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본 사용후핵연료…100년의 계획 필요

파리·뷔르(프랑스),취리히(스위스)=박재범 경제부장 2025. 1. 12. 06: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0년 로드맵' 원전강국의 조건]④프랑스 등 유럽 사례로 본 사용후핵연료
[편집자주] 무탄소 시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원전)이 다시 주목받는다. 에너지 안보와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도 원전의 중요도가 높아진다. 우리나라는 '수주·건설-운영·관리-사용후핵연료-해체' 등 원전 전(全)주기의 경쟁력을 보유해 전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이 전주기는 통상 10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오랜시간 철저히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야한다. 원전강국의 조건은 바로 이 축적의 시간이다. 머니투데이가 원전 전 주기를 통해 원전강국으로 가는 로드맵을 살펴본다.

프랑스 뷔르에 위치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 현장. 프랑스는 해당 지역에 '시제오(Cigeo)'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인류는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택했고 원자력은 에너지 그 이상의 선물을 줬다. 그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원자력은 발전과 동시에 중대한 숙제를 남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몸을 태운 원자력의 유해이자 관리해야 할 유산이다. 인류는 이땅에서 수백~수천년을 그 유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마냥 넋 놓고 기다린다고, 세월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연구와 기술 개발, 안전한 시설, 사회적 합의 등 긴호흡 속 철저한 준비가 절실하다. 아직 첫발조차 떼지 못한 우리나라에게 원전 선진국의 행보는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의 선도적 국가이자 각국만의 접근법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가고 있다.

#프랑스의 초록 들판을 달려 휑한 곳에 다다른다. 프랑스 파리 동쪽 230㎞에 위치한 작은 마을 뷔르(Bure). 단층 건물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조용한 시골 구석에 위치한 곤충 또는 식물 연구소 느낌이다. 경계도 생각보다 삼엄하지 않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방문 과정에 비하면 사실상 무사통과다.

아주 간단한 안전 교육 후 현장 방문이다. 아무리 지하 공사판이라지만 밖에서 확인 불가라는 게 신기하다. 지상은 초원 그 자체다. 원통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지하 500m. 지상 높이라면 무서울텐데 땅 속이니 감도 없다. 펼쳐진 풍경은 잘 짜여진 지하 미로다. 언뜻 지하철 건설 현장처럼 보이는데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프랑스 방사성폐기물 관리청(ANDRA) 주도로 진행중인 '시제오(Cigeo)' 프로젝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적으로 매립하기 위한 시설 건설 계획이다. 100년 이상 에너지 걱정, 안전 걱정 없이 살도록 하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야심과 국민들의 포부가 함께 담겨 있다. 지하에 도착하자, 점토층으로 이루어진 터널이 끝없이 펼쳐졌다.

가로 5㎞×세로 3㎞ 규모의 시설 건설이 마무리되면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보관 장소가 될 터널들이다. 점토는 물과 방사성 물질의 이동을 거의 차단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곳이 고준위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이유다. 작업 환경은 조용하고 질서 정연했지만 그 속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과 노력이 응축돼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작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쉼 없이 움직였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터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 보장의 출발점이었다.

장프랑수아 현장 건설 관계자는 "이곳은 최소 10만 년 이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100년간의 모니터링 후 시설이 영구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아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필수적이다. Cigeo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기술적 성과의 결정체"라고 강조했다.

니콜라스 안드라 국제협력책임담당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 스위스에서 접한 분위기는 또 다르다. 원전이 전체 전략 생산의 38%를 담당할 만큼 스위스에서 원자력은 핵심에너지원이다. 스위스는 50년전부터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준비해왔다. 원전을 고민하면서 모두가 건설에만 주목할 때 폐기물 처리까지 염두에 뒀다는 의미다. 실제 1969년 원전의 상업 운영 가동 직후 1972년 방사성폐기물관리기관인 나그라(NAGRA)를 출범시키며 방폐장 건설 준비를 해왔다.

50년의 발걸음은 축적의 시간이다. 기술적으로는 지질학적 안정성을 연구한다. 나그라는 지질학적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광범위한 현장 조사와 파일럿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상적 지질 환경을 찾아냈다. 적합한 환경과 부지를 찾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스위스는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동시에 추구했다.

패트릭 슈태더 나그라 공공수용성 담당 이사는 "스위스는 기술적 완벽성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며 "장기적 안전성은 과학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뒷받침된다"고 강조했다. 50년의 과정을 보면 지역사회와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쌓여 있다. 스위스의 부지 선정 과정이 좋은 예다. 수십 년간의 지질학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취리히 인근 지역이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고 400회 이상의 공청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 국민은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결정의 주체가 됐다. 기술은 안전성을 제공하고 신뢰는 이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는 게 나그라의 설명이다.

#언뜻 프랑스와 스위스의 방식은 달라 보인다. 프랑스는 정부 주도로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과감함이 두드러진다. 뷔르 현장이 좋은 상징이다. 스위스는 과학적 연구와 함께 주민과 신뢰가 강조된다. 다만 실제론 큰 차이가 없다. 두 나라 모두 방사성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중심에 두는 게 '소통'이다. 과학적 기술과 연구 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신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시작 단계, 아니 그 이전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한다.

또하나 가장 중심에 둔 게 바로 '안전한 미래'다. 양국 관계자들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현재를 넘어 미래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짧게는 100년 후 세대에게 넘겨주는 '유해'이자 '유산'에 대한 과학과 기술, 합의와 비전 등을 담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 부지 선정을 끝낸 고준위방폐장이 실제 건설된 뒤 그들은 은퇴할 게 뻔하지만 곳곳에 미래를 위한 고민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파리·뷔르(프랑스),취리히(스위스)=박재범 경제부장 swallow@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