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무서웠던 엄마’의 육아 좌절…문제는 너무 높은 자기이상 [.txt]
불안정했던 엄마가 몸에 새긴 주눅
눈치 보는 아이에게 비친 ‘어린 나’
나의 한계 인정해야 자기 비난 멈춰
저는 다섯살 된 딸아이와 두돌을 막 지난 아들의 엄마입니다. 사실 저는 엄마가 되는 것이 매우 두려웠습니다. 저희 엄마는 불안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습니다. 엄마가 무서워서 준비물이 있다는 말을 차마 못 하다가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어렵게 입을 뗐을 때 매서운 발길질이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모범생으로 살다가 고등학교 때 딱 한번 반항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라는 말을 거부하고 데이트를 나갔던 날, 엄마는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목숨을 끊으려 약을 먹은 겁니다.
엄마는 의식을 찾았지만 그 후로 저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삶을 살았습니다. 더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화나게 하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의 몸에 뭔가를 각인시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까지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인내심과 사랑이 많은 좋은 엄마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달라졌습니다. 첫째는 동생이 자기를 방해하면 동생을 울려버립니다. 동생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설명해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화가 납니다. 며칠 전에는 큰애를 붙잡고 왜 이렇게 욕심이 많고 엄마를 힘들게 하냐며 소리치고 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첫째가 요즘 제 눈치를 많이 봅니다. 그 표정이 제 어렸을 때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당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결국 저처럼 주눅 들게 하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이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매일 제 바닥을 보면서 무너집니다. 이지영(가명, 35)
임신 때 입덧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이 제일 편하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고역스러운 울렁거림이 시작될 때면 괜히 임신했다는 후회가 몰려왔고, 그 후회는 어김없이 엄마의 첫번째 관문인 입덧도 견디지 못하는 저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임신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습니다. 거기서 설명하길, 입덧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설 중 하나가 엄마의 본능적인 면역 반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체가 태아를 해로운 침입자로 인식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입덧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취약한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입덧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제 생각과 정반대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 설명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엄마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가진 생명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신의 피와 살을 양분으로 삼는 태아를 낯선 침입자로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제 믿음이 모체의 이기성을 부인하고 숭고한 모성만 취하고 싶어 하는 자기애적 환상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애를 모성으로 포장하는 일이 임신 초기부터 제 마음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부모의 자기애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은 흔합니다. 대학에 가지 못한 한을 품고 있는 부모님이 헌신적으로 자식의 학업을 뒷바라지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학력에 따른 차별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 자식이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애정과 더불어 자신의 설움을 자식이 씻어주길 바라는 자기애가 뒤섞여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널리 알려지면서 자기애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됐지만 자기애는 스펙트럼이 넓은 개념입니다. 한쪽 극단에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자신의 욕구에만 매몰되어 타인을 착취하고 그것이 방해받을 때 적대감을 드러내는 병리적 자기애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스스로 가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목표와 이상을 추구하면서 자기를 실현하고 이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는 건강한 자기애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중간을 왔다 갔다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영님의 마음속에도 좋은 엄마가 됨으로써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고, 주눅 들지 않는 딸의 모습을 보며 죽은 채 살았던 지영님의 지난날을 다시 꽃피우고 싶은 자기애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기애 없이는 자녀에게 헌신적인 애정을 쏟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자기애적 이상이 지나치게 높고 경직되어 있을수록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예컨대 지영님이 품은 엄마로서의 높은 자기이상은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영님을 어릴 적 엄마보다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지영님의 자기이상을 함께 실현해줄 때는, 즉 ‘좋은 엄마’라는 느낌이 들 때는 일치감에 가까운 사랑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지영님의 자기실현을 훼방하는 존재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자기이상이 꽉 들어차 있는 나와 타인 모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속에 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다큐멘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체와 태아 사이에 화해가 일어나 입덧이 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자기애와 자식 간의 화해는 시간이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부모 마음 안에서 먼저 자기이상과 실제 자기 사이에 화해가 일어나야 가능합니다. 때로는 작은 것에도 화가 나고 불안정해지는 모습도 나의 한 부분이자 한계로 인정할 수 있어야 나를 향한 비난과 방어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이상에서 한숨 놓여나야 딸 역시 ‘나를 나쁜 엄마로 만드는 딸’이 아니라 그저 아직 동생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다섯살 아이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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