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을 기다리며[유희경의 시:선(詩:選)]

‘한 편의 시를 떠올리거나 한 편의 시가 쓰일 때마다 겨울 햇살을 받는 듯 온몸이 데워지곤 했다. 그 온도에 대한 기억, 그 온기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곳의 한겨울은 한없이 춥기만 했을 것이다. […] 나는 벌써, 겨울 햇살을 받고 선 남녘의 한겨울 동백 한 그루가 된다.’
- 정끝별 ‘전생이 나무였을 것만 같아’(시에세이집 ‘시쓰기 딱 좋은 날’)
커다란 상자가 도착했다. 송장에 적힌 이름을 들여다보며 한참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낯선 이름이었다. 내게 보낸 건 분명하다. 뜯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침내 열어보았다. 한 묶음 꽃망울을 매단 나뭇가지가 있었다.
동백이로군. 대뜸 알아보았다. 꽃이나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동백이라고 다를 바 없는데도, 동백꽃이나 동백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가뭇한데도 나는 동백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외마디가 새어 나왔다. 초록에서 빨강으로 가는 꽃망울의 색이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보냈을까. 고마우면서 원망스럽기도 했으니, 꽃을 틔워보리라 단단한 의지와 함께, 그게 가능한 일일까 낙담이 함께 찾아왔다. 잎을 솎아내고 커다란 화병을 들고 와 물을 채우면서 나는 공연한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추울 때 꽃 피우는 동백이 얼마나 희망적인가. 서둘러 꽃말을 찾아보았다. 비밀스러운 사랑, 사랑에 대한 애타는 바람. 누가 보냈는지 모르므로, 슬쩍 부담스러우면서도 나는 이번 겨울이 지나고 찾아올 이다음 봄에 대한 기대를 동백꽃에 걸어보았다.
과연 이 동백 가지를 보낸 이가 누구일까. 여태 알아내지 못했다. 자진하여 내가 보냈다 고백해올 때까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며칠 된 동백은 아직도 꽃 피울 기색이 없다. 슬쩍 초조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피워낸다면 그 빨간 꽃을 얼마나 사랑하게 될지 짐작도 되지 않으므로 나는 희망이 그립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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