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빛의 언어로 그려낸 모네 `인상, 해돋이`


예술은 불완전한 인간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을때만 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는 반 고흐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다. 그의 그림은 로맨틱하면서도 아름답다. 하지만 150여년전 그의 작품은 '쓰레기'라는 악평을 받을 정도로 그림 축에도 못끼었다. 공식 살롱전에선 찬밥 대우를 받아 별도의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전시해야 할 정도였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캔버스에 유채)는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작품이다. 태양의 불덩이가 떠오르는 순간, 그 한컷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 이 그림은 원근법을 거부하고, 빛이 만들어낸 찰나의 순간을 신속히 포착해 짧고 빠른 최소한의 붓질로 표현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사조다. 고전주의의 전통적인 회화 주제와 기법에서 벗어나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담아내려 했다. 인상주의와 모네는 사실상 동일어다.
'인상, 해돋이'는 1874년 4월 15일 당시 인기 초상 사진가인 나다르의 파리 스튜디오를 빌려 연 전시회에서 처음 대중에 선보였다. 폴 세잔, 오귀스트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 에드가르 드가,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등의 작품과 함께 모네는 유화 다섯점과 파스텔화 일곱점을 출품했다. 유화 작품 중 하나가 '인상, 해돋이'다.
당시만 해도 자연을 원근법에 따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미술계의 불문율이었다. 대상에 비쳐진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사물을 포착하는 인상주의 그림들은 무성의한, 전통적 의미의 미술 작품이 아니었다. 미술 평론가이자 풍경화가인 루이 르루아는 풍자신문 '그 사리바리'에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 제목의 글을 통해 "인상,해돋이는 미완성 그림"이라고 악평을 퍼부었다.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다.
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인상, 해돋이' 는 항구의 시설과 굴뚝의 연기, 그것이 물에 비친 그림자와 배, 그리고 물결이 빚어내는 이미지를 가벼운 붓터치로 표현했다. 불타는 태양이 늘어뜨린 붉은 반영(反影)으로 파도의 일렁임이 생생하다. 뒤편의 공장 굴뚝들은 짧게 끊어치는 터치로, 가늘고 날카로운 수직선으로 처리했다. 하늘에는 불규칙적이고 두터운 선이 둔탁하게 가로로 누워있다.
모네를 비롯해 마네, 드가, 세잔, 고흐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파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서 '어떻게 그릴 것인가'로 시대를 전환시켰다. 고유 색과 형태가 아니라 빛과 공기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채와 형태를 추구했다. 자신이 받은 인상에 충실했고, 주관과 감각을 중시했다. 물감을 섞는 대신 단일한 붓터치로 원색을 사용한 색채분할 기법을 활용, 멀리서 보면 서로 섞여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모네는 중학생때부터 인물 캐리커처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를 본격적인 미술가의 세계로 인도한 이는 자연파로 일컬어지는 비르비종파의 풍경화가 외젠 부댕이다. 모네는 1858년 18세때 만난 부댕을 첫 스승으로 모시며 '자연'을 평생의 소재로 삼게 된다. 이어 22세때 풍경화가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로부터 자연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주관적 감성을 담은 풍경화로, 빛을 예민하게 포착해 빠르게 담아내는 기법을 배웠다.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는 그의 대스승이다. 모네는 마네에게서 17세기에서 20세기초 일본 에도 시대에 유행한 판화인 우키요에 기법을 전수받는다. 원근법과 디테일을 버리고 평면성과 단순성, 원색을 중시하는 자신의 세계를 드디어 창조하게 된 것이다. '생타드레스의 해변의 테라스'는 모네가 마네를 만난 후 그린 그림이다. 영국 해협에 가까운 프랑스 프 아브르의 해변 휴양지인 생타드레스의 테라스에서 가족들이 함께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마네와 모네가 갈라지는 지점은 '빛'이다. 모네에게 빛은 곧 색채였다. 빛에 의해 무한히 변화하는 자연의 한 프레임을 포착해 붓으로 표현했다. 햇빛의 변화로 시시각각 변하는 색과 형을 즉각 반영하기 위해 물감을 섞지 않고 원색을 바로 썼으며, 붓질은 점을 찍듯 짧고 빠르게 했다. 빛의 순간성을 포착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연작 시리즈로 발전한다. '해돋이'를 비롯, '수련',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 '생 라자르역', '포퓰러 나무' 연작은 고유 색이 아니라 빛과 공기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채를 추구한, '윤곽선을 파괴한' 작품들이다.
모네는 유난히 물과 정원을 좋아했다. 프랑스 북서부 지베르니에 일본풍 정원 만들고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은 정원"이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첫번째 아내 카미유와의 사랑은 사람들의 입에 오래 오르내렸다. 밝은 야외에서 오랫동안 작업한 까닭에 만년에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나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붓으로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다"며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세잔은 그를 "신을 제외하고 최상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인상, 해돋이'는 마르모탕 미술관에 있다. 파리 서쪽 볼로뉴 숲 인근에 있는 마르모탕 미술관은 원래 마르모탕 가문의 미술품을 소장하기 위한 저택으로,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에도 모네 콜렉션이 많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