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내란사태' KBS 시사기획창, 불방될 뻔했다
보도시사본부 수뇌부 지적에 '편성삭제'되기도…"내란세력 주장 선전하라는 것, 반드시 책임 물을 것"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12·3 내란사태를 다룬 KBS 탐사보도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14일 방영분을 보면 '대통령과 우두머리' 문구 뒤에 '혐의'라는 작은 글자가 흐릿하게 따라 붙는다. KBS 수뇌부에 의해 불방 위기를 겪은 '시사기획 창'이 제작진의 고군분투 끝에 방영되면서 남은 흔적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4일 KBS는 매주 화요일 정규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 편성 계획을 방송 직전까지 번복했다. 이날 오후 2시20분경엔 '시사기획 창'을 편성 삭제하고 '신년특집다큐 콘크리트 사파리 2부작'이 대체 편성됐다가, 다시 기존 편성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방송 직전까지도 '시사기획 창' 예고편이 삭제됐다 다시 게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KBS 구성원들에 따르면 이번 '시사기획 창'은 사전 심의에서도 문제가 지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KBS 보도시사본부장과 시사제작국장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정규 편성마저 흔들릴 위기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제작진은 '불방'은 막아야 한다는 목표로 수차례 논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시사기획 창'이 방영된 다음날(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사측이 제작진에 가한 “제작자율성 침해” “외압”을 지적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앞서 김철우 시사제작국장이 '편파적이다' '박장범 부분을 빼도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냐' '좀 불편하다'는 식의 지적을 이어갔고, 제작진은 13일 일부 지적을 수용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14일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은 이 프로그램에 관한 노사 간 임시공정방송위원회를 열자고 요청해놓고 '시사기획 창' 편성삭제를 했으며, 방송 시간까지 3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야 편성을 확정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방영된 '시사기획 창' 제목은 기존 '대통령과 우두머리' 뒤에 '혐의'가 붙은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로 나가게 됐다. 윤 대통령의 언론관 관련 대목에선 지금은 KBS 사장이 된 박장범 당시 앵커과 윤 대통령의 신년 대담 장면이 일부 사용됐지만, 대담이 비판 받은 핵심인 이른바 '파우치 질문'은 등장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당시 대통령 배우자(김건희 여사)가 받은 고가 가방(명품백)을 '파우치, 조만한 백'이라 축소했고, 그덕에 사장까지 올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관련해 KBS본부는 “사측의 일관된 요구는 한 마디로 내란세력이 주장하는 계엄의 불가피성을 공영방송 KBS가 선전하라는 것”이라며 “제작진의 각고의 노력으로 프로그램은 심각한 문제 없이 나갔다. 그렇다고 프로그램 제작을 방해한 보도국 수뇌부들의 과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측의 무법적 결방 시도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된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은 15일 통화에서 '불방 지시는 하지 않았고 논의를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본지 보도 이후 KBS 사측은 “KBS 보도시사본부장의 불방 지시는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보도시사본부장은 해당 프로그램과 관련해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정성이 훼손될 위험성이 있는 프로그램 내용 일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바가 있다”며 “보도시사본부장은 14일(화) 노조 측에 임시공방위 개최를 요구하였으나, 노조 측이 공방위 개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무산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제작 실무자와 책임자 간의 이견은 상존할 수 있으며, 합리적 의견 조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양측의 건설적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논의 끝에, 해당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수정을 거쳐 당초 편성 시간에 맞춰 방송됐음을 밝힌다”고 했다.

불방 위기 딛고 방영된 '시사기획 창', 내용은?
우여곡절 끝에 방영된 '시사기획 창'은 호평을 받았다. 유튜브 'KBS 시사' 채널에 게재된 영상 댓글창에는 “KBS가 계속 이런 모습으로 방송되기를 바란다” “KBS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KBS가 어떤 정권에서든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영방송으로 자리 잡길 응원한다” 등 응원 댓글이 다수의 추천을 받았다. “KBS 현재 사장 몰아내고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라” “KBS 박장범 사장 물러나라 디올백을 파우치라고 사기치는 게 사장이냐” 등 과오를 꼬집는 댓글도 보인다.
이날 '시사기획 창'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조작' 수사를 맡은 윤석열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검찰총장을 거쳐 정계에 입문하고, 대통령이 되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까지의 과정과 이번 내란 사태가 불러온 민주주의의 위기를 짚었다. 윤 대통령의 3년간 연설 168건을 토대로 '국회'에 관한 그의 언어는 2022년 하반기 협력·협조·설득 등에서 2024년 하반기 범죄·마비 등으로 바뀌며 '협력'이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검찰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공소장을 바탕으로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과 '김건희 특검법' 국회 통과를 거쳐 비상계엄이 선포되기까지 윤 대통령과 내란 동조세력의 움직임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내용도 담겼다.

특히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극우 유튜버와 부정선거 음모론에 더해, 비판적 언론을 배제한 권력에 순응한 언론의 책임을 짚었다. “민주사회가 적절히 굴러가기 위해선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이 그때 캐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 이 시점에서 더 크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진단이, 지난해 화기애애한 신년 대담을 나눈 대통령과 현 KBS 사장의 뒷모습과 함께 전해졌다. 사실상의 검열이 없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었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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