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을 예약하다 [.txt]

최윤아 기자 2025. 1.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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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화장대 서랍에서 압박 붕대를 발견했다.

엄마의 고통이 이미 인간이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 이를 끝낼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너무나 처절하게 알고 있다.

"엄마는 조금 밝아졌다. 자신이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지만 엄마에게 희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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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사계절, 1만8000원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서 압박 붕대를 발견했다. “이게 뭐야?” “목매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모녀는 각자 다른 상상에 휩싸인다. 엄마는 자신의 시도가 미수에 그쳐 혹여 더 나쁜 상황이 될까 봐, 딸은 엄마의 마지막이 외로울까 봐 걱정한다. 유방암 말기, 뼈로 위장으로 암이 전이된 상황. 엄마의 고통이 이미 인간이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 이를 끝낼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너무나 처절하게 알고 있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엄마의 조력사망(안락사)을 “예약”하고 동행한 딸이 쓴 기록이다. 엄마 조순복씨(1944∼2023)는 2020년 가을 유방암이 뼈로 전이돼 이미 4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첫 수술 후 10년이 지나 사실상의 완치판정을 받은 후 몇달 만이었다. 척추측만증으로 이미 수술, 재수술, 재재수술까지 받은 상황. “어떻게 한 군데라도 괜찮아야 같이 살자 붙들고 늘어지지.” 아내의 고통을 낱낱이 목격한 남편은 스위스에 가겠다는 아내를 차마 막지 못한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저자 남유하 작가(왼쪽)와 고 조순복씨(오른쪽). 남유하 작가 제공

엄마의 죽음을 성사시키기 위해 딸은 스위스 ‘디그니타스’에 신청서를 작성한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사망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모녀는 “해외 보험기관 제출용”이라고 둘러대며 영문 의료기록서를 떼고, 딸은 엄마가 쓴 ‘라이프 리포트’(조력사망을 결심한 계기 등을 적는다)를 여느 때보다 신중하게 번역한다. (딸은 2018년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남유하 에스에프 작가다.) 그럼에도 여러 차례 보완 요청이 날아든다. 기관은 신청자의 결정이 “우울감에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자기결정임”을 까다롭게 확인한다. 조씨의 경우 “극심한 고통으로 우울하다”는 문장이 문제가 돼 우울 병력이 없음을 추가로 증명해야 했다.

모녀는 스위스에서 진행될 인터뷰를 대비해 예행연습도 한다. “I want die, I will die.” 엄마가 이 문장을 반복할 때마다 딸의 마음은 요동친다. “엄마 죽음의 선봉장이 되어 나팔을 불고 깃발을 흔드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수없이 이어진 마음의 동요 끝에 받아 낸 ‘그린라이트’(조력사망 허가 문서).엄마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렇게 적는다. “행복의 나라로”. “엄마는 조금 밝아졌다. 자신이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지만 엄마에게 희망이 된 것이다.”

고 조순복씨가 스위스에서 생을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의자. 남유하 작가 제공

하지만 디데이는 10월에서 9월로, 다시 8월 말에서 8월 초로 앞당겨진다. 엄마의 병세가 그만큼 빠르게 나빠졌다는 의미다. 엄마는 죽으러 가기 위해 수액을 맞는다. 이제 작가에게 ‘기적’이란 엄마의 쾌유가 아니다.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스위스까지 오는 것, 엄마가 무사히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스위스에 걸어서 가기 위해 말기암에도 4번째 척추 수술까지 감행한 엄마. 삶을 사랑한 만큼 삶의 끝도 원하는 방식으로 맞이하려고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한 엄마. 그런 엄마를 위해 이른 이별까지 담담히 받아들인 딸. 두 사람을 보며 ‘존엄’과 ‘사랑’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고 조순복씨의 유해가 뿌려진 스위스의 한 언덕. 남유하 작가 제공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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