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이 기억하는 계엄의 밤…세번의 아찔한 순간들

고경주 기자 2025. 1. 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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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고경주의 고것이알고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께,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2024년 12월3일 밤, 그날 밤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두 가지다. 계엄군의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 그리고 국회 담장을 넘는 우원식 국회의장. 특히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기 위해 국회의장이 담을 넘는 모습은 그날 밤 155분 동안 유린됐던 우리의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역사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밤 우 의장을 비롯한 국회의 대응은 기민하지만 차분했다. 계엄군이 엄습한 아비규환 속에서도 ‘절차를 지켜야 한다’며 절제를 당부한 우 의장은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내란의 진실을 보며, 이 계엄 계획이 ‘최악의 상황’까지 노린 것임을 알게 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그 후 폭풍 같은 40여일이 지났다. 지난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우 의장이 짚은 세 개의 ‘아찔한 순간들’을 중심으로 ‘서울의 밤’을 재구성했다.

국회 담 넘으며…“싸우지 않길 잘했다”

지난달 3일 밤 10시33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만찬을 가진 후 공관에서 휴식 중이던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김민기 사무총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했다. 우 의장은 5분 만에 옷을 갈아입고 공관을 뛰어나왔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고,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본회의를 이끄는 건 국회의장이니 국회의장을 먼저 잡으면 (국회가) 꼼짝도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돌아봤다.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국회까지 달려오는데 15분이 걸렸다.

국회에 도착해 옆문으로 들어오려는 우 의장을 경찰 차벽이 가로막았다. 처음엔 부아가 났다. “경찰하고 한바탕 난리를 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계엄군을 피해서 왔는데 경찰하고 싸우다 잡혀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 이건 아니지’ 하고 차를 돌렸다.” 차를 돌린 우 의장은 전설로 남은 ‘담치기’에 도전했다. “국회 담장은 다 직선(세로로 긴 쇠 울타리)으로 돼 있어서 중간에 발디딤 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조금 가다 보니 무늬가 있는 문이 있어, 무늬를 이루는 부분을 밟고 발디딤 해 넘어갈 수 있겠더라. 거기를 밟고 넘어왔다.”

만약 그가 담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중에 공개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공소장엔 “포승줄 및 수갑 이용”해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중 보시는 팀 먼저 체포해서 구금시설(수도방위사령부)로 이동”하라는 김 전 장관과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지시가 담겨 있었다. 우 의장이 담치기에 실패했더라면 국회는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내란은 성공했을지 모른다.

2024년 12월4일 새벽,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 서울 한남동 우원식 국회의장 공관 인근 폐회로티브이(CCTV)에 찍힌 계엄군의 모습. 국회사무처 제공

정족수 채웠지만, 1시까지 기다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하는데 통고가 안 왔습니다. 계엄을 선포한 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지 않은 걸 봐서 이건 대통령 쪽의 귀책 사유입니다. 그러니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날 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 시작 직전, 우 의장은 의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계엄법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다. 내란 사태가 일어나기 전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이 “만약 계엄이 선포되면, 국회가 의결로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서다. ‘설마 계엄을 선포할까’ 내심 그리 생각하면서도, 계엄법을 읽어뒀다. 계엄법을 직접 살핀 우 의장은 절차 준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 의장은 “조금의 실수라도 있으면 이를 빌미 삼아 계엄 해제를 무효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의장님, 빨리 하시지요!” “일단 하십시오. 하고 얘기하십시오.” “빨리 합시다.“ “지금 밖의 상황이 급하다고 합니다. 지금 최루탄 터트리고 난리가 났답니다.” “지금 군인들이 3층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날 밤 본회의 속기록에는 의원들의 다급한 재촉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하지만 우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장도 마음은 급하지요. 그렇지만 절차가 틀리지는 않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절차가 잘못되면 또 그것도 문제입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상정을 위해선 여야 원내대표의 ‘협의’가 필수적이었다.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시간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원들은 빨리 의결을 하자고 하는데, 이 상황을 다 설명할 수 없으니까 난처했다. 절차는 지켜야겠고….” 우 의장은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마침내 자정을 넘긴 12시33분,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본청 안으로 쇄도했다. 새벽 1시에 이르자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 의장은 비로소 의사봉을 들었다. 새벽 1시1분, 국회는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헌법이 정한 절차 그대로였다.

우 의장이 혼란 속에서도 절차를 지켜낸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직후 합동참모본부 결심지원실에서 군 수뇌부와 회의를 열었다. 윤 대통령이 이 회의에서 계엄법과 국회법 해설서를 검토한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우 의장은 “만약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면 (해제 의결이) 무효라며 계엄을 유지시켰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2024년 12월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 헬기들이 떠 있다.연합뉴스

계엄 해제하고도…일주일간 국회 머물러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긴장이 여의도를 덮었다. 우 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국회·정당의 직원들은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를 의결할 때까지 경내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새벽 4시30분, 비상계엄 선포 후 6시간여 만에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를 보고도 우 의장은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직접 사실을 확인하려 국무위원들에게 연락했지만, 다들 연락이 닿지 않았다. 새벽 5시30분께 이르러서야 한덕수 국무총리와 연락이 닿았다. 한 총리에게서 “계엄을 해제했다”는 확답을 들었지만, “혹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 의장은 ‘산회’(본회의를 마침) 대신 ‘정회’(본회의를 잠시 중지함)를 선언했다.

우 의장은 그날부터 일주일 간 국회에서 야전 생활을 이어갔다. “계엄 해제 뒤 의장 공관으로 갈까말까 고민하다, 위험하니 그냥 여기서 자자 싶었다.” 사태가 진정된 뒤, 국회 사무처는 계엄 당일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 주변 폐회로티브이(CCTV)를 확인하고선 경악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선포한 지 50분이 지난 후에도 의장 공관 주변에 계엄군이 어슬렁거리던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만약에 (공관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잡혔다면 2차 계엄도 가능했을 것 같다. 집에 돌아가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우 의장은 “천운 같았다”고 돌이켰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4일 새벽 국회로 진입하려는 계엄군 차량을 가로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viator@hani.co.kr

계엄의 밤을 떠올리면 ‘아찔’해지는 사람은 우 의장뿐만이 아니다.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말과 달리, 수사가 진행될수록 윤 대통령이 치밀하게 계엄을 준비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은 “총을 쏴서라도 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했다. 의원들을 이송할 지하 벙커를 준비했고, 한겨레를 포함한 일부 언론사의 단전·단수까지도 계획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한 ‘내란 우두머리’ 윤 대통령은 관저에 숨어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15일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다. 윤 대통령 체포로 내란 종식의 첫 걸음을 뗄 수 있을까.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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