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국 자막에 구독서비스까지, 법망 비웃는 '해외판 누누TV'
해외판 누누TV의 덫 2편
기승 부리는 불법유통 사이트
해외에서 특히 더 심각하지만
정부는 피해 규모조차 몰라
사이트 임시 차단에만 급급
국제 기관 공조 필요한 시점
‘소소한 수확’ 있지만 더 늘려야
# 우리는 심층취재 추적+ '해외판 누누TV의 덫' 1편에서 K-콘텐츠에 기생하는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의 면면을 살펴봤습니다. 이들 사이트는 대범하게도 앱까지 만들어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앱 다운로드 횟수만 따져봐도 수천만건에 이릅니다.
# 문제는 K-콘텐츠의 '수호자' 역할을 해줘야 할 정부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피해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합니다. K-콘텐츠는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 걸까요? 정부는 어떤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걸까요? '해외판 누누TV의 덫' 2편입니다.
K-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을 필두로 한 K-콘텐츠가 OTT·영화관·웹툰 등 다양한 플랫폼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죠. 이젠 'K-콘텐츠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K-콘텐츠의 인기가 뜨거운 만큼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습니다. 불법으로 K-콘텐츠를 퍼다 나르는 '어둠의 루트'가 횡행하고 있어서입니다. 지난해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법유통 사이트 '누누TV'의 해외판 버전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는 1편에서 그중 하나인 '하이티비'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여기엔 오징어게임2부터 어제 막 방영을 마친 따끈따끈한 KBS의 공중파 드라마까지 없는 게 없었습니다. 수법도 과감합니다.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앱까지 만들어 접근성을 키웠습니다.
7개 국어 자막과 알고리듬 기반 추천, 유료 구독 지원 등 운영 방식도 웬만한 OTT 못지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의 인기는 정식 사이트만큼이나 뜨겁습니다. 하이티비의 경우, 12일 기준 구글의 앱마켓 '구글플레이'에서 누적 다운로드 횟수가 1000만건을 돌파했습니다.
■ 피해 규모 파악도 안 돼=문제는 하이티비 같은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국내 콘텐츠 산업이 피해를 입는다는 겁니다. 피해 중 상당수는 저작권 침해입니다. OTT 업계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볼까요?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K-콘텐츠 불법 유통으로 인한 저작권 침해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 산업의 피해 금액이 얼마인지조차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K-콘텐츠의 불법유통량이 어느 정도인지 어림잡을 수 있는 통계가 있긴 합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2023년 11월 영화·방송·웹툰 분야의 불법유통 사이트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해외에 불법유통된 K-콘텐츠는 3억5000만개에 달했습니다. 해외 불법 사이트에서 K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15.4%나 됐죠.
하지만 정부는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를 차단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 삭제 현황'에 따르면, 문체부가 적발해 삭제한 해외 불법 사이트는 2019년 12만6940건에서 2023년 20만9033건으로 4년 새 1.6배가 됐습니다.
반면 문체부의 저작권법 해외 위반사범 형사입건 수는 같은 기간 762건에서 266건으로 3분의 1 토막 났습니다. 송치 건수 역시 1592명에서 454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콘텐츠 제작업계에선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입을 모읍니다. 가령, 웹툰 업체들이 최근 콘텐츠에 워터마크를 부착하거나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불법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등의 기술을 도입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어디까지나 불법유통 사이트를 찾아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근절책은 아니니까요.
물론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K-콘텐츠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공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문체부와 경찰청은 2021년 4월부터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업무협약을 맺고 '온라인 불법복제 대응(Interpol-Stop Online Piracy, I-SOP)'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K-콘텐츠 저작권 범죄를 단속하는 게 이 사업의 목표인데, 성과가 있긴 합니다.
■ K-콘텐츠 위해 해야할 일=지난해 11월 6일 문체부와 경찰청은 필리핀에서 한국 교민을 대상으로 불법 IPTV 서비스를 운영한 '○○○TV' 피의자를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인터폴과 필리핀 국가수사국과 함께 긴밀한 국제 공조를 펼친 결과입니다.
정향미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K-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하면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활동도 해외로 함께 나가야 한다"면서 "문체부는 해외에서 K-콘텐츠를 보호하고 국제적인 저작권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공조 협력을 꾸준히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가 K-콘텐츠 해외 불법유통의 현주소입니다. 세계 93개국에서 '올킬'을 기록한 오징어게임2의 흥행이 보여주듯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K-콘텐츠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기에 편승해 불법유통 범죄가 국내외에서 활개를 치는 건 K-콘텐츠의 불편한 현주소입니다.
K-콘텐츠는 지금까지 '민간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어쩌면 정부가 숟가락을 슬쩍 얹어왔을지 모르죠. 이젠 정부가 '엉뚱한 사람' 지키는 데 골몰하지 말고 K콘텐츠를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늦으면 펄펄 나는 범죄자를 영영 잡을 수 없을지 모르니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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