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 등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관 잠겼다…유럽의 위기일까 기회일까

이지온 유럽 통신원 2025. 1.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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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통과하는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의존도 높은 동유럽 ‘비상’
가스값 고공행진으로 동서 갈등 고조…LNG 공급 확대 기회에 미국은 ‘미소’

(시사저널=이지온 유럽 통신원)

2024년 1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천연가스 운송 계약이 종료되면서 유럽 에너지 시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2019년 말 체결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유럽행 가스 운송 계약은 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연합(EU)의 중재로 이루어졌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정치적 긴장에도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조치로 평가받았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과 러시아 간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우려 사항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맥락에서 체결된 2019년 계약은 유럽이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의 위기를 피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안으로 평가됐다. 당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유럽은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한 공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EU와 미국의 압박 속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5년간의 가스 운송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은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Gazprom)이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도록 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이를 통해 연간 약 30억 달러의 수송 수익을 확보해 왔다.

러시아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스프롬의 파이프 ⓒEPA 연합

유럽 가스 공급량 약 10% 감소 전망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양국 간 정치적·경제적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산 가스의 유럽 운송을 중단함으로써 러시아에 경제적 타격을 가하고자 했고, 러시아 역시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또 한 번 전략적 무기로 활용해 왔다. 가스프롬은 2022년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량을 전년 대비 50% 이상 축소했으며, 이는 유럽 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가스프롬은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1과 2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려 했으나, 노르트 스트림 2는 미국과 EU의 제재로 가동되지 못했고, 노르트 스트림 1은 2022년 9월 발생한 파이프라인 폭발 사건으로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유럽 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게 되는 한편, EU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5% 감축하겠다는 'Fit for 55' 정책 아래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의 장기 가스 계약은 EU의 정책 방향과 충돌하게 되었으며,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국은 계약 갱신을 거부했다.

이번에 러시아 가스관을 완전히 잠그면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가스 수출을 위한 다리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결정이 아니라 우리의 주권과 안보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계약 종료로 인해 유럽의 가스 공급량이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EU 내부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났다.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을 환영했지만,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겨울철 에너지 수급 문제에 비상이 걸렸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이번 결정은 헝가리와 중부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각에선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에 미국이 웃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이 유럽에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확대할 기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 제니퍼 그랜홈은 "미국은 유럽의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파트너로,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연합과 협력해 러시아산 가스 대체 공급을 강화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과 대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럽은 미국의 가스와 석유를 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아 자하로바는 "유럽이 미국산 LNG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고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EU는 이번 공급 중단에 대비해 이미 대체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유럽은 LNG 터미널의 처리 용량을 약 30% 확장했고, 노르웨이와 알제리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을 각각 25%와 20% 늘렸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본부 뒤에 있는 주유소에 가스 가격이 표시돼 있다. ⓒAP 연합

EU 정책 향방도 주목

특히 유럽 천연가스 시장의 주요 벤치마크인 천연가스 선물시장(TTF) 가격은 계약 종료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만에 약 15% 상승했다.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유럽의 GDP가 약 0.3% 감소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제조업 중심 국가들에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일의 경우 산업계는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특히 화학, 철강,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영향을 덜 받았으나, 유럽 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계 전기요금이 20% 이상 올랐으며, 이는 현 마크롱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 영향을 끼쳤다.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회원국 간 이견이 뚜렷했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재정적 지원 부족과 에너지 인프라 격차로 인해 서유럽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갈등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며 우크라이나 지원 및 러시아 에너지 안보 위기와 겹치며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부터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EU 이사회 상임국이 교체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헝가리는 친러 성향으로 인해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보였으나, 폴란드는 강력한 친우크라이나 및 친EU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EU의 에너지 및 외교 정책은 보다 러시아 견제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최근 "유럽은 에너지 독립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유럽 간 가스 계약 만료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는 복합적 이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독립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향후 EU의 에너지 정책과 새 트럼프 행정부 아래 국제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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