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日 열도까지 뒤흔든 두만강 다이아몬드 발견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5. 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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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일당 30전받던 견습공 출신 박동길, 東北제대 졸업 후 1935년 발견
1935년 초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가 나왔다. 경성고등공업학교 박동길 교수가 천연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두만강변 모래에서 채취한 원석이었다. 극동에선 다이아몬드가 나올 수없다는 일본 학계의 통설을 깬 획기적 발견이었다. 박동길은 단숨에 스타과학자로 떠올랐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1935년 2월 놀라운 소식이 나왔다. 조선엔 없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 다아아몬드 원석이 두만강에서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부산 송본(松本)농원주 송본굉일랑(松本宏一郞)씨가 약 1주일전 간도에 갔다오는 도중 두만강 상류에서 사금을 조사키 위하여 동(同)강안을 정밀히 조사하던 중 약 3밀리가량(쌀알만한 것)의 백색의 돌 7개와 콩알만한 새빨간 돌 13개를 발견하였다. 붉은 것은 석류석으로 판명되었으나 흰 돌은 무엇인지 알 수없어 경성고등공업 광산과 광물지질 담임교수 박동길씨에게 감정을 의뢰하였더니 과연 그 정체야말로 동양에서는 아직 발견된 일이 없었던 금강석으로서...’(‘광업조선의 일대약진 천연금강석을 발견’,조선일보 1935년2월3일)

두만강변에서 천연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조선일보 1935년2월3일자 기사.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공대 전신) 교수였던 박동길은 인터뷰에서 ‘동양광업사상 큰 이채’라고 했다.

‘다이아몬드의 원광(原鑛)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처음엔 큰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하였습니다. 학교에는 기계와 약품이 구비치못함으로 총독부 목기(木崎)기사의 원조하에 연구한 결과, 비로소 다이아몬드로 단정한 것입니다. 좌우간 조선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것은 동양광업사상의 큰 이채임으로 이것을 각 대학에 통지할 작정입니다.’

박동길의 천연 다이아몬드 발견은 동아, 조선중앙일보는 물론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도 눈에 띄게 다뤘다. 바다 건너 일본까지 다이아몬드 발견 기사가 일제히 보도될 정도였다. 일본 학계는 극동엔 천연 다이아몬드가 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터라 그의 발견은 더 주목을 받았다.

◇일당 30전 견습공으로 출발

충남 연기군 출신 운암 박동길(1897~1983)은 한국 최초의 지질광물학자였다. 광복후 지질광산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고 1947년 대한지질학회 설립을 이끌어 초대회장을 지냈다. 서울대 교수, 인하공대 명예교수로 후학들을 길렀다. 그의 호를 딴 운암지질학상이 1974년 제정돼 지금까지 운영중이다.

박동길의 도전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진취적 과학자의 삶을 보여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던 그는 열일곱살에야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3년만에 졸업한 후 1917년 기술을 배우겠다며 오사카로 떠났다. 여비 15원을 빌려 떠난 길이었다.

오사카시청 상공과 소개로 오사카 도요(東洋)방적회사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하루 12시간 주야 2교대 근무에 일당 30전의 고된 노동이었다. 이듬해 간사이상공학교 야간부에 등록해 공부를 계속하려 하자 직장과 야간부 동료 모두 조센징 직공주제에 건방지다며 괴롭혔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요즘 유행어로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상징이었다.

1928년 도호쿠대 조선인 유학생들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 세번째가 신의경, 네번째가 박동길이다. /신의경 가족 제공

◇서른에 도호쿠제대 입학

취업을 알선해준 오사카 시청 상공과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사카 시립공업연구소 잡역부로 일자리를 옮기고, 학교도 오사카 공업전수학교(중등부 응용화학과)로 옮기는데 도움을 줬다. 삶의 단계마다 그의 노력과 재능을 주목한 이들이 도왔다. 공업전수학교 교사는 그를 눈여겨봤고, 오사카 고등공업학교(오사카대 전신)에 지원하도록 격려했다. 1922년 합격하자 조선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도록 주선해줬다. 1925년 3년과정의 응용화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오사카 고에이(廣榮)제약회사 연구실에 취직했다.

웬만하면 여기서 멈출 법했다. 그는 계속 도전했다. 오사카고공 은사들의 권유대로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먼저 제국대학 졸업생, 재학생 명부를 조사한 뒤 조선인들이 손대지않은 지질광물학 분야를 골랐다.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東北)제대에 응시했다. 도호쿠대는 도쿄대, 교토대에 이어 1907년 일본에서 세번째로 개교한 제국대학이다. 1927년 서른 나이에 도호쿠제대 이학부 암석광물광상학교실에 7명 중 하나로 합격했다. 견습공으로 시작, 10년만에 이룩한 눈부신 성과였다.

도호쿠제대 재학중인 1929년 약혼 기념으로 촬영한 박동길, 신의경. 1928년 12월 유학생모임에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신의경 가족 제공

◇첫 제대유학생 신의경과 결혼

박동길은 예전에 ‘모던 경성’에서 얼핏 소개한 적 있다. 첫 제국대학 졸업생인 신의경을 다루면서다.(’제국대학 첫 여성 유학생 신의경의 대담한 도전’, 2022년12월3일) 박동길은 같은 해 도호쿠대 법문학부에 입학한 신의경과 만났다. 유학 초기 고독으로 힘들어했던 신의경은 2학년 말 유학생 송년회에서 한 살 연상인 박동길을 만나 평생 배필이 됐다. 둘은 귀국 후인 1931년 6월 연지동 하마련 선교사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엘리트 지식인의 만혼(晩婚)이었다.

◇화학과 지질학 결합한 새 영역 개척

1930년 12월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조교수가 됐고, 1939년 경성고공을 흡수한 경성광산전문학교 교수로 후학을 가르쳤다. 경성고공을 졸업한 유명인사로는 1929년 건축과를 나온 시인 이상이 있다. 경성고공은 일본인 학생이 다수였다. 박동길은 보성, 연희, 수원고농으로 강의를 나가 조선인 학생을 가르쳤다.

연구 업적도 잇따라 발표했다. 1938년 코발트광을 화학적으로 검정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1940년 황해도에서 알칼리 장석 광상을 발견했다. 1938년 일본지질학회 특별회원, 1942년 문부성 일본학술진흥회 연구원으로 발탁됐다. 화학과 지질학을 결합, 광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고 처리하는 새로운 전문 영역을 개척했다. 동시대 선도적 일본 연구자에 비해서도 우수한 경쟁력을 갖췄다.

1959년 7월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은 박동길 교수(아래 사진 오른쪽에서 첫번째). "제자 양성에 더욱 힘써 후진들의 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답사했다. 조선일보 1959년7월18일자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

광복후 지질광산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내면서 산업이 낙후한 한국은 지하자원 개발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을 비롯 흑연, 중석 개발을 꼽았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유학생을 파견하고, 과학서적을 널리 보급해 과학의 대중화를 이뤄야한다고 주장했다. 1952년 서울대 공대 채광학과 교수로 들어갔고, 1954년부터 인하공대 교수를 겸직했다. 1959년 원자력원 발족으로 원자력위원에 선임되면서 서울대 교수직을 내놓았다.1960년 대한민국 학술원 종신회원이 됐고, 이듬해부터 학술원 자연과학부장을, 1974년부터는 학술원 부회장을 맡았다.

그의 문하에서 성장한 후학들이 지질학계와 광물학계를 비롯 관련 산업 분야에서 중추적 기둥이 됐다. 사후 37년이 지난 2020년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됐다. 한림원 과학기술유공자센터는 “후진 양성과 학술 공동체형성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각종 지하자원 연구와 개발로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한 한국 지질학과 광물학의 개척자”로 평가했다.

◇김대진 한예종 총장이 외손자

박동길·신의경 부부의 딸 박문희(94)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 총재를 지냈다. 남편 김상찬은 상업은행장을 지낸 금융계 원로로 2022년 9월 타계했다. 박문희·김상찬 부부는 2남을 뒀다. 둘째 아들 김대진(63)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손열음 김선욱 등 클래식 스타를 길러낸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다.

◇참고자료

김근배 이은경 선유정 편저,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세로, 2024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편, ‘한국 지질광물학의 보석’, 故 박동길,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공훈록 3,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20

한국연구재단, 한국 학술연구 100년과 미래 : 과학기술분야 연구사 및 우수 과학자의 조사 연구. 제3부, 과학기술 인명사전, 한국연구재단,2012

대한민국학술원, 앞서 가신 회원의 발자취, 대한민국학술원, 2004

김기철,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시공사, 2023

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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