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두 시간 초등학교 가는 길 [전국 인사이드]

김보현 2025. 1. 1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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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16일 메일함에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이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는 처음입니다만, 면 단위 농촌에서 초등학생 셋을 키우는 학부모로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간청드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씁니다." 대구시의 거점학교 정책 추진으로 아이들이 다니는 고매초등학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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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17일 경북대 앞에서 군위군 학교 통폐합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스민 제공

2024년 8월16일 메일함에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이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는 처음입니다만, 면 단위 농촌에서 초등학생 셋을 키우는 학부모로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간청드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씁니다.” 대구시의 거점학교 정책 추진으로 아이들이 다니는 고매초등학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늘어져 있던 몸을 고쳐 앉았다.

면적은 서울과 비슷한데 인구는 2만3000명밖에 되지 않는 소멸위기 지역, 군위는 원래 ‘경북 군위군’이었다. 지난해 7월 통합신공항 건설의 전제 조건으로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대구 군위군’이 됐다. 관할 교육청도 경북에서 대구로 바뀌었다. 대구시교육청은 초등학교 통학구역 조정부터 시작했다. 분교 한 개를 포함한 군위군 내 8개 초등학교의 기존 통학구역을 조정해, 학생이 가장 많은 군위초등학교로 전학이나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연다는 계획이다. 조정이 시작되면 소규모 학교는 휴교 가능성이 높아질 게 자명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이런 사실을 여름방학 중 갑자기 통보했다. 작은 학교나 가까운 학교를 선호하는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반발이 나왔다.

대구시교육청은 군위에 군위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하나씩만 남기는 방향으로 가는 대신, ‘IB학교(국제 바칼로레아 교육)’로 지정해 국제적 수준의 교육환경으로 만들겠다고 달랬다. 통학버스와 택시를 운영해 불편함이 없게 하겠다고도 했다. 반대하는 학부모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 ‘군위 작은학교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일방적인 정책 추진과 전학으로 인한 부작용을 짚는 목소리에도, 대구시교육청은 2024년 10월7일 통학구역 확대 운영을 강행했다. 그러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지 않을 경우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무언의 압박이 시작됐다. 학교는 개별 면담에 들어갔고 학부모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전교생 열 명 안팎의 학교는 한두 집만 전학을 결정해도 타격이 컸다. 2024년 11월7일 대구시교육청은 우보초 전교생 네 명이 ‘지역 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군위초 전학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재학생이 없어진 우보초는 휴교 조치됐지만 이곳에 앞으로 학생이 들어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대구시교육청은 적정 규모 학교를 유지하는 게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으며, 단지 군위초를 선택하고 싶은 학부모도 있어서 선택권을 확장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의 미래도 사라진다

가만히 둬도 농촌의 학교는 서서히 사라진다. 군위의 작은 학교들은 부러 없애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중이었다. 도시 중심적 발상에 익숙한 대구시교육청은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의 미래도 없어진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작은 마을일수록 사람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모인다. 학교가 없어진 마을엔 더 이상 젊은 사람이 이사 오지 않고, 돌봄‧경비‧급식 등 학교가 만든 일자리도 사라진다. 경북도교육청의 학교 통폐합 기준은 ‘전교생 15명 이하 학교 중 학부모가 원할 때’이다. 군위가 경북도교육청 관할일 땐 하지 않던 걱정을 이제 학부모와 학생들은 매 순간 하고 있다.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집에서 군위초등학교까지는 왕복 2시간이 넘습니다. 막내가 이제 겨우 1학년인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제가 곧바로 가볼 수 없습니다. 군위읍에 가는 버스는 하루 5대 운행합니다.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랐으면 해서 군위에 왔습니다. 학교가 있어서 이 마을로 왔고요. 얼마 전에는 전교생 19명이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습니다. 폭죽놀이를 하고 고기도 구워 먹었어요. 이런 순간들을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군위의 작은 학교들은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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