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박수갈채 ‘수어’ 결혼식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결혼식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음성언어 중심으로 진행되는 예식에 농인 부모가 배제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축사를 들으며 울고 웃을 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는 엄마의 얼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나고 허리를 숙여야 할지 파악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한 아빠의 표정 같은 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수어가 모어이자 한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한 나와 일본어를 사용하고 나와는 영어로 소통하는 파트너가 결혼한다면 식장에는 어떤 언어가 울려 퍼질까.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한 결혼식의 모습은 무엇일까. 수어가 제1 언어인 결혼식이 있다면?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하는 예식이라면? 그렇다면 하고 싶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우리만의 결혼식.
키워드는 두개였다. 교차문화와 지속가능성. 국제결혼이기에 한옥에서 식을 올리면 딱 좋겠다 싶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공간을 빌려 작은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예복은 입고 싶은 것으로 골랐다. 나는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브랜드의 드레스를, 파트너는 빈티지 수트를 골랐다. 사용하는 일회용품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예식에 사용되는 꽃은 하객들이 들고 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고모가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정리하면서 준 대나무 칫솔과 친환경 수세미를 답례품으로 준비했다.

가장 신경 쓴 건 언어였다. 수어가 제1 언어인 결혼식이기에 수어가 주 언어가 되어야 했다. 신뢰하는 코다(농인의 자녀)에게 수어로 사회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주례는 생략하고 양가 어머니께 축사를 요청했다. 농인 어머니가 한국수어로 말하면 음성언어로 옮길 수어통역사를 배치했다. 이를 일본어로 옮길 통역사도 섭외했다. 파트너의 어머니가 일본어로 말하면 통역된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옮길 수어통역사도 필요했다. 모든 이가 막힘없이 통역할 수 있도록 타임라인과 내용이 적힌 대본과 배치도까지 빠짐없이 준비했다.
행사 대행 업무인지 내 결혼식 준비인지 알 수 없어질 즈음, 식전 음악이 울려 퍼졌다. 아늑한 공간에서 한복과 기모노를 입은 양가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입장했다. 정장을 입은 양가 아버지가 뒤따랐다. 나는 오렌지 튤립이 섞인 꽃을 들고 파트너와 함께 걸었다. 청인(듣는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고 농인들은 손을 흔들어 반짝이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모두가 만들어낸 우리만의 결혼식이었다.

파트너는 울고 또 울었다. 파트너의 아버지도, 아빠도 울었다. 식구들을 포함해 하객들도 울었다. 엄마의 축사 때문이었다. 엄마는 딸이 전에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장애 때문이었다면서 몹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자신이 농인이라는 이유로 둘이 이어지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걱정이었는데, 사돈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맞아주었다고 수어로 말하는 순간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갔고 대학원에도 갔고 구구절절 딸 키운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엄마라니. 축사 안 시켰으면 어쩔 뻔했나 웃음이 나올 즈음 나도 울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내 눈물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보라와 겐, 이제는 너희들의 눈과 코, 입을 꼭 빼닮은 아이를 낳으렴. 그 아이를 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란다.”
아니, 지금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 웬 아기 이야기람? 결혼이 꼭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라니! 그것도 내 결혼식에서. 하객들은 다소 진지한 표정의 엄마를 보며 웃었고 나는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는 몰랐지. 이미 아기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걸. 신혼여행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하늘이 핑 돌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이상하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감지하게 될 것이라는 걸. 타이 치앙마이에서 벌게진 얼굴로 임신 테스트기를 네개나 사서 희미하게 보이는 두줄을 보고 또 보게 될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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