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정치개혁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 극복해야

한국은 비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그 위기는 단순히 계엄과 그로 인한 탄핵 사태, 그 자체가 아니다. 한국의 존망이 걸린 안보, 경제, 사회 분야의 심각한 당면 과제들을 풀어내기에 한계에 도달한 1987년 정치 체제, 그것을 못 고치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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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정치 체제 한계에 도달
진보·보수 사로잡혀 분열만 야기
지도자 제대로 걸러낼 제도 필요
대통령제와 선거법 개정 절실
」

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우리’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대응 전략을 짜야 할 때이다. 그런데 그 ‘우리’ 입장을 놓고 보수와 진보, 여야가 극단으로 갈린다. 지금 서방 국가들에서는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한·미·일 협력도 물 건너가며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진영을 초월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일관된 외교 전략을 추진해 나갈 역량이 한국에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구한말 상황과 다를 게 없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10~20%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올해 1.9% 성장을 한다는 성장동력을 잃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미국에 투자한 우리 대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가능성도 큰 문제다.
한편 중국은 한국이 우위를 점하던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았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의 각국 정부들은 국운을 좌우할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 분야의 기업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으면서 기술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야 간의 협치 부재로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한시가 급한 반도체 지원 법안은 탄핵 국면 속에서 국회 표류 중이다. 경제, 산업정책이 1980년대 노동이냐 자본이냐, 진보냐 보수냐의 경직된 사고의 틀에 잡혀, 21세기 AI시대의 생존 전략 추진과 미래 지향적 혁신에서 멀어지고 있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한국의 10대 대기업 집단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인데 고용 인력은 10% 정도이다. 대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 나갈 역량이 있지만 90%의 인력이 고용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은 대단히 열악하다. 이 상태를 계속 방치하면, 경제 양극화, 중산층 약화, 더 나아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2013년 맥킨지의 보고서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끓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로 비유했는데 2023년 보고서는 그 온도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협치가 안되고 경제, 산업 정책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다 보니, 끓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뛰쳐나올 힘이 빠지고 있다.
사회적 위기를 보자. 저출생 문제가 나라 전체를 서서히 소멸시키고 있다. 전체 고용 인구의 10%만을 차지하지만, 처우가 훨씬 나은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청년들은 서울로 몰려들고 지방은 소멸 중이다. 작년 6월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이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기 도시 리스트에 올랐다. 지금대로 간다면 국민연금도 2055년에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치열한 경쟁은 교육비의 상승을, 서울 인구 집중은 주거비의 상승을 낳았고, 이제는 연금도 못 받게 될 것이라는데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할 것인가? 그 결과 작년에 0.74라는, 인구학자들이 경악할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지방 균형 발전, 인구 정책, 교육 정책은 수십 년을 내다보고 일관된 초당적 전략을 펴야 하는데, 정권만 바뀌면 뒤집어진다.
이런 도전들을 극복하려면 국민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잠재적 역량을 끌어내 성장과 안정으로 이끌 정치제도가 있어야 한다. 혹자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대통령 중 몇 명이 감옥에 갔고 탄핵을 당했는지 세어보자. 정치 지도자를 제대로 걸러내고, 견제하지 못하고, 국민을 통합시키지 못하는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 확실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제도 개혁으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무한 갈등의 정치, 총체적 사회분열을 끝내야 할 때다. 선거법도 바꿔 양당 간의 적대적 담합 관계를 종식시키고, 능력 있는 정치 신인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게 해야 한다. 그러한 개혁이 가능하게만 된다면, 우울증에 빠진 국민들도 한국 정치에서 희망을 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고 떨쳐 일어날 것이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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