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쇼크]③ 日, 주택가 곳곳에 빈 집… “철거·개조 대신 최소한 관리만”

오사카(일본)=김유진 기자 2025. 1.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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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시내 빈 집 르포
日, 8년 뒤 전체 주택의 30%가 비어
고령화·인구 감소로 빈 집 문제 시작
목조 주택, 철거·개조 비용 높아 방치
빈집세·강제 철거에 빈 집 관리 서비스도
지난달 26일 방문한 오사카시 덴노지구의 빈 집이 있는 골목길. /사진=김유진 기자
일본은 빈 집을 계속 방치하면 정부에서 개선이나 철거하라는 지도를 할 수 있어요. 관리되지 않은 집에 빈집세를 물거나 정부가 직접 철거하고 비용을 징수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집 주인이 와서 우편물이나 전단지를 비우는 경우가 많아요.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라면 빈 집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비용은 매월 1회 기준으로 1만엔(약 9만2000원)정도 합니다.

지난해 12월 26일 일본 오사카시의 도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히라노구에 있는 빈 집을 찾았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골목길 초입에 위치한 이 집은 여느 사람 사는 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빈 집치고는 관리가 잘 된 편”이라고 빈 집을 소개하며 일본의 도심 내 빈 집은 정부의 지도 아래 관리가 세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동네의 빈 집을 몇 곳을 방문해도 대부분 외관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단정한 이층집 창문에 큼지막하게 붙은 ‘매물건’이라는 문구만 현재 빈 집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빈 집은 이미 철거가 된 경우도 있었다. 빈 집이 철거된 자리에는 부동산 회사의 분양 광고 깃발이 꽂혀 있었다. 70대 히라노구 주민은 “기존에 사람이 살던 집이 철거되고 공터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일본 오사카시 히라노구 주택가 사이에 있는 공터를 분양 중이다. /사진=김유진 기자

일본은 우리나라에 앞서 빈 집 문제를 마주한 국가다. 일본 총무성이 집계한 주택·토지 통계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빈 집은 지난 2023년 10월 기준 총 899만가구다. 전체 주택의 13.8% 빈 집인 셈으로,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73년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빈 집 중에서도 장기간 사용 목적이 없이 방치된 집은 385만가구다. 이는 일본 전체 주택의 5.9%를 차지한다.

일본 내 대도시로 꼽히는 오사카시도 빈 집 문제를 피해가진 못했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히라노구의 빈 집 비중은 15.1%로 외곽으로 갈수록 이 비중은 20%를 훌쩍 뛰어넘는다. 오사카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50대 김상욱(가명) 씨는 “오사카를 포함해 일본 전역에서 ‘아키야(空家·빈 집)’가 골칫덩어리가 된 지 꽤 됐다”며 “농촌 지역의 아키야 문제는 심각해진 지 오래고 도심에서도 아키야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아키야는 매물로 등록해도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비용만 나가는 애물단지”라고 덧붙였다.

◇높은 철거·리모델링 비용·신축 단독주택 선호 현상…빈 집 증가에 영향

일본의 빈 집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의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빈 집이 생기기 시작한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내진 설계 등이 필요한 리모델링 비용과 신축 단독주택 선호 현상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빈 집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다.

빈 집을 철거하거나 개조하는 비용이 높다는 점은 빈 집의 새로운 활용이나 관리를 어렵게 한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빈 집은 70% 이상이 1980년 이전에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빈 집의 20%가 1980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점과 비교하면, 일본에 연식이 오래된 빈 집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집은 내진 설계 등 현재 기준에 부적합하다. 결국 리모델링 과정에서 내진 성능을 보강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야 해 비용이 올라간다. 일본은 도심의 고급 아파트의 값만 오르는 주택의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중고주택에 리모델링 비용을 쓰려는 수요가 높지 않다.

그래픽=손민균

일본에서 빈 집 거래 플랫폼 ‘아키야뱅크스’를 운영하는 루벤 글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집은 적어도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가능성이 낮게 지어졌다”며 “이후 지진이나 태풍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재해 방지 조례, 법률 및 규정이 제정돼 현재 일본의 빈 집에는 이러한 기능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철거 비용과 높은 세금도 빈 집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빈 집을 철거한 후 토지에 부여되는 고정자산세는 과세표준의 1.4%다. 그러나 주택에 부과되는 세금은 과세표준의 6분의1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5000만엔(약 4억6000만원) 규모의 고정자산을 가지고 있을 경우 세금은 연간 70만엔(약 644만원)이지만, 빈 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다면 연간 11만7000엔(약 107만원)만 내면 된다. 관리 비용을 합쳐도 철거 대신 빈 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경제적으로 이득인 셈이다.

도심 내 빈 집의 경우 대출 문턱이 있다는 점도 빈 집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요인이다. 농어촌 지역에 있는 빈 집은 공짜로 나오거나 소유자가 되려 집을 사가는 사람에게 돈을 얹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도심 내 빈 집의 경우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데,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경우 은행의 높은 심사 문턱을 넘어야 한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30년이 넘은 빈 집과 같은 중고 주택은 자산 가치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심사가 엄격해지며 대출액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일본 오사카시 히라노구에 있는 빈 집의 우편함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

일본이 사회적으로 신축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다는 점도 빈 집에 대한 수요를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글레이저 CEO는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일본은 새로 지은 단독주택에서 첫 번째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성공의 신호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며 “중고주택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지은 지 오래된 빈 집이라면 리모델링 비용 등을 고려할 때 매매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그는 “특히 일본은 ‘지코부켄(じこぶっけん·사고물건)’이라고 하는 죽음이나 불운에 관련한 부동산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빈 집에 대한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빈 집 늘자 동네 생기 떨어지고 범죄 증가

빈 집 심화 현상은 지역의 발전을 저해한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빈 집이 많은 지역은 인구가 유출되고 노인들만 남게 되니 생기가 떨어진다”며 “특히 지방 소도시가 이런 경우가 많아 일부 지역에서는 청년층이 빈 집에서 살 경우 지원책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빈 집에 관한 범죄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빈 집에 있는 귀중품을 훔치는 절도 사건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현지 경찰청에 따르면 빈 집에서 일어난 침입 절도 사건은 지난 2020년 3180건에서 매년 늘어 2023년은 전년 대비 2배가량 증가한 8189건에 달했다.

빈 집을 방화하거나 마약을 거래하는 범죄도 발생했다. 2019년 10월 일본 사이타마현 치치부시에서는 20대 청년이 빈 집에 방화해 빈 집이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에는 지바현에서 빈 집에서 마약을 대규모로 거래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앞으로 일본의 빈 집 문제는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일본 내 빈 집 비율이 2033년에는 27.3%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우려된다. 일본의 ‘전국 빈 집 대책 컨소시엄’은 방치되는 빈 집이 10만채 늘면 1조5000억엔(약 13조원) 가량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우토 마사아키 도쿄도시대학 환경정보대학원·도시생활학부 교수는 “빈 집 비율은 1998년 10%를 넘어섰고 주택 재고가 가구 수보다 더 많은 상황”이라며 “현재 추세로 신축, 멸실이 유지가 된다면 2033년 빈 집 비율은 30%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신축이 절반으로 감소되고 멸실을 2배로 늘려 현재의 주택 재고를 활용한다면 2033년 빈 집 비율은 23%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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