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글쓰기와 하나의 과정, AI시대에는…

나오미 배런 지음
배동근 옮김
북트리거
나는 AI와 공부한다
살만 칸 지음
박세연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러시아 문학 교수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러 리포트에 등장한 ‘delve’라는 단어였다. ‘탐구하다, 규명하다’라는 뜻의 이 동사는 사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글에서 마주친 적은 없었다.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챗GPT가 좋아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 밖의 선호 단어로는 ‘복잡성’ ‘다면적인’ 등이 있다) 일단 경보가 켜지자 교수는 AI가 써준 리포트를 골라내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읽으면 바로 알았다. 그 리포트들은 모든 것을 ‘복잡하고’ ‘다면적이고’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고 얼버무릴 뿐, 개인적 관점이란 게 없었다.
2022년 하반기에 챗GPT가 등장한 지 만 2년이 조금 더 지났다. 지금 그때의 경악과 흥분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AI 기술은 그 사이에도 진화했지만, 우리의 기대치는 그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우리는 AI가 예컨대 창립 10주년 기념사 같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글은 꽤 잘 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료를 주고 1/4분기 판매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하면 낭패를 본다는 것도 안다. 어딘가에서 기막힌 오류를 범할 것이고 그 오류는 열 번 다시 해도 안 고쳐진다는 것까지. AI는 똑똑한 대학원생과 최악의 신입사원의 얼굴을 다 가지고 있다.
나오미 배런(1946~)은 뉴욕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아메리칸 대학교 석좌 교수이다. 주된 관심은 기술 발전과 컴퓨터. 『쓰기의 미래』는 AI가 인간의 글쓰기를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원제는 ‘Who Wrote This?’(누가 이것을 썼을까?). ‘이것’이 ‘이 책’인가? 라고 생각하면 읽다가 조금 으스스해진다.
왜 글을 쓰는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쓴다.”(조앤 디디온)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은 많다. ‘생각의 존재는 글쓰기로만 확인된다’ 또는, ‘우리는 글을 쓸 때만 생각한다’ 이것이 뇌과학으로 입증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작가들은 이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생각은 글과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글쓰기에 포함된 어떤 과정이다.

글쓰기의 입지는 전부터 좋지 않았다. 저자는 글쓰기가 이미 20세기 초 교육 기관에서 주변화된 존재였음을 담담히 보여준다. 만일 글쓰기의 최후의 숨통을 끊는 것이 AI가 된다 해도 모든 책임을 그에 뒤집어씌우는 건 파렴치한 일이 될 것이다.
책 끝에서 저자는 AI에게 숙제를 시키느니 차라리 빵점을 받으라고 권한다. “학생 때는 자신의 실상과 대면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과연 인문학자다운 발상이며, 하고 싶은 말도 이거였을 것이다.
『나는 AI와 공부한다』는 미국의 교육 사업가 살만 칸(1976~)이 자신의 AI 교육 플랫폼 ‘칸미고’의 취지와 이용 방법을 적은 책이다. 일종의 홍보 책자이므로 거부감이 생기는 건 불가피하다. 다만 선전과 무관하게 어떤 깨달음이 온다. AI는 1:1 맞춤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학습자를 한 발 한 발 올바른 해결로 유도하는 수준 높은 교사로서 말이다. 이것은 기존의 공교육이(심지어 대부분의 사교육도) 제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AI가 보고서를 대신 써줄 수 있다는 건 현실이다. 사회는, 학교나 회사는 이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금지할 수도, 허용할 수도 있고, 수준이 어떻든 인건비 절감의 기회로 보고 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AI를 1:1 학습 도구로 보급한다는 건 다르다. 이를 막을 수 있을까? 없다. 높은 확률로 AI 학습 도구는 꼭 필요한 학생보다는 그게 없어도 성공적이었을 학생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학력 격차는 더 심화될 것이다. 모든 계층의 아이들을 한 교실에 넣어 국민으로 만든다는 공교육의 이상은 이런 식으로 거의 이름만 남게 된다.
김영준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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