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톡] 음모론은 왜 건재할까

임소형 2025. 1.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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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수십년째 음모론 연구 중
확증편향에 뇌 사고 과정도 변화
과한 자기확신은 음모론의 먹잇감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께 드리는 글' 원고. 새해 초 직접 만년필로 작성했다고 한다. 뉴스1

12·3 불법계엄으로 불거진 한국 정치의 혼돈을 부추긴 요인으로 미국 뉴욕타임스는 음모론을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후에 태극기 부대가 있다면서, 부정선거를 조사해야 하고 종북·친중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해야 한다는 그들 주장을 생생히 보도했다. 뉴욕타임스가 썼듯이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음모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극우 유튜버들이 퍼뜨린 선동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을 동원해 국회를 침탈한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엄동설한 거리에서 탄핵 무효와 체포 저지를 외친 태극기 부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가 많다.

음모론은 과학에서도 수십 년째 연구 대상이다. 영·미 공동연구진은 2019년 학술지 ‘정치심리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음모론은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더 많다. 역사를 통틀어 마녀사냥이나 대량학살, 테러 등과 밀접히 연관돼왔기에 음모론을 잘 이해하는 게 필수”라고 했다.

프랑스 연구진은 2020년 미국 대선, 2021년 영국 브렉시트, 2022년 프랑스 대선 전후 동일한 참가자 623명을 대상으로 음모론에 대한 관점, 지각과 추론 안정성을 측정하고 확률적으로 분석해 지난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보고했다. 정치 양극화로 불확실성이 커지면 참가자들은 감각적 정보를 과대평가하고 음모론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였다. 음모론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직관적, 감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럴듯한 설명을 제공한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이런 설명에 의존해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사람이 는다는 의미다.

소셜 미디어 보편화로 음모론은 더 쉽게 확산된다. 미국 연구진이 2017~20년 공개된 페이스북 게시물 3,500만여 개를 분석한 결과, 서로 공유된 링크의 75%가 클릭 없이 전달됐다. 링크된 정보 내용은 읽지 않은 채 제목만 보고 퍼 날랐다는 얘기다. 특히 극단적 사용자들의 정치 콘텐츠는 중립적 사용자보다 ‘클릭 없는 공유’가 더 많았다. 작년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에 실린 이 논문은 이런 과정을 “의도적인 담론을 촉진하는 설계”라고 분석했다.

이 설계에 걸려들면 확증편향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확증편향에 빠진 뇌는 사고 과정이 달라진다. 영국 연구진은 참가자 50여 명이 주어진 작업과 판단을 하는 동안 뇌파를 측정한 다음, 행동·신경 모델링 기법을 적용해 결정 처리 방식의 변화를 분석해 2020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분석에 따르면, 결정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그 결정을 확인하는 증거는 증폭되고 반박하는 증거는 무시됐다. 지나친 확신이 뇌가 새로운 정보를 축적하는 방식을 변화시켜 확증편향으로 이어진다는 실험적 증거다.

확증편향이 늘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지난해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소개된 네덜란드 연구는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1,55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편견이 있는 행위자와 집단 구성원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관찰자가 행위자의 편견을 습득함이 확인됐다. 저자들은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이런 '사회적 학습'이 "편견을 전달, 형성하는 메커니즘"이라고 결론 내렸다.

체포 직후 공개된 윤 대통령의 자필 원고에 기가 막힌다. “부정선거 시스템 가동”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손잡은 국내 정치세력” 같은 음모론에 빠져 있고, “무조건 열심히 치열하게 일해왔다” “저의 결단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이라며 자기 확신에 매몰돼 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생긴 곤경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더닝 크루거’ 현상은 음모론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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