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임우선]선로 밀침부터 방화-살인까지… 市상징에서 골칫거리 된 뉴욕 지하철
지하철 중범죄, 5년새 55% 늘어… 성탄절-신년에도 방화-칼부림 발생
범인은 주로 노숙자와 정신질환자… 노후화 탓에 스크린도어 설치 어려워
‘지하철 범죄-혼잡통행료 도입’까지… 민주당에 대한 뉴요커들 반감 커져
●2주 1번꼴 선로 사고, 칼부림에 살인까지
지난해 12월 22일, 크리스마스를 불과 3일 앞두고 뉴욕 시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오전 7시 30분, 지하철에서 졸고 있던 한 여성이 객차 안에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아무 이유 없이 여성에게 다가가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승강장 벤치에 앉아 사건 현장을 지켜보는 엽기적 행동을 했다. 뒤늦게 붙잡힌 범인은 2018년 과테말라에서 불법 입국했다가 추방당했지만, 다시 몰래 재입국한 불법 이민자로 드러났다.
같은 날 또 다른 지하철에서는 객차 안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다쳤다. 이틀 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한 남성이 칼로 한 여성의 목을 베는 등 두 사람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신년 전야에는 맨해튼 지하철 역에서 한 남성이 밀침을 당해 지하철과 부딪쳤다. 두개골이 골절됐지만 이 남성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새해 첫날에는 지하철에서 두 남자가 17분 간격으로 칼부림을 당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은 이어지고 있다.
지하철 범죄는 승객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기관사 등 뉴욕 지하철을 운영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 직원들도 칼에 찔리고 폭행을 당하는 등 돌발 사고에 노출되고 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만 지하철에서 총 49건의 중범죄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40%가량 늘어난 수치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 지하철 역에서 선로 밀침 사고는 2주에 1번꼴로 발생했다. 재택근무 확산 등의 영향으로 뉴욕 지하철의 승객 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보다 여전히 약 30% 적은 상황이다. 하지만 중범죄 수는 2019년 374건에서 지난해 579건으로 54.8%가 늘었다.
심각한 교통체증과 1시간 주차비가 5만 원이 넘는 살인적 물가로 유명한 뉴욕에서 시민들은 “차를 몰 수도 없고, 지하철을 타기도 무섭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60대 뉴욕 시민 재닛 씨는 “뉴욕이 1970년대로 되돌아간 것 같다”며 “그때도 이 정도로 나쁘진 않았다”고 한탄했다.
●승강장 벽에 딱…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논란
뉴욕시 당국은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고의 많은 수가 일부 노숙자를 포함해 정신건강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요즘 뉴욕의 지하철 역이나 객차 안에서는 어렵지 않게 노숙자들을 볼 수 있다. 뉴욕시는 도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거리의 사람들이 동사(凍死)할 것 등을 우려해 ‘코드 블루’를 발령하는데, 이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간이 지하철이다.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돌발 사고에 불안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늘면서 최근 뉴욕 지하철 역에서는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람들이 최대한 승강장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서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밀침 사고를 우려한 탓이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차라리 걷거나, 서울시의 ‘따릉이’에 해당하는 ‘시티 바이크’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뉴욕도 한때 한국의 ‘스크린도어’와 같은 장비를 설치하는 안을 논의했지만 MTA의 만성적 재정 적자에 무산됐다. 무엇보다 뉴욕 승강장이 오래돼 스크린 도어 하중을 감당할 수 없거나, 플랫폼이 좁아 설치 공간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시민들의 불만과 비판이 거세지자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지하철에 주 경찰과 MTA 경찰, 국가 방위군을 추가로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지하철의 폭력 범죄를 퇴치하고 정신건강 위기를 해결하겠다”며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을 쉽게 하는 법안 마련을 약속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이들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고 강제 입원 남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올해 6월 시작되는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지하철 안전과 정신건강 위기 해결, 그중에서도 노숙자의 정신건강 관리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뉴욕시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시의 노숙자 규모는 4140명으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NYT는 “뉴욕시 공립학교 학생 8명 중 1명이 노숙자”라고 전하기도 했다.
●정쟁 화두 된 ‘뉴욕 지하철’… 트럼프까지 등장
한편, 호컬 뉴욕주지사는 뉴욕의 대중교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MTA의 만성적인 적자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달 5일부터 맨해튼 진입 차량들에 대한 ‘혼잡통행료’ 부과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 혼잡통행료 부과가 시행된 것이다. 뉴욕은 이 돈으로 지하철 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는 9달러(약 1만3000원)로 시작했지만 6년에 걸쳐 통행료를 인상해 2028년에는 12달러, 2031년에는 15달러를 받을 예정이다.
뉴욕과 뉴저지 등에서 맨해튼을 자주 다니는 시민들은 이 같은 혼잡통행료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NYT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뉴욕주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혼잡통행료에 반대했다. 뉴저지주 등은 혼잡통행료 도입을 막기 위해 10건 이상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저지에 실패했다.
일부 시민은 민주당 출신 주지사인 호컬 주지사가 불법 이민자와 지하철 안전 문제를 해결 못 한 것도 모자라 혼잡통행료까지 부과하고 있다며 민주당 자체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뉴욕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까지 가세해 혼잡통행료를 격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취임 첫 주에 즉시 혼잡통행료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 속에 앞으로 뉴욕에서 공화당의 입지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2020년 대선 때보다 뉴욕 유권자들의 지지를 훨씬 많이 받았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뉴욕주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이번 득표율은 이전 대선 대비 12%포인트 늘었고, 뉴욕시만 놓고 봤을 때도 득표율이 7%포인트 증가했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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