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참담한 여객기 사고…사라지지 않는 안전불감증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수선했던 지난 12월 29일 아침에 무안국제공항에서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7C226편 여객기가 비상착륙 도중 폭발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2명의 승무원을 제외한 17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목숨을 잃은 참사였다.
이번 사고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정치적 이유로 들어선 소규모 공항의 조류 충돌 가능성도 무시했고 어설픈 규정을 핑계로 활주로 끝부분의 콘크리트 구조물도 방치했다. 소규모 저비용항공사의 무리한 운항 스케줄도 문제였을 것이다.
사고 직전의 항공기 상태와 조종실 음성 기록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것으로 믿었던 '블랙박스'도 무용지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직전의 마지막 4분의 자료가 저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여객기가 운항 중에 자동 송출하는 '항공기 추적 시스템'(ADS-B, 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의 신호도 비슷한 시각부터 끊어져 버렸다고 한다. 이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정보의 홍수 속에 묻혀버린 '팩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참사에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구나 참사의 원인과 상황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상황에서의 혼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혼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은 꼭 필요하다. 그런 분석은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혼란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의 '매뉴얼'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여객기 참사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였다. 정부와 언론이 경쟁적으로 정보를 쏟아냈다. 분명하게 확인하지 못한 어설픈 추측성 정보도 넘쳐났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확인된 '팩트'이고 무엇이 '추측'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무안 사고의 팩트는 의외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 근처에 있던 시민이 우연히 찍었던 동영상 덕분이었다.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던 여객기의 엔진에서 몇 차례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여객기가 활주로 중간 부분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동체착륙을 했지만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못한 여객기가 활주로 끝에 설치된 로컬라이저 둔덕에 충돌하면서 폭발하고 말았다는 것이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팩트'였다.
그런 팩트가 정부와 언론이 쏟아내는 온갖 추측성 정보의 홍수에 완전히 묻혀서 퇴색되고 말았다. 특히 사고 직전 항공기의 기계적 상태와 조종사의 대응에 대한 섣부른 추측성 정보가 넘쳐났다.
민간 여객기를 운항한 경력을 가진 '전문가'가 홍역을 치렀다. 동일한 사고를 경험했던 것도 아니고 사고 여객기의 긴급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항공기 사고의 원인을 어설픈 전문가의 입을 통해 파악하겠다는 언론의 요구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던 것이 분명한 조종사의 판단에 대한 어설픈 추측성 평가가 공개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의 공식 브리핑은 도무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항공기 사고에 대한 전문성도 찾아볼 수 없었고 언론 브리핑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못했다. 기자의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에 대해 국토교통부의 간부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서로 답변을 떠넘기는 모습은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국토교통부의 언론 브리핑에는 사고 원인의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책임자가 반드시 출석했어야만 한다.
실제로 사고 초기에는 국토교통부 관료가 소개했던 '19번 활주로'가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19번' 활주로가 당초 여객기가 착륙을 시도했던 '1번' 활주로와 다른 활주로인 것처럼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활주로의 번호는 비행기가 착륙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암호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 탓이었다. 1번 활주로는 나침반의 북쪽에서 10도 방향으로 착륙한다는 뜻이고 19번 활주로는 남쪽에서 10도 방향으로 착륙한다는 뜻이다.
사고 여객기가 마지막 선택이었던 동체착륙을 시도하기 전의 상황에 대한 정보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사고 여객기가 정상적인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던 중 관제탑이 '조류 활동 경고'를 발령했고 그로부터 2분 후에 기장이 '메이데이'를 세 번 선언한 후에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를 외쳤다는 것이 전부다.
여객기의 착륙 과정을 세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관제사의 생생한 증언은 끝내 들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사고 여객기의 엔진 잔해에서 충돌한 새의 잔해를 확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로칼라이저를 세우기 위해 설치해놓은 콘크리트 둔덕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오락가락하는 해명도 무책임하고 옹졸한 것이었다.
국토교통부의 '규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항공기가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했고 그 충돌이 179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는 명백한 팩트를 인정하는 것이 순리였다. “규정에 따라 설치한 국토교통부와 항만청은 책임이 없다”는 해명은 국민의 화(禍)를 돋우는 비겁한 변명이었다. 규정을 엉터리로 만든 책임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무안공항에서와 같은 대형 참사에 과학기술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과학자들이 사회적 참사는 애써 외면한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도 있다. 물론 과학계도 사회적 참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과학자가 반드시 사회적 참사의 해결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무안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항공기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과학자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확한 정보도 없는 과학자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 '제주항공 사고'와 '무안공항 사고'?
국토교통부가 12월 29일에 일어난 참사를 공식적으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부르기로 했다. 여객기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유가족이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는 소식이다. 이번 사고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항공사의 이름 때문에 참사의 불명예를 온전하게 떠안게 된 제주자치도가 행정안전부에 그런 요구를 담은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국토교통부가 묘수를 찾아냈다. 항공사와 항공편으로 여객기 사고를 분류하는 것이 국제민간항공기(ICAO)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 충돌 사고도 'Asia Airlines Flight 214'로 부른다.
그렇다고 ICAO가 민간 항공기 사고의 명칭에 대한 분명한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ICAO가 샌프란시스코의 명예를 지켜주려고 애를 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실제로 아시아나 214편의 사고를 'Asiana San Francisco Crash'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언론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감염병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스페인 독감'이나 '홍콩 독감'처럼 지역이나 국가의 명칭을 붙이거나 '돼지 독감'처럼 동물의 명칭을 사용하는 감염병의 이름이 불필요한 차별과 혐오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역이나 동물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명문화된 규정을 가지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감염병을 'COVID-19'으로 부르는 것도 그런 규정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국제기구의 규정이나 관행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의 COVID-19을 우리는 '코로나19'로 부른다. 2020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COVID-19을 '중국 플루', '쿵 플루', '우한 플루'로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2009년에 유행했던 '신종 플루'의 세계보건기구 공식 명칭은 'H1N1/09'이다.
대형 참사의 공식 명칭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제주항공 사고'는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사회적 규제·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정치 논리에 따라 부실하게 들어선 영세 공항의 안전성 강화를 강조하려면 '무안공항 사고'도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지역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부추긴다고 열을 올릴 일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도 기억해야 한다. 사실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국제기구의 어설픈 관행을 들먹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