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에 장악된 국민의힘… ‘내란 수괴’ 윤석열,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이동현의 편애]

이동현 2025. 1. 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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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윤 대통령 엄호 배경, 이재명 향한 적대감
보수 가치 못 세우고 지도자 길러내지 못한 한계
다음 대선까지 긴 과정 진보·보수 유혈 충돌 염려
편집자주
편애(偏愛)는 지독히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지극히 이타적이다. 박애가 실종된 시대 편애를 추적한다.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이 9일 서울 종로 '정규재TV'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너는 누구 편이냐.’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 정규재(68) 전 한국경제 주필은 요즘 공격에 시달린다. 12·3 비상계엄은 반헌법적 ‘셀프 쿠데타’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파면해야 한다고 말한 뒤 보수의 표적이 됐다. 극우 진영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품에 안겼다’ ‘이재명의 애완견’ ‘배신자’라고 비난한다. 진보에서는 ‘보수의 양심’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8년 전과 정반대다. 2017년 1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했을 때 보수는 환호했다. 진보는 박 전 대통령의 변명을 포장하고 옹호했다며 “언제부터 박근혜 비선이었냐”라고 추궁했다. 신문기자로 더는 펜을 잡을 수 없게 됐다. 유튜브로 옮겨 펜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정 전 주필은 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야 모두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결사 옹위 태세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도자를 열렬히 보호하겠다는 건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위헌적 비상계엄이 따로 있고, 내란 범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 자체로 내란 범죄를 구성한다. 탄핵 대상이 되느냐 논란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다르다. 정치 갈등이 극단에 치달은 상황을 빼놓고 설명이 안 된다. 민주당이 이대로, 공짜로 정권을 차지하는 것만은 눈뜨고 볼 수 없다는 생각, 적개심이다. 앞서 윤 대통령이 영입되고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된 과정 또한 이 대표에 대한 적대감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이제 윤석열은 모르겠고, 이재명만은 안 된다는 지지자들의 결심이 확고하니 국민의힘 의원들도 끌려가고 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이 2017년 1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너무 이른 대선은 막겠다는 지연 전략이 통한 건가.

“여권은 지금껏 이재명 대표를 사법적으로 옭아매겠다는 전략에 따라 움직였다. 정상적 정치라 할 수 없는 건데, 지금은 이 대표가 모든 현안을 자신의 정치 일정에 맞추려 하고 있다. 윤석열이 쳐놓은 법망에 걸려들고 있다는 생각에 채근한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라는 표현을 없애면서까지 대선 일정표를 당기려고 하니, 구경꾼들까지 ‘이재명은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는 거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거칠게 밀어붙이겠다는 민주당 전략이 보수를 결집시켜주고 있다. 철벽이 서서히 쌓여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으로 뚜렷한 실체를 드러냈다. ‘오징어게임’ 속 OX투표 진영이 완성돼 가면서, 정작 윤석열 단죄 문제는 사라졌다.”

-이재명 대표 대선 출마를 막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 아닌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김건희가 도이치모터스 주식거래로 돈 번 것 없다’ ‘장모 최은순씨가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거짓말로 대선에서 이긴 사람은 두고, 낙선자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것은 한마디로 웃긴 일이다. 법 정신에도 맞지 않다. 대선 당시 이 대표가 김문기를 모른다고 했을 때 국민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몰랐을까. 오히려 이 대표가 대선에서 지는 원인이 됐다고 봐야 한다. 미국·영국은 물론 유럽에서 죄를 묻지 않는 이유다. 부인 김혜경씨 법인카드 사적 사용 처벌도 말이 안 된다. 검찰이 136번 압수수색으로 수도권 일대 식당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겨우 찾았다는 게 10만4,000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탈탈 털어 저울에 올리는 일은 저승에 가서나 겪을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저지에 나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이 6일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시궁창을 향해 내달리는 한국 민주주의”

명함에 ‘보수의 품격’ 다섯 글자를 새기고 다니는 정 전 주필은 반성도, 쇄신도 없었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는 걸 크게 우려했다. 행동력을 갖춘 극우 세력이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 자리를 꿰차면서 더 위태로워졌다고 본다. 정 전 주필은 “한남동에 모인 일부 사람들은 행동 준칙도 없이 기회주의적 선택에 따라 확확 쏠려 다닌다”며 “좌충우돌하다 사고를 낼까 걱정된다”고 염려했다. 다음 대선까지 긴 과정에서 진보·보수가 유혈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정 전 주필은 “한국 민주주의가 미친 마차처럼 시궁창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가 혁신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보수의 가치에 기반한 정치 질서나 입법 질서를 만들지 못하면서 퇴행한 측면이 있다. 유교적 자본주의 정서가 강한 대구·경북(TK)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정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가치 정당으로 빌드업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87년체제 이후 보수가 국가적 의제를 주도한 경우는 없다시피하다. 민주당이 주도하고 국민의힘은 마지못해 따라가며 제동을 거는 정도의 역할에 만족했다. 이명박 정부는 ‘동반성장’을 국정운영 동력으로 삼았다. 박근혜 정부도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정권을 잡았을 때조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수적 가치에 기반한 적이 없다.”

민주당, 점령군 행태 보여선 안 돼
탄핵 남발은 사태 심각성 모른 것
법·원칙 따라 해결되게 빠져줄 때

-보수에서는 민주당 책임이 크다고 한다.

“민주당이 점령군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민주당은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이번엔 누구를 탄핵하고, 다음엔 누구를 탄핵하겠다는 민주당을 향해 국민은 ‘나라를 완전히 엎어 버리자는 거냐’고 묻는다. 보수·진보 양 진영에 속하지 않는, 우리 민주주의가 제 궤도에 오르기를 바라는 다수 국민은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다. 국민은 국가가 비정상이라고 느끼는데, 정치권은 권력 투쟁에만 눈이 멀었다. 민주당이 어리석다. 지금은 오히려 빠져줄 때다. 국가 이성이 작동하도록, 국가기관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진지한 결심을 해야 한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이 한남동 관저 앞에서 스크럼을 짰다.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놀랍게도 윤상현 의원이 앞장섰다. 윤 의원은 최근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종교를 바꿨다고 한다. 행동력을 갖춘 극우와 제도권 정당을 연결하는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 기능을 한다. 2020년 4·15총선 패배 이후 전광훈 목사를 핵심으로 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보수 진영을 장악했다.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맹신자였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2012년 대선 이후 진보 진영에서 김어준이 제기했는데, 보수를 삼켜버렸다. 민주당은 박주민 의원이 전국을 돌며 지지층에게 설명하는 자정 노력 끝에 극복했다. 국민의힘은 게을렀다. 검·판사 출신 의원이 다수인 국민의힘에선 누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얘기하면 웃음거리가 됐다. “그러다 말겠지”하고 넘기면서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고 주장한 지만원씨가 2019년 5월 1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관저 스크럼' 자유민주질서 부정
국민의힘, 퇴직 관료 집합소 전락
당내 40대 인물·자질 검증 혁신을

“부정선거·광수론 등 음모론에 지배당한 보수”

정 전 주필은 “보수는 분명히 역사적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고 단언했다. 부정선거에 더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이른바 ‘광수론’ 등 음모론이 보수를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근 수년간 TK를 중심으로 굉장히 노력한 게 ‘전두환 복권’이었고, 광수론이 전두환 재평가 움직임의 동력이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의 영웅적 행동이고, 구국의 결단이라 믿는 보수층이 크게 늘었다. 극우 유튜버들이 매개체가 됐다. 윤 대통령이 실패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게 정 전 주필의 진단이다.

-음모론으로는 중도 지지층 확보가 어렵지 않나.

“음모론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안티의 명제, 적대감만으로 정권을 잡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지금 국민의 마음을 모아낼, 저명하고 성공한 이미 출세한 누군가를 밖에서 찾고 있을 거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같은 사람을 영입해 대선후보로 세우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차 있다. 대중정당이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사법·행정 관료들이 퇴직한 뒤에 모이는 정당이다. 부산의 장제원, 충청의 정진석 식의 지역 맹주가 당을 지배하는 체제다. 여전히 이승만·박정희 신화에 젖어 있다. 영웅주의적 세계관으로 민주당과 투쟁할 순 있지만, 이대로는 새로운 변화를 못 만든다.”

-보수를 다시 세울 출발점은 어딘가.

“당내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자질이 있느냐는 별개로 하고 예를 들어 이준석 같은 젊은 보수 리더십을 한데 모아 이제 국민이 염증 내는 낡은 정당들은 사라지라고 강력한 캠페인을 벌이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대통령 후보도 40대, 장관 후보자도 40대로 바꿔 대한민국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가는 새 출발을 하자고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전국을 돌며 토론해 능력을 확인하고, 자질을 철저히 검증하고, 국민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몇 달이면 천지개벽도 가능한 게 우리 정치다. 그런데 그렇게 못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024년 12월 4일 새벽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철수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190명 중 찬성 190명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 처리했다. 뉴스1
파시즘 갑자기 생겨난 괴물 아냐
급진적 우파가 정권 위협 느낄 때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미래

“윤석열 쿠데타 실패는, 국회 출동한 병사들 덕”

정 전 주필 책장에는 ‘문재인 회고록’이 김구·윤치호의 책과 함께 꽂혀 있었다. 그는 “꼭 읽어보라”며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을 들어 보였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600여 쪽 두꺼운 책은 손때가 묻어 있다. 책장 사이사이 붙임 딱지가 눈에 들어왔다. 정 전 주필은 “파시즘은 느닷없이 나타나는 괴물이 아니다”고 했다. 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 팩스턴은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급진적 우파가 정권의 위협을 느껴 법의 지배를 포기할 때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미래’라고 경고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헌정질서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정 전 주필은 “윤석열의 쿠데타가 왜 실패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중과부적이었다”고 말했다.

"중과부적이라는데, 상대하는 병력이 있었나. 계엄군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계엄에 동원된 병사들이 무기를 내려놨기 때문이다. 비상출동을 했는데 내려진 곳이 엉뚱하게도 국회였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 것을 알고 총구를 아래로 떨군 거다. 그 병사들에 대한 사회적 격려가 필요하다. 휴가도 보내주고, 표창도 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인터뷰는 편들려는 마음이었나.

“그런 마음은 없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은 진영 구분 없이 돕는다는 게 나의 원칙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립대 법인화를 도왔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을 격렬하게 비판했고,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간판을 내리게 하는 선봉에 섰다. 누구의 편이냐고 굳이 말한다면 기업 편이다. 기업은 경제 활동의 출발점이고, 국가의 기본 임무는 경제 활동 장려다. 기업이 잘되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복지도 두터워진다.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이 멈추고 있다. 조선시대 마냥 정치가 일그러진 얼굴로 싸울 때가 아니다. 보수는 기업에 자유를 줘야 하고, 진보는 기업의 축적을 기다려줘야 한다.”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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