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이수 전 재판관, 尹 탄핵 사건 맡지 말았어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측이 제기한 정계선 헌법재판관 기피 신청을 기각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정 재판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윤 대통령 측은 그가 인사청문회 때 탄핵 사건에 대한 예단을 드러냈다는 점을 들었다. 또 국회 측 탄핵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가 정 재판관의 남편과 같은 재단법인에서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헌재는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했지만 기각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넘길 문제는 아니다. 이 경우가 헌법재판소법에 기피 사유로 명시된 것은 없다. 법에는 ‘재판관에게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일선 법원에서도 재판부 중 한 명의 배우자나 자녀가 근무하는 로펌 사건이 들어오면 사건을 재배당하거나 스스로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정 재판관과 그의 남편, 김이수 변호사 관계가 얽힌 국회 측 탄핵소추 대리는 ‘무흠결’이라고 할 수 없다.
정 재판관이 서울중앙지법 재판장 시절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기소된 기업 관계자 재판을 맡았을 때 재판을 회피했던 적도 있다. 당시 기업 측에선 정 재판관 남편이 가습기 사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이라는 점을 들어 기피 신청을 냈다. “남편은 피해자 측에 서 있고, 아내는 재판하는 게 불공정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기피 신청은 기각됐지만 정 재판관 요구에 따라 사건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됐다. 정 재판관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고 느껴 회피한 것이다.
지금 정 재판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고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 상황을 만든 데는 김이수 변호사 책임이 크다. 헌법재판관 출신인 그는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탄핵 사건을 맡지 말았어야 한다. 그는 헌법재판관 시절 통진당 해산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은 그를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했으나 결국 인준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헌재소장 후보도 고사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키더니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리는 판단에 고장이 나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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