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법집행 이젠 끊어낼 때[김선걸 칼럼]
책장에 ‘안종범 수첩’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시간을 담은 책이다.
장장 1791일, 4년 11개월간 옥고를 치른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비망록이다.
검찰수사 관련 이런 대목이 있다.
“그 검사는 삼성의 합병 과정에서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하는 것이 ‘협조’라고 했다. 나(안종범)는 그런 지시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가족 관련 모든 것을 조사해서 언론에 알리겠다’고 압박했다(중략). 내 조카의 취업 문제를 거론했다. 딸, 아들, 사위의 취업 문제 등 가족 비위 사실을 들추겠다 했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기소 때까지 이런 별건 수사는 계속됐다.”
이 ‘검사’가 누군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당시 수사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윤 대통령은 또 2017년 서울지검장이 된 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재조사해 파견 검사들까지 무더기로 구속했다. 기밀취급 인가를 받은 직원들의 대응을 ‘수사방해’로 죄를 물었다. 국정원 법률보좌관이었던 변창훈 검사는 수사 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런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현직 대통령으로선 헌정상 처음 체포됐다. 새벽 5시부터 공수처와 경찰이 관저까지 몰려갔다. 평화로운 한남동 주택가에 등장한 4000여명의 제복은 기괴하고 과도했다.
공수처는 수사 권한이 있는지 논란이다. 더구나 관할 법원이 아닌 곳에 영장을 신청했다는 ‘영장 쇼핑’ 논란까지 있다. 대통령은 도주의 위험이 없고 이미 내란죄 혐의 관련자들이 구속돼 있고, 탄핵소추가 짧으면 2~3개월에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 생중계하며 체포한 상황 자체가 폭력적이고 억지스럽다. 국가신인도는 또 한번 큰 타격을 입었다.
예나 지금이나 왜 수사권이란 칼만 쥐어지면 무데뽀로 인신구속과 별건수사를 남발하나? 2025년 초문명국 한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다.
한때 윤 대통령이 이런 수사의 주체였다. 이제 수사의 대상으로 입장이 바뀐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실제 이런 난폭한 수사는 2017년 한국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당시 특검과 검찰수사는 박 전 대통령에서 끝난 게 아니다. 삼성, 롯데, CJ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의 성장엔진을 망가뜨렸다.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무리하게 수사했고 그 후유증이 남았다.
그리고 이런 과장된 수사는 문재인 정권 탄생을 불러왔다. 전 정권 탄핵이 자신들에 대한 지지라고 착각한 문 정권은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악법 등 자해 수준의 극단 정책을 쏟아냈다 .
과잉 수사로 시작한 광풍은 국가 잠재력을 훼손하고 정부 시스템을 고장 냈다.
민주당은 곧 ‘내란특검법’을 강행 처리할 방침이라 한다. 벌써 법안의 과도한 수사 규모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명백한 잘못이다. 단지 윤 대통령 탄핵을 명분 삼아 또다시 야만적 수사와 국가적 혼란을 획책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2017년 상처를 잊어선 안 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때 과도한 수사의 주체였지만 이제 역사적 수사의 대상이 됐다.
계엄 책임은 엄중하게 져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그를 마지막으로 폭력적 과잉 수사의 악습이 끝났으면 한다.
그게 결자해지다. 법조인이자 한때 수사 검사로서, 이젠 수사를 받는 그가 과도한 법 집행의 고리를 끊는 분기점이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4호 (2025.01.22~2025.0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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