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는 몸짓, 무탈을 바라는 마음 [.txt]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인류가 진화할 수 있던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직립보행이다. 두 다리로 걷게 되니 남는 손으로 도구를 쓸 수 있었고, 뇌 용량이 커지며 언어가 발달했다. 내 직업은 고스란히 직립보행 덕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현생인류 중 많은 이들이 직립의 대가를 가혹하게 치르고 있다. 척추질환, 치질, 평발, 사랑니 같은 것들이다.
나 역시 회사에 다닐 때 목부터 통증이 시작되더니,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면서 허리까지 내려와 고생했다. 물리치료로도 나아지지 않던 중 필라테스에 입문했다. 종일 책상에 앉아 글 쓰는 직업을 오래 하려면 튼튼한 코어가 필수, 이를 위해서는 필라테스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대한민국에 필라테스가 상륙한 건 2000년대 초, 대중화된 건 이제 겨우 10년이다.
“사무직 회사원이었어요. 몇 년 동안 일하다 보니 자세가 틀어져 몸에 문제가 생겼어요. 교정하려고 필라테스를 시작했죠. 그러다 흥미가 생겨 강습까지 하게 됐고요.”
어떻게 강사가 됐느냐는 물음에 조곤조곤 답하는 5년 차 필라테스 강사 유주(가명)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자신의 일터에서, 자주 보는 수강생과 하는 인터뷰인데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필라테스 수업 때는 몸이 뻣뻣한 내가 그녀 앞에서 늘 긴장하곤 했는데, 상황이 역전되었다.
“출근하면 일정부터 확인해요. 일대일이건 그룹이건 강습 시간부터 분배해야 꼬이지 않거든요. 그런 다음 회원 개개인에게 맞는 운동을 계획하죠. 각자의 상태에 따라 신경 쓸 부분이 다르거든요. 목이나 허리가 안 좋으신 분에게 그 부위를 자극하는 운동을 시키면 오히려 나빠져요.”
강습은 하루에 보통 여섯 번, 그룹 강습을 포함하면 대략 스무 명 정도를 상대한다. 운동 시작 전에 안부를 묻는 건 필라테스 강사가 꼭 해야 할 일이다. ‘다친 곳이 있다’, ‘어느 부위가 불편하다’, ‘생리 중이다’, 회원의 대답에 따라 계획했던 운동을 곧바로 수정한다.
필라테스는 이미 레드오션(포화 시장)이 된 판국이다. 진입 장벽이 낮으니 소셜미디어(누리소통매체)에 화려한 사진을 올리며 홍보로 승부를 거는 강사도 많다. 하지만 이 업의 본질은 타인의 몸을 다루는 것이 아닌가. 몸매가 경쟁력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몸을 맡길 만큼의 운동 지식과 경험이 강사의 핵심 역량일 것이다. 나와 1년째 함께하는 유주는 어떨까.
“민간 자격증이 있어요. 필라테스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죠. 해부학 관련한 자격증도 땄고요. 아, 영양사 기본 자격증도 있어요. 회원님들을 지도하려면 필요한 자격이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죠.”
해부학에 영양사라니, 손가락으로 꼽으며 듣다가 눈이 동그래져 쳐다보자 유주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도한 회원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기억나는 분이라……. 아, 외국인 회원이 계세요. 홍콩 사람인데, 한국에 나와서 일하는 사장님이시죠.”
한국계 홍콩인은 아니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으니 이제 중국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느냐고 되물으며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회원가입처럼 복잡한 내용은 그분의 한국인 비서를 통해 우리말로 소통했고, 이후 필라테스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영어로 운동을 가르치다니, 능력자 아닌가.
‘싱글 레그 스트레치’(누운 자세에서 양다리를 번갈아 뻗는 동작)처럼 간단한 동작 하나를 가르치려고 해도 ‘복부 근육에 힘을 주고 등은 바닥에 밀착하세요. 이제 시선을 배꼽에 두고 상체를 견갑골까지 올리세요’, 이렇게 길고 복잡한 말을 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한영 번역을 하려니 첫 단어인 ‘복부’부터 막혔다. ‘스터먹’(배)과는 다를 텐데.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유주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최소한의, 짧은 영어를 써요.”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작가님한테도 제가 ‘괜찮냐’고 자주 묻잖아요? 그분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아 유 오케이?’(괜찮아요?)예요. 그날 컨디션부터 알아야 하니까요. 괜찮다고 하면 등을 가리키며 말해요. 아, 그 회원님은 등이 좀 굽었거든요. 등을 굽히고 운동하면 효과가 떨어지니까 ‘스트레이트’(펴요)라고, 등을 펴라고 말하죠.”
해외여행을 갈 때 나도 쓰곤 하는, 효율성과 효과성에 중점을 둔 실전 영어였다.
“정말 간단한 영어죠. ‘싯 다운’(앉아요), ‘라이 다운’(누워요), 거울을 보며 ‘룩 앳 유어 아이스’(눈을 보며 해요)와 같은. 한국어로 할 때와 내용이 다를 건 없는데 영어로 하니까 긴장이 돼요. 누가 볼까 봐 부끄럽기도 하고요.”
어느새 긴장이 풀린 유주가 밝은 표정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영어보다 더 나은 게 뭔지 아세요?”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녀가 손뼉을 치며 웃더니 바로 그거라고 했다.
“맞아요. 만국 공통어가 있잖아요. 보디랭귀지! 제가 시범을 보이고 ‘오케이?’(알겠죠?) 하고 말하면 그 회원님이 곧바로 따라 해요. 처음에는 창피했는데, 오해 없이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니까 편하더라고요.”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며 힘든 점은 무엇일까. 인터뷰를 앞두고 인공지능(AI)에 먼저 물어보니 신체적 부담, 회원 관리에 따른 정서적 노동, 수입의 불안정성 같은 걸 나열했다. 이어진 유주의 대답은 인공지능이 길게 제시한 목록에는 없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굳이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수업이 길어질 때예요. 강습 한 번에 보통 50분이 걸리잖아요. 예약한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한분 한분 맞춰드릴 수 없는데도, 어쩌다 앞 타임이 늘어질 때가 있어요. 한번 그러면 연쇄 작용으로 다음 회원도 늦어지고, 계속 밀리고. 그러면 저는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마음이 더 조급해지거든요.”
매번 수업 때마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나 같은 회원이 강사에게는 더 나은 것인가, 묻지는 않았다. 강습 시간을 준수하는 것 다음으로 힘든 건 박자를 세는 일이란다. 박자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면 리듬이 깨져서 운동을 마친 뒤 회원들이 피로를 호소한다며.
“필라테스에는 빠르게 하는 동작도 있지만, 천천히 해야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룹으로 수업할 때는 회원님들 속도가 제각기 달라지기도 해요. 그럴 때는 박자를 맞춰서 함께 할 수 있게 이끌어야 하는데, 맞추지 못해서 힘들어하시는 회원님들이 있어요. 많이 어긋난 날에는 수업을 마치고도 찜찜해요.”
은근슬쩍 수입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 프리랜서인 만큼 강사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을 예상한 터였다. 유주는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해 만족할 정도라고 답했다.
“많이 벌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불만이 덜한 수준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제가 일하는 시간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프리랜서잖아요. 고정급이 아니라 아쉬운 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일을 하기로 정한 사람이 저예요. 더 벌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몸에 탈이 나니까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서 일정을 짜야 해요.”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건 어려운 문제다. 필라테스에서도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는 건 내게도 어려운 일이다. 필라테스 강사로서 유주에게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내성적인 제 성격이요. 그래서 강사로 나서며 고민이 많았어요. 회원들에게 강습할 수 있을까? 상담 같은 건 어떻게 하지? 걱정이 꽤 됐죠. 사실 회원을 상대하는 건 요즘에도 어려워요. 회원님들의 성격이나 기분, 몸 상태에 따라 힘들 때가 있어서요.”
앞으로는 운동할 때 힘들다고 하소연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필라테스 강사로서의 목표나 포부가 있는지 물었다. 길게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녀가 이내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무탈하게 지내길 바라요.”
사전적으로는 ‘병이나 사고가 없다’라는 뜻의 ‘무탈’,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기와 달리 숱한 역경을 헤치며 살아왔나. 프리랜서라 계약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것일까. 거대 담론이나 시대정신보다 자신의 안정된 삶이 중요하다는 소시민적 태도인가.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유주가 설명을 보탰다.
“몸을 쓰는 직업이잖아요. 까딱 잘못하면 다칠 수 있다는 의미죠. 사고를 피해야 한다고 마음에 새기면서 운동을 지도해요. 회원님들이 다치지 않게, 문제가 생겨도 회복이 더디지 않게요. 건강을 지키려고 여기에 왔는데 도리어 해치면 안 되잖아요. 너무 먼 일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지금에 집중하며 일하고 싶어요. 말하고 보니, 참 소박한 꿈이죠?”
인터뷰가 끝나자 유주는 포니테일 스타일로 야무지게 묶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나갔다. 강습을 마치면 늘 서둘러 빠져나오려던 곳인데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박자가 어긋난 날이면 수업을 마치고도 찜찜하다는 그녀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을 되뇌며 텅 빈 필라테스 센터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늘 보던 리포머와 배럴, 체어, 매트 같은 기구들이 새삼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여기가 바로 유주가 말한 그 ‘무탈’이 연유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유주는 내일도 이곳으로 출근하며 무탈을, 회원들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다.
일상에서 무탈한 현재에 감사함을 느끼는 때는 거의 없다.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내가 필라테스에 입문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는 몸에 이상이 생긴 뒤에야 운동을 시작한다. 관심을 두지 않고 편한 자세로 살다 보면 코어가 무너진다. 우리가 치러야 할 직립의 대가다.
2024년 마지막 달, 대한민국은 비상계엄과 제주항공 참사를 연달아 겪었다. 국가의 코어가 무너진 격이었다. 세계가 우리에게 묻는다. “아 유 오케이?”라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또 해낼 것이다. 참혹한 현재를 무탈로 복귀하고,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소설가 이정연
이정연 l ‘월급 사실주의’ 동인.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 ‘속도의 안내자’를 냈고, 소설집 ‘미러볼이 있는 집’을 출간했다.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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