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윤석열, 이젠 제발 포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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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향한 질책, 격려와 성원을 모두 마음에 품고,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해 12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밝힌 입장문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이젠 제발 좀 포기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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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향한 질책, 격려와 성원을 모두 마음에 품고,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해 12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밝힌 입장문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이젠 제발 좀 포기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혹 '사법고시 9수'라는, 포기를 모르는 집념의 훈장 때문인가? 법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강권을 뿌리치고 자신이 원했던 심리학을 공부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두세 번 사법고시에서 낙방하면 그 핑계를 대고 검사의 꿈을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그게 훨씬 더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아내인 김건희를 숭배하는 일도 그렇다. 그걸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아내 숭배가 희소해진 각박한 세상에서 오히려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명색이 검사라면 공사(公私)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자신이 역설했던 '공정과 상식'은 준수하면서 아내 숭배를 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공직을 그만두거나 아내 숭배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그의 고집은 '대통령 놀이'에 심취한 철없는 아내의 손을 잡고 불구덩이 속으로 같이 뛰어든 꼴이 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이 모든 게 포기를 몰랐기 때문에 불행이 산더미처럼 쌓여 그를 덮친 게 아닐까? 새삼 포기하지 않는 게 미덕으로 통용되는 우리의 문화나 풍토 자체가 원망스러워진다.
어느 분야에서건 성공 좀 했다는 사람치고 포기를 비판하는 명언을 남기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다. 영화와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는 물론 언론도 포기하지 말라며 사실상 포기를 비판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대중문화와 언론의 주요 양식인데, 이런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성공의 주인공들이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속아 넘어가지 말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는 건 인정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이른바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생존 편향은 생존에 실패한 사람들의 가시성(可視性) 결여로 인해 비교적 가시성이 두드러지는 생존자들의 사례에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편향을 말한다.
자신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증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실은 성공의 결정적 이유는 다른 것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은 걸 강조하는 게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과장된 증언이 섞여들기 마련이다. 실패한 사람은 원래 말이 없는 법이다. 꿈이나 목표를 낮추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인데도 욕심을 부려 망하는 사람이 많다.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이 절대 다수임에도 이들의 증언은 '이야기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는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는 걸 너무 미화하지 말자.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윤석열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2020년대에 수십 년 전 독재정권의 낡은 방식에 매몰된 시대착오성이다. 포기를 모른 채 자신에게 맞지 않는 길로 너무 깊이 들어간 탓이다. 이제라도 윤석열이 자신의 애국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모든 걸 다 홀가분하게 내려놓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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