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박성훈, '현주'라는 새 이름
[Dispatch=박혜진기자] 박성훈을 생각하면 이름보다, 캐릭터가 먼저 떠오른다. 안하무인 전재준(더 글로리), 잔혹한 빌런 유은성(눈물의 여왕)이 그랬다.
드라마가 끝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전재준을 기억한다. 그만큼 강렬했고, 어디에도 없는 그만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박성훈은 2008년부터 2022년까지, 긴 무명 생활을 견뎠다. 이제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필모그래피에 '120번 조현주'라는 특별한 이름 하나를 추가했다.
"예전에는 저라는 배우를 설명하려면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재준'이나, '현주'를 말하면 다들 알아주세요. 배우로서 참 감사한 일입니다."(박성훈)
박성훈이 새 얼굴을 선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트랜스젠더 '현주 언니'를 만났다.
◆ 120번 조현주
황동혁 감독은 KBS-TV 단막극 '희수'(2021) 속 박성훈을 인상 깊게 봤다. 평범한 가장의 모습. 그는 딸 잃은 아빠를 연기했다. 그 모습에서 조현주를 캐치했다.
박성훈은 "놀라웠다. 제가 두 누나 밑에서 자란 외아들이다. 제겐 분명 여성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걸 꿰뚫어 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조현주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중사 출신이다.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성전환 수술비를 벌기 위해 게임에 참여했다.
박성훈은 연극을 하며 LGBTQ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이해도를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실제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자문도 구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성소수자를 희화화하지 않겠다는 것. "목소리를 과도하게 변조한다거나, 제스처를 과장하는 것을 정말 경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현주는 故 변희수 하사 등이 모티브가 된 인물. 캐릭터의 레이어가 중요했다. "성장 과정, 살아오면서 부딪힌 불이익과 편견 등 전사들을 켜켜이 쌓았다"고 말했다.
더하기보다는 덜어냈다. "감독님, 의상·분장 팀장님과 상의를 많이 했다. 짧은 머리도, 긴 머리도 해봤다. 손톱도 다양한 색을 발라보고, 액세서리도 바꿔봤다"고 전했다.
인간 조현주를 그리는 데 가장 집중했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상황 속에 놓여왔는지, 그때 현주는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 그저 평범한 그녀
박성훈은 "두렵지만 모두를 아우르며 나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바란 대로, 입체적인 현주를 완성했다. 여린 마음을 지녔지만, 강인한 인물을 만들었다.
특히 95번 영미(김시은 분)에게 "언니"라고 들은 순간, 미세한 표정 변화는 잊지 못할 장면이다. 현주의 내면이 처음으로 드러난 씬.
그는 "대본을 읽었을 때, 가장 가슴에 박히는 문장이 '언니도 예뻐요'였다"며 "현장에서 영미의 목소리로 듣는데 코끝이 찡하고 가슴에 큰 울림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현주는 성기훈(이정재 분)과 반란에 참여, 총을 들었다.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그 순간부터 목소리 톤도 변한다.
'엄마가 많이 우셨어요'. 이 대사는 현장에서 추가됐다. 황 감독의 디렉션은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의 엄마 얼굴이 영상처럼 지나가면서 울컥하되, 과하지 않게'.
감독의 요구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가슴에 너무 와닿았다. 현주의 감정이 훨씬 더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현주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소수자를 대변했다.
박성훈은 "현주를 잘 보여드려서 아직 편견을 받는 분들을 향한 시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고 감히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저는 믿어요.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우리, 여기 뒤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런 게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한번 보여주자고요."(현주 대사 中)
이 대사는, 어쩌면 세상 모든 소수자에게 전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 또 다른 이름에게
'오징어게임 2'는 '눈물의 여왕'과 동시에 촬영했다. 육체적인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이정재, 이병헌(황인호 역) 등 선배들의 연기를 배울 기회이기도 했다.
"동경하고 존경하는 선배들과 연기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었어요. 직업 만족도가 최상이었죠. 육체적으로는 고돼도, 정서적으로는 포만감 넘쳤습니다."
박성훈은 영화 '열대야'(감독 김판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봄에 촬영했다. 이 작품에서도 안 좋은 친구(악역)로 나온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차기작으로 나홍진 감독, 임상순 작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두 분의 큰 팬이다. 그분들의 화면과 글 속에 제가 들어가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고 피력했다.
연기의 뿌리가 되어준 연극 무대에서도 볼 수 있을까. "지난해 '빵야'로 7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즐겁게 무대에서 뛰어놀았다. 언제든 또다시 오르고 싶다"고 바랐다.
박성훈은 현주로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그는 "현주로 많이 불러주시면 좋겠다"며 "배우로서 전혀 다른 색깔의 배역들을 연기할 수 있는 건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전했다.
또다시 이름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 "(캐릭터들 모두) 저에게 선물 같은 이름"이라며 "단 세글자만으로 각인될 수 있다는 것이 뜻깊고 감사하다"고 미소 지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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