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듯한 병사들의 표정...그 안에서 작가의 삶도 숨쉰다 [퇴근 후 방구석 공방]

이승환 기자(presslee@mk.co.kr) 2025. 1. 1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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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방구석 공방- 83화 ‘원영진(Young Won) 디오라마 작가’]

“3년 전에 완성한 ‘Calm Ripples’라는 작품입니다. 월남전 당시 미군 제9보병사단 병사들이 하천을 건너는 사진을 보게 됐는데 ‘왜 외나무다리를 두고 하천으로 건너는 병사들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죠. 많은 인원이 짧은 시간 안에 건너는 것은 좁은 다리에 병사들이 밀집돼 적의 표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요. 전술적 판단과 생존 본능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Calm Ripples’ 1/35 scale, built in 2021
“정말 공을 들여 제작했고 완성해 SNS에 올렸는데 얼마 후 위생병으로 작전에 투입됐던 사진 속 실제 인물인 ‘Kerry Lee Pardue’씨가 연락해 왔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고 모형으로 만들어 기억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어요. 월남전에 관한 책을 쓰셨는데 표지사진이라고 하더군요.”
월남전 당시 미군 제9보병사단이 하천을 건너는 사진
‘Young Won, you did a wonderful job on the model. This photo is of the Scouts on patrol near Bihn Phouc. I was the medic in the water second from the end with my M-16 up.

’영원, 정말 멋진 모델 작업이네요. 이 사진은 ‘비엔푸크’ 근처에서 순찰하는 정찰대의 사진입니다. 나는 물 속에서 두 번째에 M-16을 들고 있는 의무병이었어요.’

‘Kerry Lee Pardue’씨가 보내온 당시 사진들
“사진의 물속에 우측의 두번째 사람이 본인이라며 당시 사진들도 몇장 더 보여주더라고요. 오랜 모형 생활 중 참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어요.”
모델러들의 롤모델, ‘원영진’ 디오라마 작가
대한민국에 모형 취미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80~90년대, 그리고 98년, 모델러들에게 바이블이 될 한 권의 책이 출판됩니다. ‘BATTLEFIELD 원영진 디오라마 작품집’ 정교한 페인팅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원영진’이라는 이름은 곧 디오라마의 정수로 자리 잡게 됩니다.
BattleField 원영진 디오라마 작품집
많은 모델러들의 모형 가치관이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영진 작가는 아티스트를 넘어, 한 세대의 모델러들에게 꿈과 영감을 심어준 존재였습니다.
한걸음씩 커리어를 쌓아간다는 것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어요. 대학생이었던 사촌 형과 처음 모형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어린 시절 취미로 시작된 일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청년 시절에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취미로 돌아와서 제가 만들고 싶은 것들만 만들고 있지요. 50여년 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좋아하는 일’이 ‘모델링’이었다는 건 저한텐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미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꾸준히 쌓아 올린 경험과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로 단단한 기반이 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자신만의 길이 선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No way out!’ 1/35 scale, in 2021
“94년부터 Resin Figures회사인 ‘Jaguar’와 ‘Warriors’사의 박스아트 작례 작업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96년에 Verlinden사에서 발행되는 모형잡지 독자투고란에 몇몇 제 작품 사진을 보내봤어요. 그런데 잡지사에서 그 사진들을 독자투고란이 아닌 ‘Modelers in Focus’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줬고 그걸 시작으로 제 작품 기사를 기고하게 되는 인연을 맺었죠.”
Modelers in Focus에 소개된 ‘JOCKEYS’
“그걸 시작으로 98년부터 2010년까지 Verlinden사의 1/35스케일 인형의 모든 박스아트를 페인팅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Resin Figures로 유명했던 세 회사의 박스아트를 몇 년간 동시에 페인팅할 수 있었습니다. 약 900개정도 작업했습니다. 당시 좋은 페인터들이 많았는데 제가 운이 좋았죠.”
비넷 작품들
“구매자가 박스아트의 정확한 묘사를 설명서로 삼아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거죠. 현재의 페이팅 기준으로 보면 인형들의 완성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초창기 2, 3개월이면 완성하던 작품을 지금은 1년을 공을 들이고 있어요. 모델러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그만큼 더 디테일에 신경을 써가며 작업을 해야 수준을 맞출 수 있게 된거죠. 전체적으로 모형의 수준이 정말 높아졌어요.”
스토리, 디테일, 역사적 고증
‘Sunday morning’ 1/35 scale, Built in 2021
“‘어떤 장면을 만들까?’라는 고민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2차세계대전, 베트남전에 관한 작품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대개 관련 장비와 탈 것들이 등장하게 되죠. 저도 이런 류의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좀 다른 주제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주일 아침 전장에서 예배하는 모습, 추락한 헬기를 수색하는 장면, 베트공과 월맹군의 수상 이동 장면 등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다양한 상황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Calm Ripples 2’ ​1/35 scale, in 2021
“디오라마 제작에 있어서 디테일, 스토리, 역사적 고증 모두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잘 표현되어야 좋은 작품이 완성되지요. 저는 그중에서 스토리, 디테일, 고증 순으로 중요도를 얘기하고 싶네요.”
‘Another Enemy’ 1/35 scale, Built in 2003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 ‘Another Enemy‘라고 악어가 등장하는 작품이 있는데 기획 당시 베트남 하천에 악어가 서식하였는지가 확인이 안되더라구요. 베트남 모델러 친구에게 확인한 후 제작했죠. 단순히 전투나 승리의 순간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더 가고 있어요.“
‘U.S. Soldier’ 1/35 scale, enamel paint
“작품의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찾아 공부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고증 부분에 있어서 실수하는 부분들이 나오고 완성 후에도 수정하기도 해요. 저는 인형 중심의 작품들을 주로 만드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의 인형들을 장면에 맞게 개조하는 부분이예요.“
Resin Figure 비넷 작품들
“원하는 표정의 제품을 찾기도 하는데 대부분 마땅한 헤드가 없어 퍼티를 이용해 조형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페인팅할 때 원하는 표정을 강조하기도 하구요. 포즈도 마찬가지구요. 또 재료를 직접 해결해야 되는경우가 많아요. 풀, 나무껍질 등을 채취해 건조 후 손질을 하기도 하구요. 나무를 예로 들면 채취해 말린 드라이플라워 등을 재단해 나무 모양을 만들기도 하구요. 야자나무나 바나나나무 등은 종이와 철사 등으로 만들어 사용하는데 무엇보다 실물처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런 것 하나하나가 쌓이다 보면 남들 과는 조금 더 다른 작품들이 나오는 것 같네요.”
‘THE BURIAL’ 1/35 scale, built in 2011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해 좋은 효과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2,30년 전에는 전차의 먼지, 흙 웨더링은 에어브러시와 페인팅으로 마무리하였었는데 실제 흙과 잘게 자른 나뭇잎 등 식물을 락카와 혼합해 전차 하부와 휠에 발라주었습니다. 당시엔 과하다고 말들을 했지만 현재는 보편화된 방법으로 알려져 있죠.”
독일 기마병 프로젝트, 안장과 고삐 등은 모두 독일군 형식으로 고쳐주었습니다. 1/35 scale
새로운 트랜드에 따라 배움은 끝이 없다.
‘U.S. Soldier’ 1/35 scale
“완성의 기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요. 저는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고 생각 될 때, 더 이상 내 실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를 완성의 기준으로 잡습니다. 완성 후에 새로운 스킬을 배우게 되면 수정을 하기도 해요.”
‘GAMES OF THE WAR’ 1/35 Scale, in 2006
“제 세대의 모델러들은 유화나 에나멜로 페인팅을 시작하였는데 현재 모형계는 아크릴수성페인트가 주로 사용되고 완성 후 효과도 좋더라구요. 한동안 페인팅 방법을 새롭게 바꾸는 일에 주저하였는데 더 늦출 수 없을 것 같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기법들이 나오면 배워야죠. 아직도 배울게 많습니다.”
‘FOR OUR IDEOLOGIES’ 1/35 Scale, in 2005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면서 밀리터리 모형에 대한 고증에 대한 평가들이 너무 지나친게 진입장벽을 막는 이유가 될 수 도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선보이면 고증이 이렇네 저렇네 평가하는 댓글들이 참 많죠. 모든 작품이 대회에 나가 순위를 겨뤄야 되는게 아니잖아요. 취미는 재밌어야 합니다. 같은 취미를 하는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전차를 분홍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하면 어떻습니까.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어서 그 시간만큼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으면 됩니다.“
원영진 작가의 작업실
“취미로 시작한 모델링이 어느 순간 직업이 되기도 했습니다. 꿈을 이룬다는 말, 흔히 성공과 연결되곤 하죠. 제게는 이 모델링이 바로 그런 꿈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나만의 세계를 내가 만들어 나간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물론 경쟁의 단계로 들어서면 압박감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게 되고, 결국 제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지난 10월 열린 ‘2024 WMMF’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고국을 방문한 원영진 작가
“제가 가진 작은 꿈들을 하나씩 완성하고, 또 새로운 꿈을 꾸며 그것을 이루는 일이 제 삶의 큰 기쁨이에요. 그 순간마다 저는 만족과 행복을 누립니다. 제게 모델링은 단순한 취미나 일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꿈을 이뤄가는 특별한 경험이자 저만의 성공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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