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군사력 극한 압박…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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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D-2, 미리 보는 트럼프 2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세계는 지난 몇 주간 트럼프가 던진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캐나다의 복합방정식을 푸는 데 혈안이 된 듯 하다. 혹자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땅따먹기 본능에 따른 도발적 제안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일견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잇는 키워드는 지정학과 중국이다. 또한 트럼프식 고도의 협상 전략이기도 하다. 정치안보와 경제통상을 큰 그림에서 연계해서 접근하는 것도 집권 1기 때와 현격히 달라졌다. 이 복합방정식을 푸는 열쇠는 각각의 제안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트럼프발 관세 위협, 상대국 정치판 흔들기도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파나마 운하를 보자. 미국 동부에서 상선이나 해군 군함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로 가려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지 않으면 남미 대륙을 우회해서 갈 수 밖에 없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중국이 미국 동부나 중남미 국가들의 동부 해안 쪽으로 수출하려면 파나마 운하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그린란드도 마찬가지로 지정학과 대(對)중국 패권경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미국은 냉전시대 소련을 마주보고 있는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소련의 몰락 이후에도 1만7000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따라 잠잠하던 세계 최대의 얼어붙은 섬에 큰 변화가 생겼다. 얼음이 녹으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북극항로가 열릴 전망이고, 채굴이 어려웠던 여러 전략적 핵심광물의 채굴 경제성이 훨씬 높아졌다. 이 모두 미·중 패권경쟁과 직접 관련이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중국이 유럽과 연결되는데 기존의 인도양,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항로에 비해 10여 일이 단축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극항로 개발에 달려들고 있는 이유다. 핵심광물도 현재 중국이 각종 초크포인트(주요 길목)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이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19세기 이래 수차례 그린란드 구매를 시도한 바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도 비밀리에 구매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SNS 메시지가 떴을 때 워싱턴 일부에서는 뜻밖에 캐나다가 포함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혹자는 트럼프 1기 때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의 관계가 껄끄러웠으며 국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통해 캐나다가 보수당으로 정권교체를 하는 데 힘을 실은 정치적 계산으로 보았다.
트럼프 1기 미·중 무역전쟁 때도 중국 내부에서 대미 대응을 놓고 분열이 일어났었다. 타국들처럼 공공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내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직 도광양회로 중국의 힘을 조용히 길러야 할 때에 너무 빨리 미국과의 대결을 선택했다는 비판, 미국의 힘이 아직도 이렇게 강한 줄은 미처 몰랐다는 자성론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트럼프발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체제가 튼튼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쯤해서 아무리 지정학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국제법에도 어긋나고 우방국을 상대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등의 도발적 언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협상에서 쓰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은 마키아벨리가 처음 주창했고, 닉슨 전 대통령이 베트콩으로 하여금 그가 핵무기까지 사용할 수 있는 미치광이로 믿게 해 협상에 응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1기 참모들은 트럼프가 상대국으로 하여금 그는 뭐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믿도록 했다고 전한다. 사실 이 점이 트럼프식 예측 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의 원천이며 협상의 기술인 것이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대하는 트럼프의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 지정학의 단층면이자 미·중 경쟁의 전략적 측면에서 한반도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린랜드의 미군보다 한반도의 주한 미군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 트럼프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에 협력을 요청했듯이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대중 경제안보의 밴다이어그램이 겹치는 분야, 즉 반도체·배터리·조선·군수·바이오 산업 등의 한·미 협력은 미국의 안보와 지정학적 차원에서 중요함을 떠나 불가결하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는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와 같은 충격적인 극한 압박이 올 수도 있다. 우리가 트럼프 1기 때 겪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위기도 지금 보면 ‘트럼프 스타일’이다. 하지만 ‘미치광이 전략’의 위험성은 그것이 한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 유효한 브랜드로 작용하기 위해 상대국이 극한 압박에 끝까지 버틸 경우 실제로 그 압박을 이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설마’가 ‘역시나’로 바뀔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내재해 있다.
이제 트럼프 2기의 롤러코스터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트럼프 1기 경험과 타국의 사례를 보면 불확실성 속에도 어느 정도 정형적 패턴이 보인다. 국내 정치체제의 안정은 종국적으로 협상의 성패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캐나다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트럼프 의도대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후방을 교란하며 국내 정치와 협상팀을 뒤흔들 수 있다. 협상 진행 과정에서 수시로 등락을 거듭할 텐데 그런 사소한 디테일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해관계자와 여야가 갈리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이 되면 우리는 협상의 링에 올라가기도 전에 타월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199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산자부 자유무역협정정책관, 통상교섭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를 받았다.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199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산자부 자유무역협정정책관, 통상교섭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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