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계엄 열변에 "회식 가기 싫어"…정치대화에 '붉으락 vs 푸르락'

"비상계엄 사태 후 식사 때마다 회사 간부가 시국과 관련 얘기를 하니까 다른 대화도 하기 싫어요."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박모씨(25)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회식 자리가 부담스러워졌다. 각종 송년회와 신년회도 피하고 있다. 회사 임원들이 밥을 먹을 때마다 시국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서다.
박씨는 18일 머니투데이에 "사장님이 계속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다들 아무 말 없이 쓴웃음 지으면서 밥만 먹는다"며 "사회 생활을 처음 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맞나 혼란스럽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국과 관련 크고 작은 갈등이 시민 일상 속을 파고들고 있다. 다수 시민들은 회사는 물론 사적 만남에서도 정치적 이슈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아졌다고 토로했다.

영업을 하는 정모씨(57)는 거래처 사장으로부터 매일 극우 유튜버들이 올리는 영상 링크를 개인 메신저를 통해 받는다. 보고 싶지 않지만 거래처 사장이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는 "각종 '지라시'나 유튜브 링크를 보내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며 "너무 불편하다. 그런데 월급쟁이가 다 그런 것 아니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의 한 재래시장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오모씨(55)는 "가게에서 계엄령을 비판하는 얘기를 좀 했는데 손님들이 굳은 표정으로 따지고 나가버렸다"며 "다른 의견을 잘못 냈다가는 낙인이 찍힌다"고 밝혔다.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함 마저 생긴다. 오씨는 "대부분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오는데 너무 강하게 말하는 분들을 만나면 걱정이 된다. 며칠 전에 가게 문을 닫는데 순간 '누가 해코지하러 오는 거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거주하는 서모씨(26)는 "정치 성향에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짜증을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 같아 입을 다물어버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갈등과 대화 단절이 일상화되면 공동체 결속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는 생각과 이념을 떠나 서로 협력하고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며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이념 때문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사회 구성원 간 결속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정치적 대립 상황이 이어지며 대화가 단절되는 사례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라며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적폐 청산을 이유로 상대 진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적이 있다. 이번에도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시민 사이 정치적 흥분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이 통합의 길로 갈 것인지 분열의 길로 갈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는 시점이라고 본다"며 "정치권에서부터 포용의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면서 시민들 사이 정치적 흥분 상태를 가라앉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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