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 믿어

김동식 소설가 2025. 1. 1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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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엄마가 스미싱에 당했다
그런데 뭔가 의심스럽다
일러스트=한상엽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화가 뭔지 아십니까? 새벽에 갑자기 걸려 오는 엄마의 전화입니다. “핸드폰이 연신 울려대서 봤더니 내가 뭘 자꾸 샀다고 뜬다!” 엄마가 스미싱에 당한 겁니다. 당황한 엄마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데, 저는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곧장 차를 끌고 댁으로 갔습니다. 만나서 확인해 보니 147만원이나 결제된 뒤였습니다.

추가 피해를 막으려고 결제 제한과 비밀번호 변경 등의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계속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건 못 돌려받는 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뉴스도 안 봐? 수상한 문자 메시지 함부로 누르면 안 돼.” “보이스피싱 당한 거냐? 돈 취소 안 돼?” “지금은 안 되는 것 같은데, 날 밝으면 경찰서 가 봐야지. 근데 도대체 뭘 누른 거야?”

엄마가 뭘 눌러서 스미싱에 당한 건지 알고 싶었지만, 문자 메시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못 찾겠더군요. 일단은 핸드폰을 초기화했습니다. “핸드폰에 있는 거 싹 지웠어. 연락처 같은 건 백업이 돼 있는데 앱은 새로 깔아야 돼. 앞으로는 절대 이상한 거 설치하지 말고 공식 스토어에서만 내려받아.” 속상한 결과가 뻔히 보였습니다. 신고해 봐야 돈은 돌려받지 못할 거고, 엄마는 울 거고. 예상대로 점심때쯤 엄마가 전화해서 한참을 울더군요.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겠습니까?

“비싼 값 주고 공부한 셈 쳐야지. 어쩌겠어. 그냥 잊어버려.” 더는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야 쉽지, 물론 한동안은 계속 속상할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곧 의연히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매일 전화해서 하소연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얼마 뒤 제가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경찰에서 뭐래?” 그런데 말입니다… 엄마가 경찰에 신고를 안 했다는 겁니다. “어차피 못 받는 돈인데 어쩌겠냐? 네 말대로 그냥 잊어야지.”

석연치 않았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담담하다니? 저희 집안은 어릴 적부터 늘 가난했습니다. 그러니 엄마에게 147만원이란 액수는 적어도 몇 달은 울고불고 난리 쳐야 할 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미심쩍었고, 자연스레 ‘그’ 생각에 닿았습니다. 우리 모자(母子) 사이가 끝장날까 이젠 말도 안 꺼내는 그것, 엄마의 오랜 비밀 말입니다.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엄마는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든 관두게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포기했습니다. 그 얘기만 하면 무조건 싸움이 나니까요. 혼자 적적할 엄마가 그래도 그 사람들이랑 돌아다니면서 외롭지는 않게 지내겠거니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혹시 그 사이비 종교에서 엄마의 마음 관리라도 해준 걸까요? 그 사람들이 그냥 다 잊어버리라고 토닥여준 걸까요?

잠깐이나마 이렇게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엄마가 신고하지 않은 것은, 그 사이비 교주가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신고하지 말라고 했는데?” “괜히 미련 때문에 내가 힘들까 봐 그러신 거지.” 어딘가 찜찜했습니다. 그 작자를 제가 악의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엄마 핸드폰을 점검해 준다고 가져가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그 사이비 종교 단톡방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스미싱에 당한 사람이 우리 엄마 외에도 여럿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도 당한 거야?” “지금 엄청 유행이라더라.” 아니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같은 집단에서 이렇게 피해자가 많이 나올 수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어 단톡방을 뒤지다가 찾았습니다. 신년에 그 교주란 작자가 보낸 긴 문자가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에 ‘링크’가 있었던 겁니다. 눌러보니 ‘신년 인사 카드’가 보이는 페이지로 연결되는데, 이게 스미싱이었습니다. 핸드폰 상단에 뭔가가 설치되는 모습이 보였으니까요.

“이거잖아! 이거! 엄마 이거 눌렀지?” 제 말을 들은 엄마의 표정을 보고 바로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10여 년 전, 사이비 종교 문제로 엄마랑 싸울 때마다 항상 짓던 그 표정, 으레 엄마가 거짓말할 때 짓던 그 표정 말입니다. 저는 세게 나갔습니다. “엄마가 당한 스미싱 이거 눌러서 당한 거야. 이 교주가 보낸 링크 눌러서 당한 거라고. 엄마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제 눈을 제대로 못 쳐다보는 엄마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다들 알면서 쉬쉬하는 거 아니야?

저는 핸드폰을 들고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조사 결과, 그 교주도 스미싱 피해자였습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액수로 말입니다. 범인들이 원격으로 핸드폰의 모든 내용을 훔쳐보고 복사하고 있었던 거죠. 범인들이 교주에게 연락했고, 시키는 대로 하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아무리 멍청해도 그 말을 믿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근데 이 인간은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당연히 돈은 못 돌려받았고요.

어쩜 이렇게 어리석을까 싶은데, 세상 일이 참 웃깁니다. 제가 10년 넘게 해내지 못한 일을 스미싱 범죄자들이 해준 것이죠. 저희 엄마가 드디어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온 겁니다.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면서 신도들에게 사건 전말이 소문났을 게 아니겠습니까? 천하의 교주가 웬 잡범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도 모자라, 호구처럼 신도들까지 팔아넘겼다는 걸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더니, 옛말 틀리는 게 없습니다.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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