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홍삼’, 덕분에 살아남았지 [임보 일기]

남형도 2025. 1. 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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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25일, 죽음이 예정된 생명이 있었다.

꼬물이를 살린 이들은 강아지에게 '홍삼이'란 이름도 지어주었다.

홍삼이를 포근한 집으로 맞아줄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해 12월24일 소은씨는 우연히 SNS에서 홍삼이 사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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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입양 전 꼬물이 시절 홍삼이의 모습. 홍삼이는 홍역을 앓고도 살아남았다. ⓒ남형도 제공

2020년 12월25일, 죽음이 예정된 생명이 있었다. 황토색 작은 강아지의 몸에 주삿바늘이 꽂힐 예정이었다. 이윽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는 차갑게 식을 거였다. 강아지 꼬물이가 처음 눈떠 빛을 본 곳은 그해 가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길바닥이었다. 엄마 개와 함께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살겠다고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 젖을 물었다. 이를 애달프게 바라본 행인의 온정으로 신고돼 시 보호소로, 다시 위탁 병원으로 옮겨졌다.

어렵게 구조됐으나 새끼 때 걸리면 90%가 죽는다는 ‘홍역’에 이미 걸려 있었다. 꼬물이는 자그마한 몸으로 독한 약물과 주사를 다 참아냈다. 매일 신음하며 죽음과 싸우고 싸워 기적을 만들었다. 그간 얼마나 고생 많았느냐고, 그리 따뜻하게 말해주며 안아줄 가족만 만나면 되었다. 꼬물이를 살린 이들은 강아지에게 ‘홍삼이’란 이름도 지어주었다. “홍삼아, 홍삼아” 부르면 어쩐지 건강하게 잘 살 것 같아서 붙여준 거였다.

야속하고 고달픈 생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홍삼이를 포근한 집으로 맞아줄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위탁 병원에는 녀석처럼 버려진 강아지가 이미 28마리나 더 있었다.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가까스로 10% 확률에 속해 살아났는데, 다시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홍삼이는 안락사 대상에 올랐다. 병마와 강인하게 싸워서 이긴 강아지도 이번엔 별수 없었다.

그해 12월24일 소은씨는 우연히 SNS에서 홍삼이 사진을 봤다. 입양을 부탁하는 공고에 빨간 글씨로 ‘내일 안락사 확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노란 옷을 입은 홍삼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은씨는 맘이 저렸다. 어떤 감정이 떠올랐는지 묻자 그가 이리 답했다. “홍삼이가 너무나 힘겹게 아픈 병을 이겨냈는데, 살 기회도 못 얻고 또 죽어야 한다는 게 정말 속상했어요. 당시 임신 중이라 주위 반대도 많았는데요.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어요.”

바라보았고 마음이 갔고 만나러 갔다. 홍삼이에게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은, 오롯이 소은씨로 인해 다시 시작되었다. 소은씨는 홍삼이의 첫인상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마냥 해맑았다”라며 웃었다. 홍삼이는 소은씨의 어린 딸과도 정말 잘 지낸다. 이렇게 순하고 똑똑한 개는 처음 봤다고 했다. 봄에는 함께 진달래꽃을 보았고, 여름에는 같이 푸른 숲을 뛰었다. 소소하지만 짙은 행복이, 일상에 틈틈이 스몄다. 홍삼이를 찍은 사진은 웃는 모습이 유독 많다.

소은씨가 '홍삼이'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남형도 제공
홍삼이는 살아남아 가족을 만났고, 세상의 모든 계절을 즐기고 있다. ⓒ남형도 제공

소은씨가 신기해하는 홍삼이의 모습은 따로 있다. 친정 엄마와 동생이 가끔 집에 오는데, 홍삼이는 다른 사람보다 유독 반기고 좋아한다. 소은씨는 짐작이 가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홍삼이가 안락사를 하루 앞둔 날, 병원에 처음 갔을 때 엄마와 동생도 함께 있었거든요. 그걸 기억하나 봐요.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요.”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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