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나들이] 여성 명장들의 대전 나들이

미술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여성 명장들의 희귀작품들이 모처럼 대전 나들이에 나서 올해 지역 미술계를 술렁거리게 만들고 있다. 이응노미술관은 오는 17일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여류화가 기획전을 야심차게 마련한다. '빛나는 여백: 한국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이란 주제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엔 천경자, 나혜석, 금동원, 김순련, 김윤신, 나희균, 문은희, 박래현, 박인경, 심경자, 최성숙 등 총 11명의 여류작가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모두 한국현대미술의 역사적인 소용돌이와 발전 과정에서 족적을 남긴 거장급 여류화가들이다.
이 중 현재 활동하는 7명의 작가들은 최고령자 99세를 포함해 평균 나이 85세의 마에스트로급 화가들이다. 나머지 4명의 경우 이미 작고하신 분들이다. 이번 기획전의 독특한 점은 11명의 작가들 모두 고암 이응노 선생 살아 생전에 직·간접적으로 예술 혼을 서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누구는 스승이기도 했고 누구는 제자이기도 했으나, 모두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기에 동료 예술가로서 서로를 북돋던 귀중한 인연들이자 살아있는 한국미술의 산 증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혜석(1896-1948)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굵직한 이름 값 외에도 고암 이응노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었으며, 그에게 파리 유학을 권유함으로써 예술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한국현대화 장르의 '미인도'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천경자(1924-2015)의 작품도 이번 전시에 소개된다. 천경자는 여인의 얼굴을 독특한 분위기로 그려내며 꽃과 뱀이라는 소재와 잘 버무려냄으로써 여인의 눈으로 본 세계, 달관의 경지에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한국 1세대 여류조각가로 지금도 왕성한 국제전을 펼치며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있는 김윤신의 '나무를 주제로 한 심오한 작품세계' 또한 매력적인 감상 포인트다. 전기톱을 든 90대 여류작가의 작품을 직접 대하는 순간 특이하고 멋있는 대가의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문은희의 작품 또한 만만치않은 명작으로 손꼽힌다. 한국화 최초의 수묵누드를 그리며 왕성하게 장르의 포문을 연 여걸용장이다.
이번 기획전에 출품된 여류화가들의 작품들이야말로 치열했던 한국역사의 중심에서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간해선 보기 힘든 지역 전시 작품이다. 이번 전시작은 국립현대미술관,국립민속박물관,리움미술관,가나문화재단,수원시립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을 각각 대여해 한자리에 모았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한국 미술사를 개척했던 11명의 여류작가, 그 주옥 같은 작품들은 그림 애호가들에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다. 양세히 갤러리메르헨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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