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 양우석 감독 "가족 이야기가 '변호인'·'강철비'보다 훨씬 어려웠어요"[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1000만 영화 '변호인'과 '강철비' 1, 2편을 통해 현대 한국사에 밀착한 정치·사회 이슈를 다뤘던 양우석 감독이 지난해 연말 색다른 가족 영화인 '대가족'을 선보이며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김윤석, 이승기가 주연을 맡은 '대가족'은 코미디의 외피를 둘렀지만 오밀조밀 유쾌한 스토리 안에 현 한국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의 심각한 문제의식부터 세대간의 갈등 등을 시의적절하게 다루면서 핵가족 시대의 가족 관계에 대한 대안까지 주제적 측면 또한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담아내면서 웰메이드 가족극으로 탄생됐다.
'대가족'은 의대생이었던 아들 함문석(이승기)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스님이 되면서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 함무옥(김윤석)에게 상상치도 못했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함께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매체 인터뷰에 나선 양우석 감독은 가족 해체부터 대안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심오하지만 충분히 이해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통해 불교의 교리와 우주의 작동 원리까지 아우르는 주제를 그리려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 '대가족'은 '변호인', '강철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야기로 보여지는데.
▶ '대가족'이 '변호인'이나 '강철비'보다 저에게 좀 더 힘든 숙제였었던 것은 맞다. 가족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세 개의 전작은 주된 사건이 있지 않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내용인데 반해 '대가족'은 부자지간인 함무옥과 함문석이 아내의 죽음으로 가족 해체를 겪고 또 그런 과정을 겪은 아이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달리는 길이 다르다. 이 세 명에게 어떤 쉬운 솔루션도 주어지지 않는다. 제가 영화라는 2시간 남짓의 예술에 욕심을 내서 3층 집을 짓고 말았다.
- 3층 집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 사실 2시간 남짓 영화에서 2명 이상의 캐릭터를 파고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 명의 캐릭터를 제대로 집중하기도 어려운데 세 명을 팠다. 그것이 저에게 굉장히 위험한 숙제였다. 이들 각자가 끝없이 자신의 길을 달리기에 힘들었다. 잘 보시면 이들이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뭉치지 않는다. 그래도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코믹과 가족 드라마가 함께 하는 장르로 인식되도록 노력했다. 결국은 함무옥의 성장 드라마다. 함문석과 민국, 민선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두 아이가 '강철비'의 두 명의 철우보다 더 절박했다고 본다.
- '대가족'은 코미디이면서도 감동 코드가 센 영화다. 중간중간 관객들의 눈물을 꽤 뽑아내는 장면들도 존재하는데.
▶ 속된 말로 하자면 시나리오 과정에서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할까. 어떤 대사를 꼭 써야지 하고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다 보면 해당 캐릭터의 입에서 나올 법한 대사가 써질 때가 있다. 글을 쓸 때 그 캐릭터가 되지 않고서는 그 글을 쓸 수 없다. 그렇게 집중해서 쓰다 보면 어느 날 인물에 몰입되어 그 순간이 오게 된다.
- 시나리오 과정 및 프리 프러덕션 기간에 철두철미하게 사전 조사들과 취재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무옥의 만두가게 묘사를 위해 서울, 경기권 전통있는 유명 만두 가게에서 엄청난 취재를 거쳤다던데.
▶ 보통 가수나 작곡가 분들이 노래 가사처럼 된다는 소리 많이 하시던데 우리 영화는 정말 만두 같은 영화가 됐다. 요즘은 인스턴트 만두들이 너무 다양하지만 잘 나가는 만두집은 다 가서 먹어보고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다. 100여개 이상의 만두 가게에 가본 것 같다. 한국에는 중식 만두와 분식 만두, 또 평양 만두 이 세 종류의 만두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잘 하는 집들은 공통점이 있더라. 전부 고기를 숙성해서 한다. 어떤 곳은 다시마를 발효에 쓰시기도 하고 곡물 발효는 공통적이다. 평양만두에는 대파가 많이 들어가고 분식 만두에는 당면이 들어간다. 우리 입에 들어가면 같은 만두 같아 보여도 밀가루 반죽을 해서 만두피를 뽑아내는 거나 고기 숙성 등을 하는 일에 가게마다 철학들이 다 있으셨다. 인사동과 남양주시에 있는 두 개의 만두 가게가 우리 영화에 나온 만두 가게에 영감을 많이 줬다.
-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
▶ 김윤석 배우가 OK를 하셨을 때 영화가 제대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싶더라. 그때 가장 기뻤던 기억이 난다. 김윤석은 성격적으로 F와는 거리가 멀고 굉장히 T가 강한 분이다. 시나리오를 적확히 읽어 주셨고 아이디어도 꽤 주셨다. 잘 하실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윤석 선배와 의견이 일치했던 부분 중 하나는 이 드라마에 코믹한 상황이 등장하지만 연출자인 저나 선배님이나 이 극을 코미디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상황이 코믹하기에 배우들이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다. 애들이 찾아온 날 평만옥 마당 한 가운데에서 조상님을 외치며 함박 웃음을 지으며 펄쩍 펄쩍 뛰는 김윤석의 표정은 얼마나 놀라운가. 윤석 선배의 그 미소안에 모든 것이 담겼다. 함무옥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나?
- '타짜'나 '황해', '노량:죽음의 바다'에서 볼 수 없었던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할아버지의 표정을 김윤석에게서 이끌어 냈다.
▶ 김윤석 배우는 '타짜'에서 화투를 치는 순간 바로 타짜로 보이고 '황해'에서 족발 뼈를 들고 폭력을 가해도 그가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위협을 준다. 우리 영화에서는 만두피에 만두소를 채워 넣는 행동으로 그냥 만두 장인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 면들이 배우 김윤석의 어마어마한 장점 아니겠나. 배우라는 직업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표정을 찾아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실 살아가면서 자신의 표정을 잘 알기가 어렵지 않나. 사는 것에 너무 바쁘다 보니. 김윤석 선배가 아이들이 집에 처음 찾아와서 자신의 손자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 그렇게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 웃음을 지을 줄 몰랐다. 그야말로 하회탈의 미소 아닌가. 그저 그 표정 하나로 극의 모든 서사를 다 설명해줬다. 촬영 당시 그 표정을 김윤석 배우가 지었을 때 '아, 이 표정을 보시고 관객들이 바로 감정이입을 하시겠다' 싶었다.
- '대가족'에서 함무옥 중심의 서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 두 번 정도 발생하는데 자신들이 문석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두 명의 아이들이 찾아온 순간과 후반부 두 아이들 모두 문석의 자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순간들이다. 이 과정들을 통해 후반부 엄청난 반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극의 큰 흐름의 구성을 어떻게 설계했나.
▶ 사실 이 작품은 함무옥의 성장 드라마이다. 6.25때 부모님을 잃고 함께 월남하던 여동생마저 생사를 모르게 되어 혈혈 단신으로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 무옥이다. 돈을 악착 같이 모아서 자신의 가족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을 텐데 서울대 의대까지 보내놓은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출가를 해버린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손자와 손녀를 한꺼번에 얻게 돼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행복감에 쌓인다. 이때 함무옥에게 두 아이들은 욕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피난길에 여동생을 잃게 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두 아이들과 무옥은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평화로움도 잠시 함무옥은 두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엄청난 갈등을 겪게 된다. 이 와중 무옥의 꿈에 나타난 부모님은 '너를 키운 건 세상'이라고 격려를 하고 아들 문석을 대신해 여러 차례 정자 기증을 한 적이 있는 중국집 배달원 출신의 청년은 "이 세상에 어떻게든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을 한다. 결국 이런 사건과 대사들을 통해 제가 관객들께 드리고 싶었던 주제를 잘 담았던 것 같다. 무옥을 키운 것도 그리고 무옥의 자손이 될 뻔 했던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것도 결국 세상인 것이다.
- 대안 가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주제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따로 있나.
▶ 제가 가족이 우리 시대의 화두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왜 가족을 만들기가 이렇게 힘들어졌는가에 대해 문제 의식이 생겨서이다. 분명 국민 소득도 오르고 객관적 삶은 분명 훨씬 더 풍족해지고 좋아졌는데 왜 가족을 만드는 일은 50~70년대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다. 사회 경제적으로 가족 단위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가족 자체도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 이유가 아닌가 싶다. 부모의 욕망이 자식에게 투영돼서 자식을 아웃풋으로 바라보는 시대다. 아웃풋이 좋으려면 당연히 인풋이 좋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흙수저, 금수저 같은 단어가 난무한다. 가족이란 어떻게 보면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의 원인, 결핍의 원인이고 내 욕망을 채줘주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서처럼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의 진심에 관심조차 없었던 부자가 민선, 민국의 등장과 이들이 자신들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새로운 꺠우침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문석 또한 머리로만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다가 자신이 저지른 업보를 해결하려 의대생 시절 정자 기증을 통해 400여명이 넘는 자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을 대신해 몇 차례 정자 기증을 했던 중국집 배달원이 오히려 사회에서 어러움을 겪는 어린이들을 위해 밥을 지어주는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세상 속에 부처들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런 과정에서 문석 또한 성장을 겪는다.
- 언론시사회 당시 불교 영화의 새로운 맥을 이어보고 싶은 뜻도 있다고 밝혔는데?
▶ 불교에 원래 관심이 있었기에 조금씩 불교 공부를 해왔다. 불법이라는 단어에서 법이라는 말은 '법률' 할 때 법이 아닌 진리라는 의미에 가깝다. 불법이라는 말은 불교의 진리라는 뜻인데 이 단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는 '다르마'라는 단어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다르마의 원래 뜻은 바꾸다, 치환하다라는 뜻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법칙이 인간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잘 살펴보면 불법에 가깝다. 현대 불교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교리를 지닌 것이나 현대 물리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주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과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인지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다룬 종교가 불교인건데 그래서 불교가 어렵다. 방금 말한 '다르마'의 개념을 인간에 대입시켜 보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변화한다. 또한 불교에는 우주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설도 있다. 부모가 있었기에 자식이 태어났지 않나.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태그가 붙는다. 어느 유치원, 초등학교, 대학교 이런 학교의 태그도 있고 유일하게 선택할 수 없는 태그가 가족이다. 내 지능과 퍼스탤러티를 선택할 수 없지 않나. 부모가 마음에 안든다고 버릴 수도 없지 않나. 무애 스님(함문석)이 라디오에 출연해 강의를 할때 다르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제 생각에는 이것이 사랑과 자비, 연민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 모든 것은 결국 우주의 법칙과도 통한다. 우주를 만든 근본 원인이 핵력인데 그것을 인간 세상에 가져오면 자비이고 사랑이고 연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제가 불교 공부를 하며 느낀 가장 큰 핵심은 이런 내용이었다.
- 한국 대표 연기파 배우인 김윤석과 송강호를 주연 배우로 경험한 몇 안되는 감독이다. 두 사람의 장점을 각각 표현해 본다면.
▶ 송강호 배우나 김윤석 배우 두 분 모두 워낙 탁월한 분들이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에 비유해 본다면 송강호는 타고난 스트라이커다. 옛날에 바티스투타라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의 별명이 바티골이었다. 그저 공만 잡으면 바로 골을 넣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송강호 선배도 갑자기 훅하고 공을 받아 바로 골을 넣는 것처럼 격정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다. 마치 호나우두가 골을 넣을 때면 상대 수비수도 감탄하며 골 넣는 걸 보지 않나? 송강호 선배와 작업할 때 저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김윤석 선배는 마테우스 같다고 할까. 이쪽 하프라인 안에서 경기 전체를 조율하며 수비를 하다가 골을 넣어야 할 때가 오면 바로 공격으로 태세전환을 해 골을 넣는 모습과 같아. 경기의 2/3지점까지 내내 수비를 하다가 탄탄하게 독일식 전차 수비를 하다가 막판에 갑자기 골을 넣어버리는 느낌이다.
-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앞으로의 10년은 우리나라 산업을 위해 쓰고 싶다. 지금 가장 관심이 있는 건 한국식 판타지 무협이다. 우리만의 장르로 세계 시장에 도전해보고 싶다. '열혈강호'를 새로운 시리즈로 만들어 전 세계 시청자들과 함께 즐겁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기존 김용의 역사 무협 같은 방식은 아니고 동양인의 시각에서의 무협인데 K-무협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서 안착시켜 보고 싶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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