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까…한남동 초교 앞 욕설·싸움 '가득' [르포]

정세진 기자, 송정현 기자, 이찬종 기자 2025. 1. 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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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근처 한남초등학교 학생이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다. 한남초는 대통령 관저 진입로에서 불과 50여 m 떨어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진입을 막고자 학교 정문에 폴리스라인(경찰저지선)이 설치됐다. /사진=송정현 기자


"내가 이 학교 학부모인데 어디 대라는 거예요."
"저 밑에 대세요."

13일 오전 11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학부모와 집회 참여자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한 학부모가 학교 정문 근처에 주차하자 집회 참여자들이 '차를 빼라'고 항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곳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학부모 A씨는 "지금 집회가 애들 교육 방해하는 거 아니냐"며 따졌다. 근처에 있던 경찰관들이 뛰어와 급하게 양측을 제지했다. 경찰관은 학부모에게 "대응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라고 말했다. 한 집회 참여자는 학부모의 차량에 대고 욕설을 하기도 했다.

서울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근처 한남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일부 집회 참여자가 학부모와 주변 행인, 취재진에게 욕설과 위협을 가하면서다.

이날도 학교에서 약 250m 떨어진 국제루터교회 앞 한남대로에서는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의 '24시간 집회'가 이어졌다. 평일 오전임에도 주최 측 추산 5000명이 모였다.

한모씨(41)는 아들 손을 꼭 잡고 근처 한남초 정문을 통과해 학교 안까지 들어갔다. 학교 정문 앞에는 경찰이 설치한 폴리스라인(경찰 저지선)이 대규모 인파 접근을 막고 있다.

한씨는 "상식을 보여주는 집회 현장이 아니라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고 싸움도 일어난다"며 "전에는 아들 또래 학생이 7~8명 정도 있었는데 오늘은 우리 아이를 포함해 2명이 왔다"고 했다. 이어 "학교측에서도 책임 지기 어렵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걸 우려한다"며 "상호작용을 하며 배우는 것이 많을 텐데 못 배울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13일 오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근처 한남초등학교 학생이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다. 한남초는 대통령 관저 진입로에서 불과 50여 m 떨어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진입을 막고자 학교 정문에 폴리스라인(경찰저지선)이 설치됐다./사진=송정현 기자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온 박모씨(46)는 "집회 현장에서 발언하는 욕설이나 정치적인 발언이 마이크를 통해 학교에 다 들린다"며 "교육 측면에서도 걱정이 많다"고 했다.

김모씨(39)는 "돌봄학교와 방과후 학교에 보내는데 확성기 소음 등으로 일부 수업은 휴강 상태"라며 "딸에게 물어보니 '확성기 소음 때문에 수업에 집중을 못 하겠다'고 한다. 딸이 '집회하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거냐'고 질문해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날 등교 시간에 한남초 정문 앞에는 경찰 정보관을 포함해 경찰관 5명이 배치됐다. 학교 정문으로 진입하는 진입로에도 다수 경찰관이 배치돼 집회 참가자의 학교 출입을 관리했다.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도 지난 9일부터 한남초 앞에 '통학안전지원단' 인력을 배치해 등·하교를 지원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까지도 방학 수업 등을 위한 학생 등교가 이어졌지만 보수 집회 참여자들은 여전히 학교 근처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태극기나 'STOP THE STEAL'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이들은 사진을 찍는 주변 행인을 향해 '사진 찍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도 학생 혼자 하교할 수 없다. 학교 보안관은 정문에 학부모가 도착하지 않으면 학생을 내보내지 않았다. 수업이 일찍 끝난 초등학생들은 지루한 듯 몸을 비비 꼬며 정문에서 기다렸다. 학부모가 온 경우에도 학교 보안관은 학생이 차에 탈 때까지 학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13일 오전 경찰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초등학교 정문에서 한 방송사 취재진에게 집회 참여자가 욕설을 하고 있다. 등교시간 학생과 학부모의 출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찰은 욕설을 하는 집회 참여자를 제지했다. /사진=송정현 기자


임모씨(43)는 "지난 3일쯤에는 집회 참여자들이 한남초 정문을 점거해서 학부모들이 학교에 못 들어갔다"며 "그주에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모두 취소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임씨는 이날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을 차로 데려다 주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임씨처럼 차량을 이용하는 학부모들은 학교 주변 주차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박씨는 "정문 근처에는 집회 때문에 주차를 할 수 없어 200m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 주차해놓고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보수 단체 회원들이 취재진을 위협하는 장면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됐다. 이날 오전 한남초 정문 앞에서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근처를 취재하던 한 방송사 취재진을 향해 "어디 기자냐, 거짓방송 아니냐"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방송사 카메라를 본 지지자 5명이 갑자기 몰려와 "빨갱이, XX들 꺼져라. 좌파 XX들"이라며 위협해 취재진이 철수하기도 했다. 위협을 당한 취재진이 "여기 학교니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지지자들은 욕설을 계속했다. 양쪽이 대치하는 사이 한 학부모가 초등학생 남자아이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학부모들은 빨리 '조용한 한남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한씨는 "주변 학부모들이 포털에서 CCTV(폐쇄회로TV)를 수시로 보며 학교 앞 상황을 관찰한다"며 "서로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초등학교 정문에서 경찰이 집회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이찬종 기자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송정현 기자 junghyun792@mt.co.kr 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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