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 인 마이 시위백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한겨레 2025. 1.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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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 인 마이 백'은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는 영상으로 유명 연예인들의 가방 안 소지품을 들여다보는 십오분 안팎의 프로그램이다.

가방의 주인공은 핸드백 속 내용물을 쏟아내 립스틱이며 핸드크림, 향수, 소소한 먹거리 따위를 시청자들과 공유한다.

스타의 사적인 가방을 들여다보는 호기심과 취향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져 나름 안정적인 조회 수를 유지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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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왓츠 인 마이 백’은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는 영상으로 유명 연예인들의 가방 안 소지품을 들여다보는 십오분 안팎의 프로그램이다. 가방의 주인공은 핸드백 속 내용물을 쏟아내 립스틱이며 핸드크림, 향수, 소소한 먹거리 따위를 시청자들과 공유한다. 스타의 사적인 가방을 들여다보는 호기심과 취향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져 나름 안정적인 조회 수를 유지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인지 슬슬이 ‘왓츠 인 마이 시위백’이라는 제목의 글을 글방 카페에 올렸을 때 나는 오, 완전 끝내주는 제목인데, 오랜만에 소리 내 웃으며 글을 읽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혀가 데지 않게 조심해 마셨다. 가방에 챙겨 온 초콜릿도 하나씩 나눠 먹었다. 이탈리아로 여행 다녀온 친구가 사준 ‘어드벤트 캘린더’에서 뽑아온 초콜릿이다. 연말에 차곡차곡 매일 하나씩 즐거운 마음으로 꺼내 먹어야 했을 초콜릿이 집회 현장에서 심심한 입을 달래주었다. 가방에는 평소 늘 가지고 다니는 립밤과 핸드크림, 소독 티슈, 각종 충전기는 물론 혹시 모르니 무언가 적을 수 있도록 종이와 펜도 챙겼다. 가방이 무거우니 헤드폰 대신 이어폰을, 앉아 있을 동안 먹을 작은 간식도 종류별로 꼭 넣었다. 모자, 목도리, 장갑도 필수, 두툼한 겨울 신발을 신기는 하지만 양말도 두개씩 신었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땐 유독 발이 더 시리니까. 통이 넓은 바지를 입으면 레그 워머도 한겹 덧신기도 했다. 추위를 많이 타 껴입는 데 도가 트기도 했고 다행히 집회 참석하는 날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 고생스럽진 않았다.’(슬슬, ‘왓츠 인 마이 시위백’ 중)

시국이 시국인지라 글방에는 시위에 관한 글이 매주 나온다. ‘달달한 이야기’라는 글감이 나가도 ‘당신 덕분에’라는 글감이 나가도 사람들은 집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써 온다. 손이 훈련된 사람들은 어떤 소재나 글감이 주어져도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하는 이야기를 단단하게 맵시 있게 써 온다. 언제나 어디서나 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평소에 손을 벼리어둘 일이다.

‘다이소 앞에는 부스가 설치되어 스티로폼 방석과 핫팩과 귤과 떡 같은 것을 각자의 정치적 이름으로 나눠 주고 있었다. 방석은 이미 있다고 몇번이나 사양했지만 손에 쥐여주는 핫팩과 귤은 고사하기 어려웠다. 후원 링크가 보이거나 노동자 신문 같은 것을 팔면 파는 대로 샀다. 이왕 이렇게 나왔으니 마음 맞는 데 돈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우리는 그렇게 말하며 소액결제를 서로 격려했다. 즉석에서 헬륨 풍선에 바람을 넣어 나눠 주고 있었는데 우리 마음속의 어린이들이 헬륨 풍선을 그냥 지나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나무랐다. 우리는 홀린 듯 그쪽으로 가서 풍선을 받았다.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풍선이 날아가지 않도록 팔에 묶어줬다. 우리는 풍선에 적힌 문구를 제대로 읽을 틈도 없이 사람들의 파도에 밀쳐져서 이동했다.’(솔방울, ‘그래도 나는 우리의 힘을 믿어’ 중)

20대에서 50대까지, 대구에서 런던에서 분당에서 시애틀에서 부산에서 프라하에서 글방 사람들은 이 시간을 기록하고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고 들은 것은 무엇이고 말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고 신중하고 열성적으로 쓰고 있다. 이 글들이 모여 2023년과 2024년의 겨울 풍경을 드러낼 것이다. 견고하고 튼튼한 역사의 기록물이 될 것이다.

‘열흘 넘게 눈 뜨고 있는 매시간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하며 지냈다. 나 따위가 뭐라고, 내가 잠들면 세상이 망하기라도 할 것마냥 눈에 불을 켜고 뉴스를 봤다. 수시로 깨어 새로 나온 소식을 숨 가쁘게 따라갔다. 한번 읽은 속보를 매체를 바꿔가며 읽었다. 행여 뭐라도 놓칠세라 조바심 내며 들은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계엄이라니! 국회에 장갑차와 헬기가 오고, 특수한 훈련을 받은 정예의 군인들이 떼 지어 쳐들어갔다. 기막힌 우연과 간절함이 합쳐져서 현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많은 사람이 희생될 뻔했다는 상상을 하며 몸을 떨었다. 쪽잠이라도 설핏 들면 꿈에서 계속 길을 잃고 갇히고 무서운 것에 쫓겼다. 남편이 죽어서 조여드는 심장을 부여잡고 깨어나 엉엉 울었다. 나에게는 나라 잃는 슬픔이 남편 없는 세상과 비슷한가 보다 했다.’(조금, ‘당뇨와 계엄의 평행한 세계’ 중)

시애틀에 사는 조금의 글이다. 현장과 떨어진 멀고 먼 곳에 사는 자의 비통과 절박함, 위급한 상황에 손을 쓸 수 없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어디에 살든 ‘우리’는 이토록 통절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이며 누구까지일까. 오랜 세월 공들여 살뜰하게 가꾸어놓은 꽃밭을 한순간에 짓이겨버리려는 군홧발에 대한 분노, 모멸감, 상처. 저항의 결기,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이런 마음이 느껴졌다면 너와 나는 ‘우리’일 것이다.

‘이바가 좋아하는 말은 ‘미쳤다’이다.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며 잦은 야근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회사가 미쳤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바가 미쳤다는 말을 할 때마다 속으로 피식피식 웃는다. 그의 체코어 억양 때문에 ‘쳤’이 더 강하게 발음되어 속이 통쾌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반응에 이바의 얼굴 또한 걱정스럽게 변했다. 이바는 알고 싶어 했다. 2024년 12월3일에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에 나오는 말들은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사는 이곳 체코에도 계엄령 선포에 대한 기사가 다뤄졌다. 하지만 체코 역사에서는 계엄령이 한번도 선포된 적이 없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듯했다. 오늘 수업은 역사 수업이 될 것 같다며 파워포인트를 켜서 앞장에 오늘 배울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계엄령, 국회, 국회의원….’(두루주, ‘시대의 단어들’ 중)

두루주는 프라하에 살고 있다. 체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2024년 12월3일 이후 어려운 단어를 맥락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겨울 우리들의 우정은 동지애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송연하고 지리멸렬한 세상에서 나를 견디게 하는 건 찬 바람 부는 광장에서 핫팩과 초콜릿을 건네준 당신이라는 감각을 체화하고 있다. 이 감각은 향후 삼십년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는 굳건한 감수성이 될 것이다. 형형색색 반짝이는 유전자로 전승될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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