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쇼크]⑤ “월 단돈 1만원에 거주” 빈 집 대책 쏟아지지만... 아직은 시범사업 수준
무료 철거 시 공영주차장 등으로 활용
민간 ‘빈 집 숙소’ 조성해 임대
정부 중심의 심도 있는 대책 필요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빈 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다양한 빈 집 관리법이 나오고 있다. 빈 집 문제를 목도하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빈 집 철거 시 보조금을 제공하고 새롭게 단장한 빈 집을 한 달에 단돈 1만원 빌려주는 등 빈 집 관리·활용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민간에서도 방치된 빈 집을 개조해 숙소나 점포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빈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차원의 빈 집 관리를 위한 전담 조직이 있지만 관리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빈 집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지난 5년간 빈 집 재정비 실적은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정부 ‘빈 집 실태조사’부터…지자체, 월세 1만원 빈 집도 선보여
정부는 지난 2022년 빈 집 현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고자 ‘전국 빈 집 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부, 해양수산부는 이를 통해 빈 집 실태조사의 세부 추진 절차를 정하고, 빈집 관리 전담부서 지정 등을 명시했다. 그동안 부처별로 빈 집의 기준부터 달라 현황 파악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 기준부터 통일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해서는 소규모 빈 집 철거 시 건축물 해체 절차를 간소화했다. 2층 이하, 8m 이하 등 소규모 건축물에 한정해 건축사 등 검토를 생략하고, 허가권자가 건축물 해체 계획서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비용·절차를 없앴다. 또 지난해부터 농어촌정비법을 신설해 방치된 빈 집을 철거하면 지방세법시행령에 따라 재산세를 경감하고, 지자체가 철거명령을 내렸는데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지방 중소도시의 지자체는 실질적인 빈 집 해결책을 쏟아내고 있다. 빈 집 관련 사업 관계자는 “인구가 줄어들어 빈 집이 늘어나는 걸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지자체가 확실히 빈 집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빈 집 리모델링 정책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전남 강진군은 빈 집을 활용해 인구 유입을 꾀하고 있다. 인구 3만2000명으로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강진군은 빠르게 늘어나는 빈 집을 소유주에게 무상으로 빌려 정비한 뒤 귀촌을 원하는 입주자에게 빌려주는 ‘강진품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진군은 빈 집 소유자가 주택을 무상 임대할 경우 5년 임대 5000만원, 7년 임대 7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직접 리모델링한다.
강진군은 그렇게 탈바꿈한 집을 새로운 거주자에게 보증금 100만원, 월 임대료 1만원에 빌려준다. 특히 빈 집 거주 신청 시 만 19~45세를 우대해 청년층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이 빈 집 활용 사업은 큰 인기를 끌며 가구당 평균 경쟁률이 최대 20대 1에 달할 정도다. 강진군의 빈 집 거주 사업에 지원했다는 한 청년은 “귀촌을 고려하는 중에 2년을 거주비 부담 없이 살고 갱신까지 두 번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이에 전국 20여개 지자체가 강진군의 빈 집 활용법을 벤치마킹했다. 충남 청양군은 빈 집 리모델링을 통해 청년층에 임대하는 ‘빈집이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남 고성군 역시 빈 집을 활용해 시골집 살아보기 ‘힐링 촌캉스’ 사업을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빈 집 정비나 철거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남 순천시는 지자체들은 빈 집 철거 시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 빈 집 소유주가 지자체에서 직접 주택을 철거하기를 원한다면 무료로 철거하는 대신 이 부지를 일정 기간 공영 주차장, 공원과 같은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빈 집 활용…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민간에서도 빈 집을 활용한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빈 집 관련 스타트업 ‘블랭크’는 빈 집을 활용해 장기 숙소를 지원한다. 블랭크는 빈 집을 5~10년간 빌려 수리를 하고 숙소로 활용한 뒤 다시 돌려준다. 빈 집의 상태에 따라 무상으로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빈 집을 개조해 숙소를 만들어 장기 숙소로 임대한다. 현재 블랭크가 운영 중인 빈 집 숙소는 영주, 단양 등 8개가 있다.
문승규 블랭크 대표는 “빈 집은 상속을 받아도 자녀들이 대부분 도시에서 살다 보니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이 빈 집을 숙소로 활용한다고 제안하면 대체로 긍정적”이라며 “상속 받은 빈 집은 선뜻 팔지 못하고 은퇴 이후 쓸 계획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 관리를 못해 망가지느니 빌려주더라도 나중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게 많다”고 했다.
이 같은 빈 집 활용법은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블랭크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빈 집을 활용한 롱스테이 주택 ‘유휴하우스 영주필두’를 조성해 실증 분석을 한 결과, 고객들이 현지에서 식음료와 생필품을 구매하는 등 소비 진작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빈 집 프로젝트에 5개팀이 참여했는데 숙박비를 제외하고도 팀당 소비한 금액은 일주일 기준 2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블랭크는 빈 집 구독 서비스도 구상 중이다. 문 대표는 “현재는 빈 집을 개별 단위로 임대해주는 사업이지만, 어느 정도 수량이 늘어나면 구독하는 방식으로 전환 계획”이라고 했다.
또 다른 빈 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 역시 소유자가 관리하기 어려운 빈 집을 10년 간 무상으로 임대해 지역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숙소로 리모델링해 관광객에게 빌려주고 있다.
◇”각개전투에 불과”…정부 차원 해결방안 마련 필요
그러나 이 같은 정부·지자체, 민간의 노력에도 빈 집 문제 해결을 위한 ‘콘트럴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주축이 돼 국토부, 농식품부, 해수부등이 참여하는 빈 집 정비 통합지원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8월 출범됐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정부가 빈 집 정비를 위해 내놓은 빈 집 실태조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빈 집의 현황 파악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조치인 만큼 더 심도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빈 집 증가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구 감소도 속도가 붙는데, 이는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를 더욱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정비에 나서도 예산 부족으로 관리를 할 수 있는 빈 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과 세종을 제외한 전국 85개 인구감소지역 평균 재정자립도는 10.4% 수준이다. 이는 전국 평균인 43.3%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가 추진하는 빈 집 정비사업의 속도는 더디다. 전국 빈 집이 34% 증가하는 동안, 비수도권의 정비사업 실적은 전체의 0.3%에 불과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빈 집 정비에 5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증가하는 빈 집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빈 집 관련 재생사업 관계자는 “지자체들은 목전에 닥친 빈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사업자와의 협력을 하고자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엔 예산 등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이에 일부 지자체에서 하던 빈 집 재생 사업은 중단되기도 하고, 빈 집 은행 사업은 시범적으로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지자체 차원의 관심을 떠나 중앙정부에서 빈 집의 관리와 활용을 위해 세제 혜택이나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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