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부터 호텔까지… 사극의 변신은 무죄?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최근 사극의 변신이 과감해졌다. 청소년 관람불가의 표현 수위를 담은 《원경》이나 조선시대 용천루라는 호텔을 소재로 하는 《체크인한양》, 조선시대판 법정물 성격을 띤 《옥씨부인전》이 그 사례다.
먼저 사극 《원경》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와 19세 미만 관람불가(이하 19금) 버전으로 각각 tvN과 티빙에서 방영되고 있다. 같은 내용이지만 두 버전의 표현 수위는 당연히 다르다. 티빙의 19금 버전은 tvN 15세 버전에서 편집된 정사 신을 그대로 담았다.
이런 시도는 이미 역사 왜곡 논란으로 2회 만에 종영됐던 《조선구마사》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SBS에서 방영됐던 《조선구마사》는 19금을 달고 방영된 사극이었다. 물론 그 19금은 노출보다는 목이 날아가는 등의 폭력성에 대한 것이었다. 《조선구마사》가 19금을 달고 방영된 건 당시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도 19금 드라마가 힘을 발휘한다는 게 몇몇 드라마를 통해 증명되면서다. 대표적으로 《SKY캐슬》과 《부부의 세계》는 19금을 달고도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각각 23.8%, 28.4%라는 놀라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원경》의 파격과 《체크인 한양》의 상상력
이런 변화가 이미 생겨났던 건 사실이지만, 사극에서만큼은 여전히 파격적인 느낌이 있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역사라는 한 축을 갖고 있어 다소 보수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OTT가 본격적인 저변을 갖게 되면서 사극 또한 그 보수성을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작년 티빙에서 방영된 《우씨왕후》가 '19금' 버전의 사극을 시도했다. 물론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노출 수위 같은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지 못해 노출 수위만 남은 작품이 됐을 뿐이다.
이와 비교하면 《원경》은 확실히 다르다. 이방원(이현욱)이 원경왕후(차주영)와 동지적 관계에서 왕위에 오르지만 그 후부터 왕후의 외척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에 벌어지는 애증의 대결을 치밀한 심리로 표현했고, 역사적 사실들을 적절히 섞어 완성도 높게 담아냈다. 티빙에서 방영되는 버전에는 파격적인 노출 신이나 정사 신이 등장하지만, 이를 편집해낸 tvN의 버전을 봐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이것은 《원경》이 자극적인 맛만 노린 작품이 아니라는 걸 말해 준다. 다만 좀 더 내밀한 표현을 담았을 뿐이다.
실제로 이방원과 원경이 합방을 하는 장면에서 그곳에 숙직상궁을 불러들여 그것이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의례적으로 치르는 합방이라는 걸 이방원이 드러내자 원경이 이를 거부하는 장면은 19금 표현에서 가능할 내밀한 심리를 담아낸다. 이방원이 외척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후궁을 거느림으로써 원경과 불화를 일으킨 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즉 《원경》의 시도는 파격적이긴 하지만, 좀 더 주체적으로 원경왕후라는 인물을 재조명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 보수적인 위치에서 작은 변화에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사극은 이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원경》 같은 표현 수위의 파격만이 아니다. 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는 《체크인 한양》은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허구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상역사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사극에는 용천루라고 불리는 호텔이 등장한다. 조선을 시공간의 배경으로 차용하고 있지만, 궁궐 앞에 보란 듯이 세워진 최대의 객주 용천루와 그 주인인 천방주(김의성)는 무기력해 보이는 왕 이현위(한재석)보다 위세가 높은 인물이다. 자본의 힘이 정치 권력까지 쥐락펴락하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담은 것이지만 파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설정 위에서 용천루에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입사해 오디션 경쟁을 펼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장여자 홍덕수(김지은)가 같은 방 동기들인 무영군(배인혁), 천준화(정건주) 그리고 고수라(박재찬)와 엮어가는 로맨스와 우정 서사도 빠지지 않는다.
사극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현대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파격적인 스토리다. 역사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버리고 상상력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사극의 과감한 변신은 이미 2010년 《성균관 스캔들》 같은 허구적 세계가 사극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연모》 《옷소매 붉은 끝동》을 거쳐 《슈룹》이나 《연인》 《밤에 피는 꽃》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극의 흐름을 보면 이 과감한 파격들이 단번에 생겨난 변화는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OTT의 등장과 웹소설, 웹툰이 미친 영향
최근 방영되고 있는 《옥씨부인전》 역시 이러한 변화가 느껴지는 사극이다. 노비였던 구덕이(임지연)가 옥태영이라는 양반으로 정체를 숨긴 채 외지부(변호인)가 되어 억울한 일을 당한 민초들을 대변해 싸우는 이야기다.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다른 파격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본래 양반집 자제인 송서인(추영우)이었지만 자신이 기생에게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전기수 천승휘로 살아왔던 인물이다. 다소 복잡해 보일 정도의 파격적인 전개지만 시청자들은 이러한 허구적 상상력에 반색하는 눈치다. 자신의 태생적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겨운 구덕이나 송서인 같은 인물이 가짜의 삶을 선택해 거기서 행복감을 누리는 모습이 현대 서민들의 정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과거 지상파 드라마가 대세로 자리 잡았던 시절, 정통이냐 퓨전이냐를 묻고 실제 역사와 허구 사이의 괴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몇 년간 생겨난 사극의 파격적인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출발은 OTT의 등장이다. 과거 소재도 표현도 제한됐던 사극은 '선택적 시청'을 하게 된 OTT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 자유도가 커졌다. 19금도 가능해졌고, 시공간만 조선을 빌려 거의 현대극처럼 그려진 사극도 '취향'과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포용됐다.
《성균관 스캔들》 같은 작품이 보여줬던 것처럼 웹소설이나 웹툰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웹소설과 웹툰이 내놓은 사극 버전의 다양한 상상력은, 이를 원작으로 하는 사극들을 통해 조금씩 저변을 넓혀왔다. 물론 사극에서 역사를 허구 이외에도 중요한 한 축으로 생각했던 시절만 해도 이에 대한 반발과 논란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일들이 거의 생겨나지 않을 정도로 변화했다. 이는 사극 자체를 보는 대중의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역사와 극 사이의 무게추가 허구인 극 쪽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 업계에서 다소 보수적인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사극이 역사를 벗겨내면 낼수록 그 표현의 자유도는 높아지지만, 사극 특유의 무게감 자체가 사라짐으로써 현대극과의 변별력 또한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도 다양성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기우에 불과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즉 허구에 방점을 찍는 《체크인 한양》 같은 사극이 있는 반면, 실제 역사적 사실이 어우러진 《원경》 같은 사극도 존재하는 다양한 사극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결정은 대중의 취향과 선택에 달렸다. 사극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된 틀이나 강령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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