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내 딸 이렇게 컸구나” 31명의 한복 졸업식 [세상&]
졸업생 31명 “친구들·최애 선생님 곁 떠나기 싫어”
졸업 축하 사물놀이 공연·1학년의 꽃 전달식도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새로운 시작과 졸업을 축하합니다!’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초등학교가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복 졸업식’을 열었다. 1895년 개교해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재동초는 이날로 127번째 졸업식을 맞았다. 총 31명의 6학년 학생들이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자리를 빛냈다. 재동초는 ‘전통의 멋을 바탕으로 미래를 여는 재동 행복교육’이라는 학교 비전에 맞춰 2017년부터 한복을 교복으로 정식 지정했다.
오전 10시께 졸업식이 시작되자 재동초 사물놀이 동아리 ‘천둥소리패’가 힘찬 걸음으로 등장해 무대를 채웠다. 동아리원 15명은 모두 삼색띠를 두른 채 저마다 꽹가리와 징, 장구, 북 등을 나눠들고 사물놀이 공연을 시작했다. 이들은 장단의 빠르기와 강약 정도를 수시로 바꿔가며 졸업식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었고 중간중간 ‘얼쑤’ ‘절쑤’ 등의 추임새도 넣었다.
천둥소리패는 공연 후반부에서 아리랑도 열창했다. 고음 부분에서 합창 소리가 가늘어지자 학부모들은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사물놀이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박수가 쏟아졌고,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공연에서 장구 연주를 맡은 황금서아(10) 양은 “오늘을 위해 3년을 연습했다. 언니, 오빠들 앞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준 것 같아서 뿌듯하다”라며 “이렇게 사물놀이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언니, 오빠들 모두 고맙고 항상 기억하겠다”라고 말했다. 심상우(10) 군은 “졸업생 선배들을 떠나보내려니 너무 아쉽다”라면서 “선배들 모두 중학교 가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서 빨간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 한복을 입은 성인진 재동초 교장 선생님이 입장해 6학년 두 학급을 맡아 지도한 담임 선생님들을 소개했다. 성인진 교장은 6학년 교사들을 두고 “학교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라고 일컬으며 칭찬했다.
이번 졸업식에는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도 참석했다. 정근식 교육감은 성인진 교장과 함께 6학년 학생들의 이름을 한명씩 부르며 악수를 청하고 졸업장을 수여했다. 31명의 졸업생들은 각각 재동초 예술창작상, 창의논리상, 사회봉사상, 체육인성상 등을 받았다. 한복을 입은 담임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고 단상에서 내려올 때마다 포옹으로 다시 한번 축하했다.
졸업생들은 학교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면서도 중학교에서 펼쳐질 새로운 생활이 기대된다고 했다. 6학년 1반 박재현(12) 군은 “4학년 때 재동초로 전학왔는데 이전 학교보다 친구들이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졸업이 슬프다”라면서 “중학교에 올라가면 서예 같은 다양한 활동이 많다고 하더라. 이것저것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졸업생 마푸름(12) 양은 “1학년 때 입학상도 받았는데 이번에도 졸업상을 받아 기분이 좋다”라면서 “중학교 가서도 방심하지 않고 늘 화이팅하겠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창의논리상을 받은 장윤(12) 양은 “내 최애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는 게 싫다”면서도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 떨리고 행복하다”라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졸업하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수정(39) 씨는 “워낙 학교가 가족같은 분위기였어서 내가 다 아쉽고 서운하다”면서 “그동안 아이가 학교 생활 행복하게 하는 것 보면서 나 또한 많이 행복했다”라고 했다. 박복희(42) 씨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면서 “딸 아이에게 ‘수고했다. 너가 가는 모든 길을 응원한다’고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딸의 졸업장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던 박주영(40) 씨는 “순간 우리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컸구나 싶었다”라면서 “아이가 학교를 정말 신나게, 열심히 다녔다. 이곳에서 아이가 보낸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 감격스럽다”라고 했다.
강당에는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성인진 교장은 “훌륭한 전통이 있는 학교에서 졸업하는 여러분은 모두 특별한 존재”라면서 졸업을 축하하는 동시에 “졸업장을 받았으니 이제 더이상 어린이날 선물을 받을 필요 없다”는 농담도 했다.
그러자 앉아있던 6학년 한 학생은 ‘졸업장을 반납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성인진 교장이 ‘가족들과 상의된 내용이냐’며 물었고 손을 든 학생의 학부모는 고개를 내저었다. “결혼식 이후로 한복 입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라는 정근식 교육감의 말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졸업식은 이후에도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5학년 학생들이 선배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를 개사해 부르기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1학년 학생들이 양손에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 졸업생들에게 나눠주는 ‘꽃 전달식’, 졸업생들의 지난 1년 생활을 담은 영상을 관람하는 ‘졸업스케치 시간’, 졸업생들이 6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깜짝 이벤트’ 등이 마련됐다.
1시간이 넘는 한복 졸업식은 학생·학부모·교직원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킨 채 화기애애함 속에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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