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 내산’ 한국 음식, 미국인들 일상이 되다

뉴욕·양호경 통신원 2025. 1. 1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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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음식이 경쟁하는 이민자의 도시 뉴욕에서 한식당의 성장세는 단연 독보적이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보편화되고 있다.
뉴욕 한식당 ‘정식’이 <미쉐린 가이드>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았다. 사진은 이 한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들. ⓒjungsik 홈페이지 갈무리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책 〈H마트에서 울다〉 저자 미셸 자우너의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다. 미셸 자우너는 한 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다. 저자는 엄마가 죽고 나서 “엄마가 이제 내 곁에 없는데 내가 한국인일 수 있을까?”라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결국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한식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연결성을 찾았다. 그런 사람이 미셸 자우너만은 아니다. 한식당이 없는 미국 내 지역에 사는 한국 교민 박성준씨는 한 달에 한 번, 4시간씩 운전을 해 대도시의 한식당을 찾아간다. 값비싸고 유명한 식당은 아니지만 “그래, 이 맛이지”를 외치고, 다시 한 달 뒤를 기다린다.

미국에서 한식의 위치는 오랜 시간 한국 이민자들의 기억과 정체성에 의존해 있었다. 한국 교민이 밀집한 캘리포니아와 뉴욕 커뮤니티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왔고, 주 소비층도 교민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미국에서 한식에 대한 위상은 계속 높아졌다. 전 세계 음식이 경쟁하는 뉴욕에서 최근 한식당의 성장세는 단연 독보적이다. 12월9일에는 뉴욕의 한식당이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는 상징적인 일도 벌어졌다. ‘정식(Jungsik New York)’은 2011년 뉴욕에서 한식 최초로 1스타를 획득했고, 14년 만에 3스타를 받았다.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다. 150여 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90여 개 국가의 음식점이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4 미쉐린 가이드 뉴욕〉에서 3스타 식당은 다섯 곳인데, 그중에서 채식과 현대식을 제외하고 지역 정체성을 띠는 음식점은 프랑스식, 일식 그리고 한식이 전부다. 좀 더 넓혀보면 뉴욕의 1스타 이상 식당 72곳 중 12곳이 한식당이다. 일식과 프랑스 식당 다음으로 많다.

뉴욕에서 한식당을 운영했고, 현재 뉴욕의 문화를 소개하는 칼럼니스트인 박진배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 교수는 “한식당이 미쉐린 3스타를 받은 것은 한식의 가치가 인정받은 것이다.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은 이제 한식이 주도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한식당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프랑스 요리의 독주 체제에 종지부를 찍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식’의 임정식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요리를 ‘새로운 한식’이라고 정의하면서 “김치와 김밥 같은 일상적 한식을 재해석”한 시도는 본인이 아니었더라도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 룸서비스로 제공되는 제육볶음

한식의 위상은 분명히 한류가 세계적으로 확대된 영향을 받았다. 2012년 발매된 가수 싸이의 곡 ‘강남스타일’은 전문적인 한식 레스토랑이 생기기 시작한 뉴욕에서 한국 문화와 한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이후 음악과 영화 등 한국의 매력적인 문화는 한국과 한식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졌다. 김밥과 김치, 떡볶이 등 한식 조리법을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잡지와 기사가 쏟아졌고, 미국 사람 중에서는 주변의 한국 교민에게 김밥과 같은 한식 조리법을 물어보는 흐름도 생겼다.

한식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보편화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의 한식은 지인이 소개해 먹어보는 음식이었다면, 지금은 자기 돈 내고 먹는 음식이 됐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한인 밀집 지역의 오래된 한식당 또는 한국식 포차에서 순두부찌개를 먹는 백인이나 남미계 사람을 보는 것은 더 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다. 주요 호텔에서 제육 볶음과 같은 한식이 룸서비스로 제공되기도 하고, 쉐이크쉑(Shake Shack)과 같은 유명 햄버거 전문점은 한국식 불고기 버거를 출시하기도 했다.

간편 음식과 식재료의 소비에서도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식 냉동 만두를 시작으로 냉동 김밥과 라면으로 확대되어온 한국 음식의 미국 수출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H마트 등을 “더 이상 민족적인 식료품점이라고 부를 수 없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일식 레스토랑은 일본 문화의 특사처럼 느껴지지만, 한식당은 완전한 뉴욕의 레스토랑이다”라고 평하면서 한식당의 개방성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운영 중인 한 한식당의 모습. ⓒGoogle 갈무리

미국에서 한국 라면 마케팅을 맡은 한 관계자는 “한국 음식은 유행을 넘어서 하나의 장르가 됐다. 한국 음식이 건강하다는 인식과 함께 재미있고 보편적인 음식으로 각인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식 치킨, 한국식 빵집 등 미국에 진출한 가맹점들도 지속적인 매출 증가를 이루며 한국인 밀집 지역을 벗어나 중부 도심으로 확대하고 있다. 1990년대에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로 이민 와 식당을 연 양동석씨는 “예전에 남부엔 한국인이 적어 한식은 꿈도 못 꾸고, 유럽식 식당은 난도가 높아 초밥집이 유일한 선택지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식당을 물려받으려는 양씨의 아들은 초밥집을 한식당으로 바꿔 운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한식당은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보편적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에는 시골 마을을 중심으로 중국계 미국인들이 한식당을 개업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인이 아닌 한식 셰프가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박진배 교수는 미국에서 한식이 자리 잡기 위한 다음 과제로 식재료 공급 문제를 지적했다. “일식과 유럽식 식당과 달리 한식의 주요한 식재료는 여전히 규모화되지 않아 고비용”이라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은 식당의 그릇을 포함해 고추장·된장 등 각종 장류, 그리고 주요 식재료를 직접 공수하지만, 가격이 낮은 식당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뉴욕의 한식당 셰프들이 신선한 한국 식재료를 키우기 위해 공동 농장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뉴욕·양호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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