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천만원 찍히지만 매일 불면증”...정신건강 무너져 내린다는 이 직업 [박민기의 월드버스]
업무 과다·경쟁 심화·성과 압박 등 요인
응답자 중 40% ‘업무 책임감’ 시달려
의뢰인·동료·상사와의 대인관계 영향도
美·英 등 해외는 체계적 지원 제공하는데
韓은 관리 프로그램 없이 사각지대 방치
서울변회, 이모셔너그라피와 첫 강연
![업무와 성과 압박 등에 시달리는 변호사 [이미지 출처 =챗GPT]](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1/18/mk/20250118185414803xner.png)
A씨는 “매일 수많은 의뢰인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심리 상태를 돌보는 것이 변호사의 업무 중 하나이지만, 정작 나 자신의 정신건강은 돌보지 못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매일 밤을 지새운다”고 토로했습니다.
법정에서 의뢰인을 대리해 첨예한 법적 공방을 대신 수행하는 변호사 대다수가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법조인 멘탈케어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이모셔너그라피가 지난 6일 변호사 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2명(40%)이 정신적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으로 ‘업무 책임감 및 성과 압박’을 꼽았습니다. 이어 13명(24%)은 ‘의뢰인과의 관계’, 9명(16%)은 ‘개인 생활과 업무의 불균형’, 7명(13%)은 ‘과도한 업무량’, 4명(7%)은 ‘동료·상사와의 대인관계’를 지목했습니다.
국내 변호사들이 이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과열된 경쟁과 의뢰인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안겨줘야 한다는 법률전문가로서의 책임감 등이 있습니다. 2009년 로스쿨이 처음 도입된 이후 정원이 2000명으로 크게 늘면서 매년 법률 시장에 나오는 신규 변호사 수도 2배 이상 늘어 최근 계속 1700명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2년 1712명이었던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는 2023년 1725명을 거쳐 지난해 1745명까지 늘었습니다.
이처럼 변호사 수가 늘었지만 전체 개업 변호사 중 75%는 서울에 쏠려 있습니다. 지방보다 근무 환경·조건이 좋고 더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서울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졌습니다. 법적 분쟁 과정에서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의뢰인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몫합니다.
한 변호사는 “항상 승소할 수 있으면 최선이겠지만 나 홀로 수많은 사건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감정이 많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나를 믿고 사건을 맡긴 의뢰인에게 안 좋은 결과를 공유할 때는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변호사들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국내의 체계적 서비스는 전무한 수준입니다.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련 통계·연구 등도 매우 열악한 실정입니다. 이는 해외와는 매우 다른 상황입니다. 미국변호사협회(ABA)는 산하조직인 변호사지원위원회(Commission on Lawyer Assistance Programs)를 통해 변호사 등 법조인의 정신건강 관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변호사 등이 알코올 중독·약물 남용·정신건강 문제 등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지원과 도움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같은 지원이 크게 뒤처져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최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아직 국내 변호사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공식 프로그램을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근 쏟아지는 변호사들 수요에 발맞춰 지난 7일 처음으로 이모셔너그라피와 함께 ‘법조인의 멘탈 케어:나를 지키는 감정 관리 비법’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업무에 쫓기는 변호사들을 고려해 점심시간이 포함된 낮 12시부터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강연에는 300여명에 달하는 변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해당 강연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변호사들의 심리 패턴을 6가지로 분석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고통을 참는 경우’,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약함으로 보는 인식’, ‘과도한 책임괌과 완벽주의’, ‘객관화는 뛰어난 반면 감정 표현에는 미숙’, ‘의뢰인에게는 공감하지만 자신과의 공감은 외면’, ‘불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점’ 등입니다.
“전문직이니까 알아서 잘 할 거다”라는 주변의 인식이 만연해 변호사들이 스스로 겪는 고통을 잘 드러내지 못하면서 제때 관리를 받지 못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날 강연을 들은 한 변호사는 “약하면 안 된다는 마음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해오기 일쑤였다”며 “시험 합격 이후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불안함을 원동력으로 성과를 내왔는데, 앞으로는 스스로의 감정을 살펴보고 제 자신을 달래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에서 지원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장기간 방치되면 변호사 정신건강 악화를 시작으로 의뢰인들을 위한 법률서비스 저하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허정윤 이모셔너그라피 대표는 “변협 차원의 공식 지원 프로그램 수립과 국내 법조인 정신건강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급하다”며 “법조인 정신건강 실태조사·직무환경과 스트레스 요인 분석·법조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개발 등이 시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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