족은 그 역사를 보더라도 가장 평화적이고, 선의의 민족인데 왜 이토록 불행하고 슬픈 역사만 되풀이해야 하는지 비통하기 그지없다. 오늘의 발표를 보고 그들은 얼마나 놀라고 분해할까···(박정희의 유신헌법안이 발표된 1972년 10월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비상계엄’ 직후 망명 일기 육필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날, ‘2024년 비상계엄’으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이 남긴 하나의 종이 뭉치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윤석열이 체포되던 1월15일 윤석열 페이스북 계정에 사진과 전문이 게재됐다. “이 글은 새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만년필을 들고 밤새 작성한 ‘국민께 드리는 글’입니다. 육필 원고 그대로 올려드립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같은 육필 원고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윤석열의 그 ‘종이 뭉치’에는 읽는 자에게 목불인견의 고통을 안기는 궤변만 잔뜩 적혀 있었다. 굳이 여기에 그 세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겠다.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시 1972년 망명 일기를 읽으며 가라앉혔다. ‘내란성 우울’로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일기가 시작된 지(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꼭 한 달 뒤인 1972년 11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쓴다.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길게 내다보는 외에 도리가 없다. (···) 독재정권은 꼭 자체 모순 속에서 생각지 않은 시기에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사고가 터지고 마는 법이다. 답답할 때는 역사를 읽자! 거기는 무한의 교훈이 숨어 있다.” 소설가 한강의 질문이 떠오른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시사IN〉 홈페이지 뉴인 기사(https://www.sisain.co.kr/54885)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2년 비상계엄 망명 일기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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