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이어진 2차 가해…팔레스타인 연대체는 2개로 쪼개졌다
“한국 사회에 두 개의 팔레스타인 연대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비롯해 224개 단체가 모인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긴급행동)은 지난해 11월5일 돌연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올렸다. 그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는 긴급행동과 운동 단체 노동자연대 쪽이 각각 따로 진행했는데 이를 두고 이어진 혼란을 설명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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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엔 지난 2016년부터 이어진 운동 단체 내부의 한 성폭력 사건과, ‘2차 가해’ 논란이 있다. 긴급행동은 “노동자연대는 여러 운동 단체들의 거듭된 요구에도 조직적 2차 가해를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괴롭힘을 지속하고 있다”며 노동자연대와 ‘연대 단절’ 상태임을 공지한 것이다. 사건은 9년에 걸친 피해 당사자 ㄱ씨의 지난한 고통을 품고 있다.
법원 판결문과 ㄱ씨 설명, 노동자연대 입장문 등을 8일 종합하면, 사건의 시작은 2016년 2월29일 한 토론회장에서 시작됐다. ㄱ씨는 청중으로 참석해 진보단체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발언에 개인 경험을 얹어 ‘진보 운동단체 신입 시절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실이 있었는데 홀로 속으로 삭힌 적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2003년 ㄱ씨가 노동자연대 소속 간부로부터 준강간을 당했던 경험을 이른 것이지만, 단체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을 몇번 했을 뿐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는 못했던 내용이다.
단체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만큼, ㄱ씨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자연대는 달랐다. 발언의 앞뒤 정황을 비춰봤을 때 자기 단체에 속했던 시절을 가리킨다고 보고, ㄱ씨가 ‘대놓고’ 단체 내 성폭력 사건을 언급했다고 여긴 것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일이므로 신속한 추후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본인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문제인데도 면담에 응하지 않으면 주장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연대는 ㄱ씨에게 진상을 알아야 하니, 조사에 응하라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이 과정 자체가 압박이었다. ㄱ씨는 “토론회 발언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응원 취지였고 사건을 공론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사에 응하게 되면 결국 그때 고통을 꺼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ㄱ씨가 조사를 거절하자, 이듬해 노동자연대는 ㄱ씨를 비난하는 가해자의 글을 누리집에 게시하는 데 이르렀다. ‘노동자연대를 넌지시 중상하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자마자 소리 지르며 울었어요. 내가 억울한 일인데, 겁이 나서 조사를 못 받겠다고 하는 건데 왜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몰아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ㄱ씨는 가해자 글에 반박하려 공론화를 시작해야했다. 노동자연대는 ㄱ씨더러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했다. 노동자연대는 결국 가해자를 해임 처분했다. 하지만 ㄱ씨 사건 또한 “증거가 없는 순전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등 표현으로 매도했다. ㄱ씨에겐 ‘2차 가해’였다.
다행히 다른 단체들이 ㄱ씨 편에 섰다. 민주노총은 2020년 4월17일 ‘성폭력 2차 가해 행위를 지속해서 반복해 왔는바,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며 노동자연대와의 모든 연대사업을 중단할 것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전국민중행동 등도 노동자연대와 연대를 단절했다.
그렇다면 ㄱ씨가 겪은 성폭력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노동자연대가 ㄱ씨를 지원하며 함께 싸워온 동료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정리된 내용이 있다. 서울북부지법 1심 재판부는 지난 2022년 8월23일 이 사건 판결을 선고하며 ㄱ씨 사건에 대해서도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노동자연대가 가해자의 글을 올려 사건을 공론화한 것은 “ㄱ씨 입장에선 매우 폭력적인 2차 가해 행위로 느껴졌을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법원 판결에도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긴급행동이 팔레스타인 연대체가 두개인 이유에 대한 글을 올리고, 20여일이 지난 11월22일 노동자연대는 또다시 ‘반박’을 명분 삼아, ㄱ씨 고통을 헤집는 글을 올렸다. “(북부지법이 판결한 명예훼손) 소송은 성폭력 실체를 입증하는 형사소송이 아니었다”며 “노동자연대도 혐의가 사실이었을 수 있음을 부인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계속, 또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 반성과 사과가 없어서겠죠.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ㄱ씨가 지난 9년을 돌아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를 지탱하는 건, 이 싸움을 잊지 않고 연대하는 동료들 뿐이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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